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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람에게
잎이 피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아라.
심어놓고 흔들어대는데
잎 필 겨를이 어디 있으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눈 흘기지 말아라.
뿌리가 다 말라가는데
꽃 피울 정신이 어디 있으랴.
열매 맺지 않는다고
소리치지 말아라.
꽃도 못 피웠는데
열매 맺을 사랑이 남아 있으랴.
글
봄날의 오후
지난가을 계족산 고갯길에
누군가 낙엽을 모아
큰 하트를 장식해 놓았다.
저마다 화려한 가을의 빛깔들이
사랑의 무늬로 반짝이고 있었다.
겨우내 사나운 바람 다녀간 후
산산이 깨어졌을 사랑의 파편을 생각하며
산길을 올랐다.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일까
옷깃 하나 흩트리지 않은 하트의 품속에
종종종 안겨있는 조그마한 하트들
아, 큰 사랑이
또 다른 작은 사랑들을 낳는구나.
사랑으로 이어진 마음과 마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었구나.
큰 하트를 만든 사람과
작은 새끼들을 안겨준 사람들의 사랑을
벚꽃들 환한 등불 켜고 지켜보는 봄날의 오후….
「대전문학」76호(2017년 여름호)
글
붉은 모자를 쓴 부처님
누군가 빨간 모자 하나
돌부처님 머리 위에 씌워놓고 갔다.
벚꽃이 활활 타오르던 날
나는 부처님과 어깨동무를 했다.
마음속으로 팔랑팔랑
꽃잎이 몇 개 떨어졌다.
견고한 어깨에서 전해지는
이 따스한 전율
목탁 소리도 끊어졌다.
불법을 덮어버린 삐딱한 빨간 모자
나는 부처님과 친구가 되었다.
되나 안 되나 불질러버린 봄 때문에
2017.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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