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아리랑

 

 

늙은 가수 소프라노로

아리랑을 부르네.

 

호흡은 가빠져

박자는 이가 빠지고

 

높은 소리 갈라져

깨진 아리랑

 

깨어져 막걸리처럼

맛난 아리랑

 

 

2018. 10. 12

posted by 청라

각원사 청동대좌불

각원사 청동대좌불

 

 

어떻게 살아가면 저리 고운 모습일까

서편 하늘 걸린 눈빛 중생衆生들 복을 비는

입가의 따뜻한 미소 봄 벚꽃이 피어나네.

 

사랑도 집착執着이라 훨훨 벗어 버리려도

작은 아픔에도 몸이 먼저 타올라서

마음은 향불 올리는 잔정에도 짠하다

 

 

2018. 9. 29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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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

산마을

 


횃소리

닭울음에

산이 와르르 무너져서

 

집집 골목마다

송홧가루 덮인 마을

 

아이들 놀이소리도

빤짝 켜졌다 지는 마을

 

 

2018. 9. 28

posted by 청라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목백일홍 꽃빛에

졸음이 가득하다.

한 뼘 남은 목숨을

다 태우는 매미 소리

친구야, 술잔에 담아

한 모금씩 마시자.

 

 

2018. 9. 9

posted by 청라

산길

산길

 

 

산길을 오르는 것은

산에 물들어가기 위해서다.

산으로 녹아들기 위해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몸으로 산이 되기 위해서다.

 

조그만 풀꽃으로 피면 어떠리.

초록빛으로 같이 물들다가

새들의 노래를 모아

자줏빛 내밀한 속말 한 송이로

서있으면 좋겠네.

 

솔잎 스쳐온 바람이

미움을 벗겨가고

꽃향기 다가와 욕심을 벗겨가고

 

말갛게 벗고 벗어

투명해져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어떠리.

 

내가 정상을 향해 산길을

끝없이 올라가는 것은

모든 것을 발아래 두려는 것이 아니다.


품어 안고 섬기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2018. 9. 4

문예운동142(2019년 여름호)

현대문예105(20197,8월호)

 

 


posted by 청라

개화開花

개화開花

 

 

꽃필 때

꽃빛에

아침노을 마실 왔다.

시작은 아름답게 해야 한다고.

 

 

2018. 8. 28

posted by 청라

딸 바보

딸 바보

 

 

아빠랑 꽃밭에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엔

내 얼굴만 가득가득 담겼네요.

 

아빠는

어떤 꽃보다

내가 제일 예쁘대요.

 

 

2018. 8. 11

posted by 청라

가시연

가시연

 

 

예쁘고 고운 것은

눈만 흘겨도 쉬이 아파

 

물 저만큼 터를 잡고

완고한 장창처럼

 

가시를

세운 후에야

자줏빛 저 환한 웃음

 

 

2018. 8. 2

posted by 청라

둘이 먹는 밥

 

 

달도 덩그렇게 혼자 떠 있을 때는

죽고 싶도록 외로운 것이다.

하나 둘씩 별이 눈뜨고

온 하늘이 별들의 속삭임으로

수런거릴 때

달의 미소가 더 따뜻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들끓는 식당 안에서

식판을 들고 와 혼자 밥을 먹을 때

아무도 앞자리에 마주앉는 이 없는 사람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손잡고 같이 걸을 때

삶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아내여!

아침저녁 식탁에

나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하다.

내 옆에서 젓가락 달그락거리는

당신의 호흡이 느껴질 때

나는 비로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낀다.

 

자식들이 하나씩 제 둥지로 흩어져가고

어깨동무했던 친구들

남처럼 서먹해졌을 때

돌아서지 않고 언제나 내 옆 자리를 지켜준

밥을 같이 먹어준 아내여!

 

세월의 눈금이 눈보라처럼 거셀지라도

당신의 미소는

늘 솔빛처럼 싱싱해야 한다.

내 옆 자리에는 언제나

당신이 있어야 한다.

 

2018. 7. 27

문학사랑2018년 가을호(125)

posted by 청라

아버지의 등

 

 

노송에 기대어 선다.

든든한 느낌이 아버지의 등 같다.

 

웃음 속에

늘 고뇌를 감추고

세상의 바람에 힘겨워하면서도

 

자식들에겐

산처럼 등을 맡기셨던 아버지.

 

그 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고

세월만큼 허약해진 등을 두드리면서

 

아이들이 힘들 때

믿음이 되고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서슴없이 기대오는

아버지의 등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의 추위에도 늘 푸르게

젊음을 벼려놓는 소나무처럼

눈물이 절반인 삶의 술잔 속에서도

해맑은 웃음의 알통을 세운다.

 

 

2018. 7. 20

대전문학81(2018년 가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