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서

 

 

현충원에서

 

장미꽃을 꺾어서

비석碑石을 쓸어준다.

 

장미꽃 향기가

비문碑文마다 배어든다.

 

누군가 돌 꽃병에 꽂아두고 간

새빨간 통곡

 

뻐꾸기도 온종일

가슴으로 울다 

시드는 철쭉처럼 지쳐 있구나.

 

어느 산 가시덤불 아래

그대의 피 묻은 철모는 녹이 슬었나.

 

자식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남편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뱃속에 두고 온 아버지라는 이름도 버리고

 

그대는

나라를 위해 죽었지만

나라는 그대에게

한 뼘의 땅밖에 주지 못했구나.

 

외치고 싶은 말들이

초록의 함성으로 피어나는

묘역에 앉아

 

그대의 슬픔을 닦아주다가

나도 그만 뻐꾸기를 따라

목을 놓는다.

 

2017. 10. 19

대전문학78(2017년 겨울호)

나라사랑문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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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

가을의 노래

 

 

창공을 불러내려

팔각지붕에 펼쳐놓고

 

굴곡진 꼭지마다

아픈 일들 걸어 말리면

 

바람에

씻겨가면서

국화처럼 향이 밴다.

 

 

2017.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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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시학

엄기창론 2017. 10. 3. 10:07

이달의 문제작<>

 

타자시학

 

                                                                         정 신 재

                                                                                                         <문학평론가>

 

 

  라캉에 의하면 타자는 주체가 아닌 모든 사람만이 아니라 주체가 가지고 있지 않은 모든 사물에 해당되는 궁극적인 기표(SIGNIFIER)이다. 이 타자는 내가 아닌 모든 것의 궁극적인 기표이기 때문에 사실상 나를 정의한다.(조셉 칠더스 게리 헨치 외, 현대 문학 문화 비평 용어 사전문학동네, 2001) 시문학9월호에는 주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타자가 대행하고 실패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품이 많았다.

  대부분의 시에는 타자가 들어있다. 주체가 타자와 함께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은 화자의 몫이다.

 

중략

 

5. 융합의 미학

 

  몸이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신체 기관과 피와 살이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래서 몸의 각 부분은 융합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융합이 몸을 살린다.

  엄기창에게 타자는 융합을 추구하는 존재요, 사물이다.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엄기창, 슬픔을 태우며부분

 

  전쟁에서 패배한 군사 나라 없는 백성을 통해서 시인은 역사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현재에 남아있는 타자의 생명력에 주목한다. 타자의 생명력이 지속되는 한 역사는 바람처럼 굴러가는 것이다.

 

 

시문학201710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