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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솔숲에서
한 나무 가지에 황혼이 오면
물색모르는 나무들은 박수를 친다.
햇살 향해 오르는 발걸음
가벼워진다고
나무들은 알고 있을까
한 나무가 아프면
모든 나무가 아프고
모든 나무가 아프면
곧 숲이 황폐해진다는 것을.
파란 속삭임으로
손잡고 서있던 나무가 넘어질 때
너털웃음 웃으며
송화를 더 많이 피워 올리는 나무들아
숲에 해가 기울기 시작했으니
너희들의 황혼도 멀지 않았다.
2016. 12. 27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할아버지 선물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상장모음집
파란 파일에 하얀 글씨로
‘상장모음집’ ‘엄태균’
선명하게 쓰여 있어요.
2학년 까지 받은 상장은
달랑 세 개
상장을 넣으며 내 꿈도 함께 심었어요.
6학년이 가기 전
50장짜리 상장모음집을 가득 채워야지.
비싼 게임기 선물보다
파란 꿈을 키우는 상장모음집 정말 좋아요.
글
적색경보
할머니 백발 위에 얹힌 호접 핀처럼
낮달이 하나 피뢰침에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늦가을 오후
바람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다
십자가에 목 잡힌 나의 비닐봉지는
비명처럼 검은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사방에서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에
은밀한 비밀들은 낯선 모니터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고
고층건물의 우람한 근육에 막힌 길들은
가닥가닥 끊어져 바람에 펄럭인다.
발자국마다 넘치는 자동차 소리 밟아가면서
으악새 소리로 마중 나온
산의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미친 듯 경련하는
플라타너스 마지막 잎새의 불안
내 마음의 신호등엔
반짝 하고 빨간 불이 켜진다.
2016. 12. 15
『심상 2017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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