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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다를 닦아내다
갯바위들이 기름을 뒤집어쓴 채
박제剝製처럼 정지해 있다.
끓여낸 해물 탕 속의 식재료들처럼
게도 조개도 갈매기마저
검은 타르의 국물 속에 건더기로 떠있다.
방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에
장화를 신은 채
사람들은 졸도해있는 바다 곁으로 다가섰다.
끊어진 빨랫줄처럼 해안선이
바람에 출렁거릴 때
사람들은 바다의 절망을 퍼내 자루에 담고
한숨의 찌꺼기를 긁어내었다.
수평선이 푸르게 일어설 때까지
기도祈禱의 걸레로
바다를 닦고 또 닦아내었다.
먼 바다의 바람도 잊지 않고 달려와
새 숨을 나눠줬다.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가
저녁놀에 기대어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글
만선滿船
엊그제 통통배 타고 바다에 나가
부유浮游하는 대양의 상처를 건져
만선滿船으로 돌아왔다.
바다의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한사코 개화開花를 망설이던 해당화도
오늘아침 방긋 웃음 한 송이 피웠다.
고깃배에 가득
플라스틱이며 비닐봉지를 채운 후
흐뭇하게 웃는 아비를 보고
아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바다를 푸르게 전해주려는
아비의 애타는 마음 알기나 할까.
만선滿船의 노을 날개 아래로
약간 기울었던 지구의 밸런스가
바로잡히고
갈매기 노랫소리에 윤기가 묻어난다.
아직도 칭얼대는 미역들 어린 새순에게
격려激勵의 박수처럼
해당화 향기를 띄워 보낸다.
글
처방전處方篆을 쓰다
고희古稀 넘어 바다의 방언方言도 술술 들리니
사는 일에 걱정이 더 많아졌다.
바다의 큰 병 앓는 신음에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나 혼자 쩔쩔매며 약 한 첩 못쓰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래 바다를 사랑하는 게 약방문藥方文이다.
시詩로 외쳐서 세상을 바꿔보자 하고
처방處方을 내렸다.
바다는 어린애다.
다정하게 손잡아 주면 와락 안겨오다가도
조금만 섭섭해지면 토라져서 몇 날 며칠이고
태풍을 몰고 온다.
약이 쓰면 토해버리고 정을 떼면 아파한다.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데워놓자.
통통 튀지 못하도록 꼬옥 안아주자.
망팔望八의 길목에서 詩시로 처방전處方篆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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