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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5시집 바다와 함께 춤을에 해당되는 글 71건
- 2022.02.19 근해近海를 나서며
- 2022.02.18 출항出港의 아침
- 2022.02.15 바다에서 길을 찾다
- 2022.02.13 바다는 감동이다
- 2022.02.12 완장
- 2022.02.10 답청절 파도를 밟다
- 2022.01.31 봄 바다
- 2022.01.21 진도씻김굿
- 2022.01.16 바다에 중독되다
- 2022.01.13 대후리
글
근해近海를 나서며
살다가 싫증이 나면 배를 타는 거다.
오륙도가 한사코 나를 붙잡아도
그래, 대양大洋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머리 감아 빗고 새색시처럼 다소곳한
섬들 하나씩 뒤로 밀려나고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조차 출렁이는 물결에
씻겨나갈 때
절대로 돌아서지 않으리라.
가족들과 단란히 조반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아침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그 많던 어선들 한 척씩 줄어들고
막걸리 맛처럼 외로움이 혼곤하게 배어들 때
내 의지 포세이돈의 근육처럼 굳세게 단련하여
해를 잡으러 해 뜨는 곳으로
끝없이 달리리라.
인생처럼 넘고 또 넘어도
끝없이 가로막는 파도
세월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바다에서
이제 저 수평선만 훌쩍 넘으면
부상扶桑이 코앞에 다가오겠지.
글
출항出港의 아침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글
바다에서 길을 찾다
가끔은 인생의 사막을 걷다가
길을 잃을 때
그믐밤 어둠인 듯 삶이 막막할 때
바다로 나아가자.
바다에는 길이 있다.
수평선 너머 아득한 대양大洋에는
거칠고 험난하지만
사나이 걸어갈 길이 있다.
오늘 너는 배를 만들고
내일 나는 그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돌며
우리의 자랑을 전하고 오리라.
스페인이, 포르투갈이
대영제국이 간 길을 따라
바다에서 길을 찾아
태극기 휘날리리라.
가끔은 주저앉고 싶을 때
바다로 나아가자.
폭풍에 춤추는 물결 사이로
우리가 걸어갈 길이 보인다.
글
바다는 감동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그냥 탁 트이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모든 근심 씻어주는
노래를 가진 게 무엇이 있을까
바다는 감동이다.
곁에 서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싶다.
사랑을 잃었을 때, 소망이 사라졌을 때
아아, 그래서
세상이 막막할 때 찾아가면 가슴을 열어 안아주고
나직한 속삭임으로 위로를 보내주는 게 바다다.
바다여, 바다여!
네 모습 목이 말라 달려가다가 산마루에서 흐릿하게
보이기만 하면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목이 멘다.
먼 곳에서도 너는 소리로 온다.
돌담을 지나면 해당화 꽃이 피어있고
바닷가 절벽 소나무 가지에 걸린 갈매기 노래
바다여, 너는 가슴으로 온다.
내 인생에서 꽃다발을 받을
기쁜 날이 온다면
제일 먼저 안아주고 싶은 건 바로
바다이다.
글
완장
아무도 내게
완장을 채워주는 사람이 없다.
가슴 속에 꽃 한 송이 피우듯
내 스스로 만든 예쁜 완장 하나 차고
바다의 노래가 늘 푸르게 살아있도록
바다를 지킨다.
새벽에 해변에 나가 보면
오늘도 파도는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인간들이 버린 삶의 껍질이
콜레스테롤처럼 바다의 혈관을 막고 있다.
저렇게 사는 것도 길이 되는가.
바다를 버리면 바다의 분노가
인간의 삶을
해일로 덮어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바다의 몸이 너무 커서
내가 닦아주는 곳이 바다의 손톱 또는
머리카락 한 올일지라도
나는 오늘 페트 병 하나라도
건져 올리고
작은 상처라도 싸매주면서
바다의 흥타령이 온 바다에 울려 퍼지도록
기도한다.
완장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차며
글
답청절 파도를 밟다
속도를 올린다. 방파제를 차고
바람에 흔들리는 수평선을 향해
파도야 누워라 대장님 나가신다.
