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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적색경보
할머니 백발 위에 얹힌 호접 핀처럼
낮달이 하나 피뢰침에 꿰어
파르르 떨고 있는 늦가을 오후
바람을 타고 도시를 탈출하다
십자가에 목 잡힌 나의 비닐봉지는
비명처럼 검은 종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사방에서 찍어대는 카메라 소리에
은밀한 비밀들은 낯선 모니터에서
수십 번씩 재생되고
고층건물의 우람한 근육에 막힌 길들은
가닥가닥 끊어져 바람에 펄럭인다.
발자국마다 넘치는 자동차 소리 밟아가면서
으악새 소리로 마중 나온
산의 눈짓을 따라가다 보면
미친 듯 경련하는
플라타너스 마지막 잎새의 불안
내 마음의 신호등엔
반짝 하고 빨간 불이 켜진다.
2016. 12. 15
『심상 2017년 6월호』
글
인연
아내는 아침 저녁
당약을 꼭꼭 챙겨주면서도
아이들 입맛을 위해
반찬에 물엿과 매실 엑기스를 들이붓는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아내의 주름살이
진심임을 안다.
아주 자주 아이들에 대한 사랑 앞에
바람에 날려보내는 플라타너스 잎새라 해도….
하나의 인연은 동아줄이 아니다.
새로운 인연과 만나고 얽히면서
뒤로 밀리기도 하고 가끔은
끊어지기도 하지만
아내의 눈가에 내비치는 아름다운 근심 때문에
나는 오늘도 설탕 투성이의 음식을
불평 없이 먹을 수밖에 없다.
2016. 12. 10
글
촛불
]
혼자일 땐 기도祈禱더니
모이니
칼날이다.
아픈 살
도려내도
드러나는 검은 몸통
모두가 썩은 살인데
베면 무엇 하겠는가.
2016.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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