산촌의 겨울

산촌의 겨울

 

아무도 오지 않아서

혼자 앉아 술 마시다가

 

박제剝製로 걸어놨던

한여름 매미소리

 

나물 안주삼아서

하염없이 듣는다.

 

방문을 열어봐야

온 세상이 눈 바다다.

 

빈 들판 말뚝 위의

저 막막한 외로움도

 

달콤한 식혜 맛처럼

복에 겨운 호사好事거니.

 

가끔은 그리운 사람

회재 고개 넘어올까

 

속절없는 기다림도

쌓인 눈만큼 아득한데

 

속세로 나가는 길이

꽁꽁 막혀 포근하다.

 

 

posted by 청라

어머니 마음

어머니 마음

 

어머니 오시던 날

보자기에 산을 싸 와

 

비었던 거실 벽에

산수화로 걸어 두어

 

지쳐서 눈물 날 때마다

바람소리로 다독이네.

 

 

2019. 10. 2

 

 

posted by 청라

풍악산豊岳山

풍악산豊岳山

 

털털하게

섞여서 산다.

정 많은

사내처럼

 

뾰족했던 젊음들을

익히고 다스려서

 

온 산이 눈부신 환희歡喜로 타오르고 있구나.

 

 

2019. 10. 1



posted by 청라

꽃씨

꽃씨

 

코스모스

까만 꽃씨에

숨소리가 숨어있다.

 

살며시 귀를 대면

솜털 보시시한

 

벽 깨자

삐약 하고 울

박동搏動소리가 숨어있다.

 

 

2019. 8. 28

posted by 청라

거꾸로 선 나무

거꾸로 선 나무

 

세상은 안개 세상 한 치 앞도 안 보이고

옳은 것 그른 것도 능선처럼 흐릿하다.

물 아래 물구나무로 입 다물고 섰는 나무.

 

거꾸로 바라보면 세상이 바로 설까

호수에 그림자로 뒤집어 다시 봐도

정의도 불의도 뒤섞여 얼룩덜룩 썩고 있다.

 

여명이 밝아 와도 배는 띄워 무엇 하랴.

부귀도 흘러가면 한 조각 꿈인 것을

차라리 물 깊은 곳에 집을 틀고 싶은 나무

 

 

2019. 9. 25

posted by 청라

산울림

산울림

 

비 온 후 계족산이

새 식구 품었구나.

 

눈빛 맑은 물소리와

새 사랑 시작이다.

 

마음이 마주닿는 곳

향기 짙은 산울림

 

 

2019. 9. 23

posted by 청라

 

 

높은 곳에 떠 있다고

모두 빛나는 것은 아니다.

 

빛이 난다고

모두의 가슴에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

 

그믐의 어둠 앞에 선 막막한 사람들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하나 둘 깨어나는 별

 

세상이 캄캄할수록

별은 더 많이 반짝인다.

별이 반짝일 때마다

막막했던 가슴마다 한 등씩 불이 켜진다.

 

나는 언제나

거기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위안을 주는

별 같은 사람이 되랴.

 

 

2019. 9. 21

시와 정신72(2020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생가 터에 앉아

생가 터에 앉아

 

버려진 구들장을

슬며시 뒤집으면

무심코 흘리고 간

어린 날 내 웃음소리

누나야

수틀에 담던

뽀얀 꿈은 어디 갔나.

 

무너진 골방 터엔

어머니 베틀소리

누군가 베어버린

감나무 썩은 둥치

아버지 못다 한 꾸중

회초리로 돋아있다.

 

물 사발로 다스렸던

허기증도 그리워라

육 남매 쌈박질로

몸살 앓던 마당에는

머언 길

돌아와 보니

콩 포기만 무성해라.

 

2019. 9. 8

 

posted by 청라

회전목마

회전목마

 

야당일 땐 장외 농성 여당일 땐 강압 통과

바뀌면 또 그 타령 돌고 도는 회전목마

다 함께 어깨동무로 나라 걱정할 날 있을까.

 

 

2019. 9. 6

posted by 청라

고희古稀 고개

고희古稀 고개

 

무엇을 가르쳤나

나 자신도 모르면서

 

세월에 떠밀려서

올라온 고희古稀 고개

 

마음이

흐르는 대로

강물처럼 내려가리.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