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

posted by 청라

세월

세월

 

 

처녀 시절엔 오빠 오빠

결혼 후엔 아빠 아빠

 

육십 넘자 방귀 뿡뿡

거실에서 속옷 바람

 

오빠는

사라져버리고

아빠만 남아있다.

 

 

2017. 3. 16

posted by 청라

국민에게 考함

국민에게

 

 

고주배기는

도끼로 힘껏 찍어야

넘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 스스로 안으로 썩고 썩어

마침내 삶의 의욕마저 다 잃었을 때

어린아이의 툭 차는 발길질에도

힘없이 대지 위에 널브러지고 만다.

 

나라는

외적外敵이 강해서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핏줄끼리 스스로 싸우고 싸워

증오와 갈등으로 곪고 곪았을 때

총 몇 자루만 들고 들어가도

모두 손들고 마는 것이다.

 

 

2017. 3. 10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