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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5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에 해당되는 글 71건
- 2022.05.14 제주해협濟州海峽을 건너며
- 2022.05.10 초도에 내리는 별빛
- 2022.05.03 아침 바다
- 2022.04.29 수평선을 보며
- 2022.04.22 소금 꽃
- 2022.04.19 조개 집
- 2022.04.12 총성
- 2022.04.09 저녁 바다
- 2022.04.05 삼월
- 2022.04.01 무인도 등대
글
제주해협濟州海峽을 건너며
유채꽃이 필 때쯤 제주도에나 갈까
목포에서 아홉 시 크루즈 배를 타고
제주해협濟州海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리아스식 해안
회유성回諭性 어족의 통로
구로시오 해류가 손에 잡힌다.
아침의 바다는 파도의 봉우리마다
등을 달았다.
저 반짝이는 윤슬의 새순을 잘라내어
당신의 머릿속 스위치를 올려주면
오랜 세월 어둠의 뿌리로 자리 잡은 우울증을
한 점 남김없이 씻어낼 수 있을까.
웃음이 시들은 당신의 얼굴에
해란초 환한 미소 피울 수 있을까.
섬마다 동백 향 풍겨내는
다도해多島海의 봄이 연초록으로 손을 흔든다.
먼 섬
기도로 반짝이는 등대여!
가보지 못한 섬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바람을 타고 건너오니
나는 아직 바다로 녹아들지는 못했구나.
완당阮堂 선생 눈물 뿌리며 건넜을 이 바다엔
아득한 세사世事처럼 황사가 내리고 있다.
오늘밤엔 술 몇 병 들고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나 만나러 갈까.
글
초도에 내리는 별빛
꽃들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서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대충대충 피어도 꽃은 꽃인가.
다 떠나고 남은 집 혼자 지키는
앵두나무 야윈 가지에 봄이 환하다.
육지가 있는 수평선 쪽으로는
보이지 않는 붉은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칠이 벗겨진 지붕과 빈 마당 가
우두커니 서있는 돌 절구통 적막 위에
가끔 염소들 서로 부르는 소리만 반짝일 뿐.
십자가가 내려진 교회 터에 떠도는
찬송가와
무너지다 만 벽마다 지워져가는
아이들의 낙서도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소멸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인간의 발자국 위로 별이 내린다.
초도에 내리는 별빛은 갓 씻어낸 호롱불 같다.
앵두꽃에 별빛이 내려 별이 꽃인지
꽃이 별인지 알 수 없는 밤
낚시로 잡은 붉바리 회에 술 한 잔 걸치고 보니
원래 혼자였던 섬의 옷깃 한 자락
내가 지팡이 삼아 잡고 있구나.
글
아침 바다
하얀 돛단배가
아침의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탄주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오선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득이는 가락을 줍고 있다.
밤 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 밭
소라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었던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 이랑이 내려앉는다.
글
수평선을 보며
길은 어디에나 있다.
소년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고삐를 틀지 말아라.
사람들은 하늘과 손 한 번 잡아보려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지만
나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내려왔다.
유년의 계곡에서 새소리가 붙잡고
강둑의 풀꽃들이 쉬었다 가라고
수천의 손을 내밀었지만
오직 한 길로만 달려온 내 삶의 지향志向.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하늘과 진하게 입맞춤하고 있구나.
글
소금 꽃
흠이 있는 영혼들은
모두 염전으로 가 꽃이 되는 꿈을 꾼다.
입구가 열리길 기다려 화장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고
기쁨인 듯 노래인 듯 가면을 쓰고 간다.
제염사製鹽師가 할 일은
세상을 살맛나게 간 맞춰 줄
가장 순수한 영혼을 가려내는 일
오뉴월 태양을 볼록렌즈처럼 쏟아 붓다가
배수구를 열어주면 제일 먼저
도망 나오는 건
불평 많은 불순물들
가장 짜릿한 순간을 위해
바람을 불러다 바다 비린내 말리고
우울증을 말리고
불순한 것들 모두 증발관으로 날려버리면
진흙 위에 비로소 몸을 세우는
바다의 사랑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영혼들만 살아남아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운다.
글
조개 집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글
총성
경매사 종소리에 유리처럼 깨어지는 적막
공동어시장의 새벽이 열린다.
부서진 적막에는 날이 서 있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세월이 박힌 모자를 쓰고
중도매인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신속하고 정확한 것이 경매의 생명이다.
오고 가는 손가락 수신호 따라
울려오는 총성
인생은
조이는 맛이 있어야 짜릿한 거야.
바다의 주인이 정해지는 동안
사람들의 소망이 덧없이 피었다 지고
공동어시장 새벽은
광기가 해일처럼 넘실거린다.
서편에 걸린 그믐달도 총소리에 중독되어
못 넘어가고 있다.
글
저녁 바다
외로운 사람은
저녁 바다에 나가
바다의 품에 안겨 보아라.
황혼을 걸치고
배들이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월 속에 까마득히 가라앉았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다.
파도의 푸른 노래가
가슴 속에 흥겨운 춤으로 살아올라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으면
당신은
모든 시름을 풀고
오롯이 해국海菊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게다.
글
삼월
바람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풍겨오는
유채꽃 향기
스러질 듯 스러질 듯
은빛 물결에 젖어든다.
봄 몸살로
딸꾹질하는 바다
놀 젖은 구름 한 조각
리본처럼 나풀댄다.
글
무인도 등대
꿈이 있는 것들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어둠보다 더 막막한 인종忍從의 삶을 살았다는
섬 바위들, 젖가슴으로 아랫도리로
세월의 손길들이 침범한 것도 모른 채
웃음도 잃고, 말도 잃은 그 옆의 별자리에
등대는 가까운 듯 먼 이웃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먼 바다에 불빛 한 점 숨 쉬면
와아아, 환호성으로 마중 나갔지만
그를 외면한 배들이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깊어지는 건 수심水深만이 아니다.
그의 수심愁心도 물이랑처럼 주름살로 덮이고
이끼만큼 표정도 바위를 닮아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멍이 들수록 더 단단해졌다.
이 먼 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인연因緣을 위하여
적막을 도포처럼 몸에 두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運命을 위하여
오늘도 외로움을 태워 빛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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