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달

시/제3시집-춤바위 2011. 2. 20. 22:19

 

대보름달



껍질을 깎을 것도 없이

날 시린 바람의 칼로 한 조각 잘라 내어

아내의 생일상에 올려놓고 싶다.


한 점 베어 물면

용암처럼 뜨겁고 상큼한 과즙(果汁)이 솟아나리.


이순의 문턱에서

검버섯으로 피어난 속앓이를 씻어줄

대보름달 같은 웃음을 보고 싶다.



2011. 2. 18

posted by 청라

버려진 그릇

시/제3시집-춤바위 2011. 1. 26. 21:23

 

버려진 그릇

-도천 선생 그릇 무덤에서

 


바늘 자국만한 흠 하나로도

나는 온전한 그릇으로 설 수 없었다. 


삼천 도의 불가마에서

온 몸이 익어가는 통증 속에서도

다향으로 목 축일

작은 꿈 하나 있어 정신을 놓지 않았다. 


가마를 나와 탯줄도 자르기 전에

눈 뜨고 응아 한 번 울지 못한 채

산산이 부서져 무덤에 버려졌다. 


찻물 한 모금 담아보지 못하고

그릇도 아니고 흙도 아닌

제 살 조각도 맞출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사람들은 지나가며

안쓰런 눈으로 바라본다. 


지나가는 사람들 뒷모습에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는

수많은 흠들 


저 많은 흠을 두르고

어찌 사람이라고 살아가나? 


아, 하느님은

도공보다 너그럽다.


2011. 1.25


 


posted by 청라

<신년 축하 시>

 

염원의 파랑새를 날리기 위해서는 

                              엄 기 창 

 

제야(除夜)의 종소리로 새해를 빚습니다.

신묘년(辛卯年)년의 태양이

한반도의 어둠을 쓸어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해의 겨울은 참으로 추웠습니다.

땅 밑에서 고동치는 봄의 온기(溫氣)를 불러내어

상처 입은 가슴들에

연둣빛 새살을 돋게 하소서.

 

포격(砲擊)으로 일그러진 연평도 산하와

황운(黃雲)이 짙게 피어오르는 국토의 골골마다

비둘기의 은빛 날개로 덮어 주시고

북녘 땅 이리들의 날 세운 발톱에

강인한 족쇄(足鎖)를 채워 주소서.

 

사람들은 모두 다

어깨동무로 걷는 법을 잊었습니다.

정치의 마을엔 상생(相生)의 도(道)가 사라지고

경제의 마을에선 공생(共生)의 원리도 무너졌습니다.

 

윤리(倫理)의 깃대는 부러지고, 깃발은 찢어져

신문의 칸칸마다 무서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끼니를 걱정하던 60년대부터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입니다.


온 세계의 하늘을 향해 다시

염원(念願)의 파랑새를 날리기 위해서는

우리끼리 가슴을 열어야 합니다.


계룡산이 주위의 산들과 어깨동무로 노래하고

금강물이 손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흐르듯

새해에는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2011년 1월 1일 아침

<금강일보> 신년 축하시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