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곡 장날

사곡 장날

            엄 기 창

 

 

이틀, 이레 아침이면

수탉보다 먼저 잠이 깼다.

 

어머니 손잡고 장에 가는 날엔

회재 넘어 시오리 산길도

걸음이 가뿐했다.

 

팔 것은 달걀 몇 줄에

콩 보리 서너 되

등유를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빨고 빨아서 대만 남은

아이스케키 입에 물고

태평소 가락에 어깨 들썩이며

써꺼스 마당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는 빈 주머니로

살 것도 없이

장터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점심 짜장면 한 그릇은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소원,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이 맺힌 어머니는

짜장면 대신 얘기책은 꼭 샀고

 

돌아가는 길 내내

알록달록한 호기심으로

숙향전 숙영낭자전의 주인공 되어

어머니에게 짜장면 배터지게 사주는 꿈을 꿨다.

 

2015. 10. 13

posted by 청라

공주에 가서

공주에 가서

                  엄 기 창

 

 

지금

어디쯤 헤매고 있는가?

 

낙엽 지는 게

외롭게 느껴지면

젊은 날의 공주로 한 번 가보세.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 한 잔을 마셔도

가슴이 더 따듯해지던 곳

 

술에 취해

욕설을 내뱉어도

입에선 역사의 향기가 나던 곳

 

젊은 날 버리고 간 아픔을 기억해주는

금강으로 가서

오늘의 슬픔도 코스모스 꽃처럼 띄워보내세.

 

공산성 등성이에도

가을이 익었으리.

 

단풍으로 다시 한 번

삶을 불태워 보세.

 

posted by 청라

산사山寺

산사山寺



풍경소리 불러낸 달이

더 둥그렇게 떠오르고


달빛이 씻어놓은

탑 그늘엔

까만 적막

 

적막 속에서

목탁소리 일어선다.

 

솔바람 타고

절 안을 한 바퀴 휘돌다가

속세의 꿈밭을 밝혀주려고

산문 밖으로 내닫는다.

 

목탁소리로 정화된 법당

밤새도록 노승의 독경讀經

부처님 미소가 익어

 

아침 연못

어둠이 토해내듯

말갛게 피어난 연꽃 한 송이......

 

 

2015. 9. 24

<문학저널>2015년 11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