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석상의 하나 되기

시/제7시집 2023. 12. 10. 09:11

두 석상의 하나 되기

 

 

통일 전망대 내리는 비엔 소금기가 배어있다

갈 수 없는 마을이 그리워 울다 떠난 사람들의 눈물과

높새바람에 펄럭이던 수많은 소망들이

포말처럼 부서져서 해당화로 피는 곳

남해에서 달려온 꽃바람이 철조망에 막혀

한숨으로 시드는  곳

겨울만 사는 동네는 봄이 와도 쪽문을 열지 않는다

산 하나 넘으면 저기가 고향인데

나의 그리움은 늘 우연雨煙에 가로막힌다

두고 온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고향 마을의

학 울음소리

나의 어린 시절은 아득히 멀기만 하고

봄이면 제비처럼 찾아와 울던 고향이 함흥이라는

그 할아버지

발걸음 뚝 끊긴지 오래인데

아직도 하나가 되어 하늘에 닿지 못하였는가

미륵불 성모 마리아 두 석상의 기도는

이산가족의 간절한 소망처럼 끝까지 매달렸던

마지막 잎새 툭 하고 떨어지고

국토는 아직도 굳게 동여맨 허리띠를 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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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산

시조/제3시조집 2023. 12. 8. 08:26

가을 산

 

 

시든 몸 빛바랜 얼굴

저리 고울 리가 없다

 

한여름 모진 신열

용암처럼 들끓다가

 

갈바람

서리로 식혀

아우성을 놓는 자태

posted by 청라

소리의 틀

시/제7시집 2023. 11. 25. 07:13

소리의 틀

 

 

다듬이 소리

봄날 배꽃 피어나는 달밤 산골 물소리처럼

마을 골목을 쓸고 가던 그 소리엔

누나가 수틀에 그리던 꿈이 살고 있다

 

빨래방망이 소리는 어머니 한숨

밤낮으로 일을 해도 자식들

대처로 학교 못 보내는

평생 푸념 같은 아픔이 배어있다

 

베 짜는 소리 속엔 할머니

삶의 여유가 들어있다

눈물도 웃음도 날줄로 쌓여

오래 묵은 대추나무 같은 세월이 거기 있다

 

사랑방에는

아버지 기침소리가 살고 있어야

제 맛이다

 

고달픈 삶을 기워 짜놓은 자리만큼

질기지만 위태롭던

아버지의 등

 

소리에도 틀이 있다

세월의 강물에 다 쓸려가 아득하지만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으로 가두어놓은

그리운 것들은 다 소리 속에 있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