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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삼월 마중
산다는 건 추운 일이다
아직 예순도 다 저물지 않았는데
당신의 가을엔 일찍 눈이 내렸다
사방으로 쪼그라든 당신의
영혼을 보니
우리가 걸어온 길들이 지워지고 있었다
아직 내 청춘의 푸른 설렘은
나비인양 파닥거리는데
당신은 그만 어깨동무를 풀려하는가
동백이 피면 겨울을 건너뛸까
아침마다 아리셉트를 챙겨 먹이며
삼월을 마중간다
글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귀뚜라미 소리가 깨워서
문득 눈을 떴습니다
세월의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와
당신의 잠든 얼굴에 눈물을 떨구게 합니다
영혼은 아이 때로 돌아갔지만
자글자글 주름에
멍투성이 수선화 같은 당신
꽃피던 날에는
당신의 아픔을 헤아릴 줄 몰랐습니다
겨릅대처럼 바싹 마른 다리에
이불을 덮어주면서
당신의 아픈 날을 감싸주라고
내가 태어났나 봅니다
글
대보름달 떴다
우리들의 아픈 시간은
해가 지고 나서 다시 달이 뜨는 시간만큼의
잠깐이었으면 좋겠다
불 깡통에서 눈썹 센 별들이
은하처럼 쏟아지는 만큼의 찰나이었으면 좋겠다
우리들의 마음에 둥그렇게 달이 떠오를 때
달집을 사른다
코로나로 아파하는 사람들의 겨울을 태우고
먹을 것이 없는 마을의 막막한
그믐밤의 절망을 태우고
액운이 깃든 영혼의 저고리 동정을 태우듯
세상의 모든 아픔을 불속에 던져 넣는다
보아라!
망월굿 춤사위 속
그림처럼 살아나는 우리의 산하
먼 산이 검은 그림자 딛고 일어서고
나무들 찬바람 속에서도 분분이 손 흔들어
봄을 부르노니
시대의 밤아 가거라
우리들 마음 가장 높은 곳 어느새 하늘만한
새 정월의 대보름달이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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