뱃머리 내려앉는 햇살에
봄은 무르익고
긴 해안선마다 산 벚꽃 그림자를
가득 담았다.
준비한 거라야
소주 됫병에 된장 한 종지
가슴 가득 담고 온 설렘 한 단지
점심은 해삼 전복 건져
소주잔으로 때우고
저녁엔 황혼을 딛고 돌아오면 되지
답청절 풀을 밟듯 파도 밟고 들어가
화전을 부치듯 패전을 부쳐
부어라 마셔라 흥을 돋우면
웃음소리 뱃전에 부딪쳐 노래가 되어
갈매기도 날아가다 날개 쉬고 듣는다.
서먹서먹했던 이웃도 다
어깨동무 되어
황혼이 융단처럼 깔린 파도 밟고 돌아오면
올해도 우리 마을엔
바다가 불러서 가는 사람 없으리.
배마다 만선의 노래 가득 싣고 돌아오리.
글
봄 바다
미역 순 크는 향기로 온다. 봄 바다는
샛바람이 불어올 때 바다에 나가
향내 묻은 물결로
마음의 겨울을 씻어냈으면 좋겠네.
방울소리로 달려오는
갈매기 노래를 마음껏 안아줬으면 좋겠네.
산더미 같이 분노로 밀려올 때는
세상을 산산이 부숴버릴 듯하지만
해당화 발밑까지만 치고 올라오는 파도
파도가 놓고 간 게 미움인 줄만 알았더니
모래밭에 새겨진 자국을 보니
사랑이더라.
글
진도씻김굿
피리 소리 높아지면
손대잡이 대 위에서 파도는 춤을 추고
배꽃처럼 창백한 달빛이 내리는 바다
당신의 영혼이 극락으로 가고 있다.
바다를 사랑해서
지난겨울 바다로 떠난 사람
질베를 밟고 가는 당신의 등 뒤에서
아! 수평선水平線이 일어서고 있다.
당골에미 무가巫歌에 원망을 씻고
가다가 잠깐 뒤돌아서 바라보는
당신의 눈동자엔
천 개의 달을 안은 물결이 반짝이고 있다.
글
바다에 중독되다
포말泡沫처럼 부서지면 다시
피어나지 못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자.
배를 타고 나가면 무한한 자유가 범람하는
사나이 삶만 생각하는 거다.
어디로 향하든지 모두 길인 바다
수면을 차고 떠오른 달이
암청색 물결마다 반짝이는 알을 낳을 때
아! 절대로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사내는
짭조름한 바다의 체취 만 맡아도 기침을 한다.
중독되는 건 잠깐이지만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바다의 매력
일만 대의 주사를 맞아도 치유할 수 없는
클레오파트라보다 더 치명적인
바다의 유혹이여
바다를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말고
바다를 가슴 가득 끌어안아야지.
비워지면서 더욱 가득 채워지는 내 안의 바다
수평선으로 먼저 떠났던 우리의 절망들이
신선한 아침을 예인하여 돌아오고 있다.
글
대후리
작은 목선들이 통통거리며
그물에 바다를 가두어두면
양쪽의 줄 사이에 걸려있는 바다
바다의 저 거대한 뚝심
어잇차 어잇차
온 동네 사람들 모여 바다를 당긴다.
손끝에 걸린 줄을 통해서
바다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린다.
바다야 버티지 마라
개도 아이들도 모두 나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백사장에는
줄 끝을 잡은 뒷산도 거들고 있다.
꽹과리 소리 높아질수록
마을도 들썩들썩 일어나 어깨춤을 추고
먼 수평 반짝이는 햇살 아래
버티는 바다의 뒤꿈치에서 일어나는
하이얀 풍랑
사람들의 마음마다 함성이 일면
한 끝씩 접혀가는 바다의 투지
힘주어 딛고 있는 힘줄이 끊어지며
황혼 아래 누워있는 실신失神의 바다
어잇차 어잇차
지난겨울 춤추던 폭풍의 칼날이 눕고
몇 사내가 버리고 간 유언이 빛나고
끌려온 바다는
우리들의 발밑에서 헐떡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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