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척교 戀歌

목척교 戀歌

 

 

비오는 날 목척교에 나가보자.

슬픈 눈빛의 여인 하나 만날 것 같다.

소주 한 잔에 체온을 나눠 마시며

황톳물에 퍼다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젖은 사연

도란대는 물소리 듣다가보면

우리들의 슬픔은

바람에 스쳐가는 자잘한 이야기일 뿐.

보문산 소쩍새 소리 불러다가

그녀의 진회색 미소 위에

목거리처럼 걸어줬으면 좋겠다.

교각에 걸려있는 영롱한 불빛으로

마음 밭에 숨어있는 그늘을

말끔히 씻어줬으면 좋겠다.

봄이면 그네 뛰고 놀던 추억들이

물안개로 피어나는 목척교에 서면

대전천 물들은 서 있는데

우리들의 사랑은 어디론가 흘러간다.


 

2015612

<대전문학>69호(2015년 가을호)

<심상>2016년 6월호


 

posted by 청라

장미

장미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인가

서둘러 담 위로 기어 올라와

고갤 길게 내밀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저 불타는 갈망,

빈 골목길 회오리바람에 검불만 날려도

온몸 떨면서 깜짝깜짝 놀라는 것이다.

지난겨울 혼자 살던 할아버지 산으로 가고

대문 굳게 닫힌 울안 

빈 집 속의 적막으로 봉오리 부풀려

한 등 눈물로 켜든 저 짙붉은 외로움.

 

 

201562

대전문학2016년 여름호(72)

『심상2016년 6월호

『한국 시원』2018년 여름호(9호)

posted by 청라

<청라의 사색 채널>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도 맑아진다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한비자의 외저설 죄상편(储說·左上篇)에 보면 상행 하효(上行下效)’라는 말이 나온다. ‘윗사람이 모범을 보이면 아랫사람이 본받는다.’ 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뜻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춘추오패(春秋五霸) 한 사람인 제환공(齐桓公)은 평소 보라색 옷을 즐겨 입었다. 이에 조정 대신은 물론 일반 백성까지 보라색 옷을 입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제나라 도읍은 온통 보라색 천지가 되었고, 보라색 옷감 가격은 껑충 뛰어 보라색 비단 한 필의 가격이 흰색 비단 다섯 필의 가격과 맞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제환공이 대신(大臣) 관중(管仲)을 불러 말했다.

  “보라색 비단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으니 가격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도를 찾아보게그러자 관중이 입을 열었다.

  “아뢰옵건대 폐하께서 먼저 보라색 옷을 멀리하고 보라색 옷 입은 사람들을 멀리 하옵소서

  다음날 조회에 참석한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환공이 좋아하는 보라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때 제환공이 갑자기 손으로 코를 막더니

  “보라색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구나. 가까이 오지들 말거라.” 하고 손사래를 치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조정은 삽시간에 출렁이기 시작했다. 어리둥절해진 대신들은 저마다 입고 있던 옷에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날부터 대신들은 모두 보라색 의상을 벗고 전에 입었던 옷들을 도로 꺼내 입었다. 그 후로 백성들도 더는 보라색 옷을 찾지 않았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제나라 도읍에서는 보라색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없게 되어 옷감과 물감 가격도 다시 안정되었다.

  요즈음 눈만 뜨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정치인들의 비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제환공처럼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모범을 보임으로써 국민들이 본받도록 실천하는 사람들은 보기 어렵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법관과 같은 지도층의 행동이 바르지 않으니 국민들이 보고 배울 것이 없다. 늘 나라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누구를 뽑아놔도 다 똑같아. 뽑을 사람이 없어.”

  선거철만 되면 유권자들이 항시 읊조리는 절망적인 말이다. 정말 뽑을 사람이 없다. 누구를 시켜놔도 제 당과 자신의 이익에만 민감하고 진정으로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 진충보국하는 정치가는 없다. 새로운 사람을 선택하고 기대하지만 지나고 보면 늘 그 타령이다. 왜 그럴까? 바로 정치가들의 텃밭인 국민들 자체가 정치가들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비리에 침을 튀기며 분노하지만 국민들 하나하나가 불의한 큰 이익 앞에서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다고? 이오십보 소백보다.

  정치인들 욕만 하지 말고 국민들 모두 스스로의 행동을 정화하자. 누구를 뽑아놔도 깨끗하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게 텃밭을 닦아놓자. 아랫물이 맑아야 윗물도 맑아지는 것이.  


                                                                         <금강일보> 2015년 5월 29일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