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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스승의 날에
철쭉꽃 모여
타오르는 산
가까이에서 보면
가끔은 벌레 먹은 꽃잎도 있네.
꽃잎 하나 태우려고
모두가 저 꽃밭에 불을 지르는가!
스승의 날에…….
2015. 5. 15
글
<청라의 사색 채널>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견리사의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이라는 말씀은 원래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말씀으로 안중근 의사님의 유묵(遺墨)으로 더 유명해진 말이다. 이익을 보면 먼저 의로운 재물인가를 생각하고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바치라는 이 말은 이익 앞에서 한없이 비겁해지고, 이익을 위해서는 국적을 바꾸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려주는 큰 교훈이 되는 말이 아닌가 한다.
자주 안부를 물어오던 제자에게 한 달 가까이 연락이 없어 직장으로 전화를 했더니 보직해임 되어 나오지 않았단다. 하도 기가 막혀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는 알려줄 수 없단다. 본인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도 영 받지 않는다. 자식 놈이 그런 일을 당한 듯 궁금하고 속상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소식을 알 만한 그의 친구들에게 다섯 번짼가 전화를 걸었더니,
“선생님, 걔 돈 먹고 잘렸대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고놈이 괘씸했지만 참고 연유를 물어보니 옛날 돈을 조금 받은 것이 문제가 되어 보직해임이 되었단다. 나는 너무도 기가 막혀 한동안 세상을 다 잃은 듯 넋을 잃고 있었다.
교직생활 초기에 시골 면 소재지 고등학교 아수라장의 분위기 속에서 열정을 다하여 키워낸 금쪽같은 제자였다. 어수선한 면학분위기 속에서도 소신을 잃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더니 서울 근교의 명문대 행정학과에 입학을 했고, 경찰 간부시험에 합격하여 총경까지 승진한 제자였다. 정의롭고 봉사심이 많아 나라의 기둥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던 제자였다. 대전에 와서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 자랑스러운 제자들을 수없이 길러냈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 엉겅퀴처럼 스스로 자란 제자이기에 누구보다 사랑하고 아끼는 제자였다. 그런 제자가 작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여 허무하게 앞길을 망친 것이다.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을 강조하지 못한 것이 너무도 후회가 되었다.
이로움이 눈앞에 있을 때 과연 의로운 이로움일까를 생각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평소에 더없이 청렴하고 깨끗한 듯이 행동하는 사람들도 재물이 눈앞에 있을 때 의로운 재물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기보다 과연 이걸 먹고 걸릴까 안 걸릴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가 ‘설마 걸리겠어.’하고 꿀꺽 삼켰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요즈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도 견리사의(見利思義)의 교훈을 생각하지 않고 의롭지 못한 뇌물을 받아들인 많은 사람들 때문에 생겨난 결과이다. 그들은 한 번의 잘못 판단으로 전도양양하던 정치생명도 끝장이 나고, 그들을 신뢰하던 많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또한 군대에 가기 싫어하는 젊은이들이나 자신의 발전을 위해 국적을 버리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견위치명(見危致命)의 교훈에 대해 강조하고 싶다. 눈보라 치는 만주벌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렸던 선조들은 자신의 목숨이 귀한 줄 몰랐던 분들일까. 나라가 있어야 생존권이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자신의 발전과 행복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찍 깨달은 선구자들이다. 국민들 모두 양심이 살아있어야 나라가 번창하고, 나라가 건재해야 자신은 물론 가족들의 행복마저 지켜진다는 것을 깨닫고 견리사의 견위치명(見利思義見危致命)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자.
<금강일보> 2015년 5월 1일
글
보성 차밭에서
엄 기 창
차나무 가지 끝마다
혼(魂)불 환하게 밝혀드는
저 연초록 손들을 보아라.
흰 눈을 이고 견딘 겨울의
뚝심을 모아
쌉싸래한 맛 속에 숨어있는
상큼한 차향(茶香)을 일으켜 세우나니
삼나무들도 어깨동무하고
눈짓 주고받으며
제암산(帝巖山) 정기를 퍼내어 끝없이 보내주고 있다.
득량만(得粮灣) 파도야,
대양(大洋)을 치달리던 폭풍의 노래들을
엽록소에 담아주려고
밤새도록 뻘밭을 기어오르느냐.
보성 차밭머리에서
성스러운 차 한 잎을 피우기 위해
정결한 머리로 기도하는 오선(五線)의
선율에 취해
다시는 일상(日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2014. 4. 25
<문학사랑> 2015년 여름호(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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