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파리

사금파리

 

 

깨어진 것보다 더 아픈 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움큼의 그리움만 채워도 흘러 넘쳐서

밤이 되어도

별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조각 난 사랑 감쪽같이 붙여보지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갈 사이에 묻혀 

변하지 않았다고 반짝거려도

닿는 것 모두 베어버릴 날 세운 이 몸으로는

당신 가까이 갈 수는 없다.

 

 

2017. 7. 4

2017년 가을호(121)문학사랑』 

posted by 청라

아버지

아버지

 

 

ᄒᆞ나

 

아버지 제삿날 저녁 생전의 사진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거울 속에 비춰있네.

평소에 못마땅하던 것도 어찌 저리 닮았을까

 

2017, 6. 24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못 지나가서

동장군 유난하던 정유 겨울 늦은 밤에

추위에 떨던 거지를 집안에 들이시니

 

2017, 7. 2

 

 

 

어머니 가슴에서 형님 뺏어 짊어지고

햇볕 고인 양지쪽에 돌무덤 만들고서

남몰래 쏟은 통곡에 도라지꽃 피었다.

 

2017. 7. 13

 

 

 

육이오 끝 무렵 왼손에 총을 맞아

굽은 손 모진 통증 평생을 살면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려 거친 땅을 일구셨지.

 

2017. 7. 18



다ᄉᆞᆺ

 

아버지 웃음 속엔 고뇌가 절반이다.

저녁에 돌아와서 환히 웃는 얼굴 뒤엔

세상에 휘둘리다 온 아픔이 녹아있다.

 

2017, 7. 3

 

posted by 청라

고가古家 이야기

고가古家 이야기

 

 

그 오래 된 집에

젊은 주인이 들어서면서

오백 년 묵은 향나무는 갈 곳이 없어졌다.

 

나이테마다 어려 있는 역사의 향기도

세월의 아픔을 감싸 안은 둥치도

톱날 아래 무참히 잘려나갈 운명이 되었다.

 

새 주인은

옛날 냄새나는 것들 모두 치워버리고

팬지, 데이지, 베고니아로 화사하게 집안을 꾸미겠단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모두 버림받아야 되는 것일까.

향나무 그 옆 꽃밭에 베고니아를 심고

옛날과 지금이 조화롭게 어울리면 안 될까

 

금방 잘려나갈 줄도 모르고

뒤틀린 손발 끝에 힘차게 새싹을 밀어올리는

향나무를 보며

 

주인이 바뀔 때마다

하나씩 잘려나가는 옛날의 굵은 줄기들 너머

잔가지처럼 가늘어져만 가는 나라가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2017. 5. 17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