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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날
엄마가 왔나보다.
사립문이 덜컹거린다.
펄쩍 뛰어 나가보면
지나가는 바람
사탕 한 봉진 사오시겠지.
살구나무 위 까치는
어림없다고 깍깍깍
미루나무처럼 목이 길어져 바라보는
산모롱이 길
해가 이슥하도록
아지랑이만 아롱아롱
2019. 1. 24
글
사막을 일구다
사랑편지를 전했더니
사막을 보내왔다.
그녀의 답신答信은 사막의 달빛처럼
무채색이다.
내 사랑 어디 씨앗 하나 싹틔울 곳 없어
도마뱀처럼 납작 엎드려
기어도 기어도 꽃은 피지 않는다.
선인장 가시에 긁힌 바람만 몇 올
모래언덕을 헤집다 스러질 뿐.
사랑이여!
작은 생명 하나 움트지 못할
불모의 땅에 뿌리를 내려보자.
깊이 숨어있는 초록의 숨결을 모아
천둥 번개를 불러오겠다.
바삭거리는 당신의 가슴에
몇 천 번이라도 비를 퍼붓겠다.
나는 사막을 일궈
사랑 한 그루 푸르게 크게 하겠다.
2019. 1. 8
『충청예술문화』92호(2019년 11월호)
글
간송澗松 미술관에서
일본 땅 어디쯤 헤매고 있겠지
빼어난 어깨 위에
그렁그렁 눈물을 달고
온유한 가슴에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당신의 열정
민족혼이 지켜낸 천학매병千鶴梅甁
아! 천 마리의 학들이 날아오른다.
비취빛 하늘
편편이 날리는 구름을 뚫고
종소리처럼 솔향기처럼
보아도 보아도 눈을 뗄 수 없는
가녀리고도 질긴 힘이여!
오롯한 한 가지만 심어도 좋을
좁은 입 속에
야월 한설夜月寒雪 피어난 한 송이 매화꽃 같은
당신의 정신만 꽂아놓고 싶었다.
2019. 1. 4
『시문학』201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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