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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민들레 편지
현충원에 가서 잡초를 뽑다가
어느 병사의 무덤에서
날아오르는 민들레 홀씨를 보았다.
바람도 없는데
무덤 속 간절한 절규가 솟아올라
북녘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따뜻한 사랑 한 포기
싹 틔울 수 없는 툰드라의 언 땅에서
흰옷 입은 사람들의 소망이 싹틀 수 있도록
반백 년 넘게 땅 속 깊이 묻어
발효시킨
저 병사의 피 맺힌 염원과
‘함경도’
소리만 들어도 눈물 흘리시던
내 할아버지의 슬픔,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에
담아 보낸다.
내년 민들레꽃 피기 전까지
굳게 동여맨 민족의
허리띠를 풀자.
2013. 4. 30
글
까치
몸 하나 누일만큼
알 하나 품을만큼
미루나무 꼭대기에
오막살이 지어놓고
“깍깍깍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저 까치.
백 번을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소리
바람 숭숭 뜷린 집에
밤 하늘 별이 새도
“깍깍깍 나도 사랑해”
깃을 펴는 저 까치.
2013. 4. 16
글
외돌개
-제주 詩抄2
누군가 환청처럼 부르는
소리를 따라
서귀포 칠십 리 해안선 길을 걷다가
기다림으로
하반신이 닳아버린
외돌개, 그 처절한 외로움을 만나다.
삶이 때로는
슬픈 무늬로 아롱질 때도 있지만
동터오는 아침 햇살로 반짝 갤 때도 있으련만
외돌개야!
빠지다 만 몇 올 머리카락 신열처럼
바람에 흩날리며,
주름진 피부 골골마다
소금기로 엉겨 녹지 않는
진한 통증을 안고
먼 바다를 응시하는 눈망울엔
아직도 무지개처럼 영롱한
꿈이 어렸다.
외로움을 보석처럼 깎고 다듬어
메마른 가슴에
해당화 한 송이 피울 날을 기다리며
갈매기 소리에도 귀를 막고
혼신의 힘을 다해 파도 소리로 부서지는
할머니 옆에
나도, 문득
자리를 펴고
하나의 돌이 되고 싶었다.
2013.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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