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천에서

유등천에서

 

 

열병식 하듯 줄지어선

갈대들의 춤사위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해오라기 눈동자가

물비늘로 일렁이는 여름날 오후

 

스쳐가는 사람들은 모두 타인이었다.

내 그림자 혼자 따라와

반짝이는 외로움

 

저기 가장교 물아래로 달리는

트럭의 바큇살마다

비누거품으로 만든 구름이 피어나고

 

발을 다친 소음騷音들은

모두 유등천으로 내려와

뿌연 물이끼로 자라고 있었다.

 

일광의 화살들을 막고 서있는

버드나무 아래엔 손수건만한 그늘 하나


어딘가로 보내는 간절한 소식처럼

계룡산 쪽으로

새 한 마리 띄워보낸다.


 

2017. 1. 17

<대전문학>75(2017년 봄호)

 

posted by 청라

YES의 삶과 NO의 삶

수필/서정 수필 2017. 1. 13. 17:45

YES의 삶과 NO의 삶

 

 

  지난 연말 서울용산역 근처의 식당에서 소중회모임이 있었다. ‘소중회란 내가 1976년 경 울진군 기성면 해안부대에 근무했을 때 같이 근무했던 중대장 소대장들의 모임이다. 대령으로 예편하신 중대장님과 이 소위, 대위로 예편한 후 큰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 소위와 나 네 쌍의 부부가 1년에 한 번씩은 꼭 만나 정담을 나눈다. 대화 소재는 주로 당시의 부대 얘기와 바다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그날따라 중대장님이 미국에 사는 외손자 자랑을 하셨다. 얼마나 총명하고 예의바른 지, 미국에서 무슨 상을 받았는지 자랑하다가 문득 꺼낸 ‘YES의 삶과 NO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내 귀에 쏙 들어왔다. 딸네 집에서 열흘 넘게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할아버지로서 손자에게 무언가 교훈을 주고 싶어서 손자를 불렀단다. 무릎을 꿇고 공손한 자세로 앉아있는 손자에게

  “얘야, 할아버지가 네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단다. 너는 ‘YES의 삶과 NO의 삶에 대해 알  고 있느냐?” 했더니

  “YES의 삶은 긍정적인 삶을 가리키고, NO의 삶은 부정적인 삶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요?”

  또랑또랑하게 대답하더란다. 그 모습이 너무도 예뻐서 손을 꼭 잡아주며

  “그렇지. YES의 삶 즉 긍정적인 삶을 살면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사람이 되어 일 평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고, NO의 삶 즉 부정적인 삶을 살아가면 모든 사람 들에게 배척받는 사람이  되어 불행한 인생을 살 것이다. 너는 꼭 긍정적 가치관 을 기본으로 해서 비판할 것은 비판하    며 살아라.”

  다음날 아침 국제전화에서 손자가 하는 첫 마디가

    “할아버지, YES” 해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단다. 그 말 속에는 충분히 할아버지가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들었고, 그렇게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나는 깊이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성찰해 보았다. 나는 과연 YES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평안을 주는 존재인가. 다행히 나는 현재의 삶이 더없이 행복하고 내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NO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모든 일의 가장 좋은 면에 눈을 돌리는 습관은 연간 1천 파운드의 소득보다도 가치가 있다.” 라고 말했다. 세상의 올바른 가치를 장려하고 남의 잘못도 잘 끌어안아주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YES의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 그런데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삶은 엉망인데도 남의 잘못만 꼬집고 갈등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 아름다운 면은 보려고도 않고 가장 어둡고 추한 부분만 바라보며 세상을 온통 불행하고 어두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이렇게 NO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절대로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

  얼마 전 친구가 술자리에서 정색하며 하던 말이 떠오른다.

  “기창아, 사람을 미워하니 마음속에 저절로 지옥이 생기더라.”



 

「문학사랑120(2017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스님

스님

 

 

잎 진 꼬부랑 길 바람처럼 오르는 스님

불룩한 바랑 짐에 무에 그리 바쁘신가

 

사바의

한숨 담아다가

씻어주려 한다네.

 

2017. 1. 10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