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시조 2011. 7. 1. 22:11

봉숭아

 

비 온 후

우우우

꽃들의 진한 함성

 

팬지, 데이지, 사루비아

화단의 앞줄에 서고

 

봉숭아 뒷방 할머니처럼

풀 사이에 숨어 폈다.

 

 

모종삽에

담뿍 떠서

맨 앞줄에 세워본다

 

남의 땅에 혼자 선 듯

잔가지가 위태하다.

 

제 땅을 모두 잃고도

분노할 줄 모르는 꽃!

 

2011.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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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 부음 오던 날

시조 2011. 5. 24. 07:36

누님 부음 오던 날

 

            엄 기 창

 

 

조팝꽃 지고

여울 울어

봄 하루 시들던 날

 

회재고개

비탈길로

누님의 부음 넘어와

 

빈 고향 초록 들판에

가랑비를 뿌리다.

 

 

어머님도

아버님도

다 가시고 없는 집에

 

누님이

좋아하던

앵두 혼자 익어간다.

 

짙붉은 앵두 빛깔에

넘쳐나는 서러움.

 

 

201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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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變身

시/제3시집-춤바위 2011. 5. 22. 09:16

변신變身

 

바람에는 빛깔이 없다.

 

빛깔이 없어

더욱 화려한 바람

 

오월, 상수리나무

목청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에서는

물안개처럼 몽롱한 연둣빛 속살이

언뜻언뜻 보인다.

 

단풍의 옷자락을 펄럭이며

산기슭 올라가는 바람의 꽁지에서는

빛살의 창을 모두 거두고 서해로 투신하는

태양의 열정이 타오르고

 

겨울!

눈보라 몰고 가는 바람의 날개에서는

죽음보다 더 깊은 침묵의

하얀 정적,

 

빛깔이 없어

더욱 화려한 바람

 

바람에는 바람에는

빛깔이 없다.

 

2011. 5. 22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