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항에서

삼척항에서

 

 

달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만선滿船의 달빛을 바다에 부려놓았다.

파도의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일어선다.

나는 야성野性의 포말泡沫이 한눈에 보이는

선창가 횟집에서

바다의 살점을 씹어가면서

시든 젊음의 등잔에 불을 밝힌다.

! 바위의 심장에 뿌리박고

사랑으로 피어난

한 송이 해당화이고 싶어라.

금박의 꽃술마다 수로水路의 유혹으로 익어

불타는 열매를 맺고 싶어라.

오십천으로 떠내려 온 태백산

봉우리마다

한 등씩 반짝이는 별을 걸면서

모닥불처럼 뜨거운 정라항 열기에 취해

잠들지 못한다.

밤새도록 내 핏속에서

질주하는 대양의 바람소리가 들린다.

 

2015. 10. 29

<대전문학> 70호(2015년 가을호)

시문학598(20215월호)

 

posted by 청라

죽림竹林의 저녁

시조 2015. 10. 15. 15:21

죽림竹林의 저녁

 

 

있고 술 있으면

내 집이 죽림竹林이지

 

바람에 씻긴 달을

맛있게 시로 깎아

 

아끼는 술친구 불러

술안주로 내놓다.

 

 

2015. 10. 15

posted by 청라

사곡 장날

사곡 장날

            엄 기 창

 

 

이틀, 이레 아침이면

수탉보다 먼저 잠이 깼다.

 

어머니 손잡고 장에 가는 날엔

회재 넘어 시오리 산길도

걸음이 가뿐했다.

 

팔 것은 달걀 몇 줄에

콩 보리 서너 되

등유를 사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빨고 빨아서 대만 남은

아이스케키 입에 물고

태평소 가락에 어깨 들썩이며

써꺼스 마당에 취해 있으면

 

어머니는 빈 주머니로

살 것도 없이

장터를 몇 바퀴 돌고 돌았다.

 

점심 짜장면 한 그릇은

이루지 못한 내 어릴 적 소원,

 

초등학교도 못 나와

한이 맺힌 어머니는

짜장면 대신 얘기책은 꼭 샀고

 

돌아가는 길 내내

알록달록한 호기심으로

숙향전 숙영낭자전의 주인공 되어

어머니에게 짜장면 배터지게 사주는 꿈을 꿨다.

 

2015. 10. 13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