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사월

윤사월

 

 

범종소리 쾅 하고

골짜기 울리면

번뇌처럼 온 산 가득

날리는 송홧가루

동자승

빗자루 들고

삼고三苦

쓸고 있다.

 

 

 

삼고三苦 : 의 인연으로 받는 고고苦苦

즐거운 일이 무너짐으로써 받는 괴고壞苦

세상 모든 현상의 변화가 끝이 없음으로써 받는 행고行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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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春分 일기

춘분春分 일기

 

 

사랑을 파종한다.

당신의 마음 밭에

 

꽃씨처럼 은밀하게

한 촉씩 싹을 틔워

 

입하立夏쯤 만개한 정을

한 송이만 보내소서.

 

2018. 3. 23

posted by 청라

어머니

어머니

 

 

이 세상

어머니는

모두 다 미인이다.

 

자식 사랑 자식 걱정

별만큼 담은 가슴

 

곰보에

언청이라도

보고 나서 또 그립다.

 

2018. 3. 19

posted by 청라

입춘立春 일기

입춘立春 일기

 

 

대문 앞 콩 뿌리기보다 마음 먼저 닦고 보자

오신채五辛菜 먹기보다 삶의 쓴맛 깨우쳐서

입춘첩立春帖 붙이기 전에 이웃집에 쌀 한 됫박

 

 

2018. 3. 14

posted by 청라

우수雨水 일기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posted by 청라

산정호수의 구름

산정호수의 구름

 

 

어제 벙근 구름 건져

내 어항에 심었는데

오늘 아침 꽃구름이

수련처럼 또 피어났네.

뿌리 채 곱게 캐어서

네 마음에 전하네.

 

잔뿌리도 상하잖게

네 울안에 모종하게.

서울의 하늘에서

이런 구름 보았는가.

사랑을 일고 또 일어

산의 숨결로 빚은 구름

 

 

2018.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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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일雪日

설일雪日

 

 

산도 숨을 멈추었다.

하얀 눈꽃 위의 적막

 

햇살도 눈을 감고

바람도 날개 접어

 

문 열면 깨어질까봐

문고리 잡고 서 있다.

 

 

201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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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연서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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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포 일몰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posted by 청라

비닐 편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