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

 

 

이팝꽃 핀 날 아침엔

당신의 창가에 커튼이 내려져도

서러움이 덜할 것 같다.

 

가로등 일찍 꺼진 거리에

수많은 꽃잎들이 불을 밝히고

안개처럼 흐르는 향기

 

도솔산 뻐꾸기 소리 한 모금

커피에 타서 마신다.

온몸으로 번져가는 나른한 행복

 

하루 종일 바람이 불어

꽃이 다 지지 않는 한

닫혀 진 커튼 더 활짝 열리겠지.

 

아직 잠들었던 작은 봉오리마다

황홀한 예감들이 깨어나고 있다.

 

 

 

 

posted by 청라

바람에게

바람에게

 

 

잎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심어놓고 흔들어대는데

잎 필 겨를이 어디 있으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눈 흘기지 말아라.

뿌리가 다 말라가는데

꽃 피울 정신이 어디 있으랴.

 

열매 맺지 않는다고

소리치지 말아라.

꽃도 못 피웠는데

열매 맺을 사랑이 남아 있으랴.

 

 

posted by 청라

봄날의 오후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2017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