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년만 함께 가자

 

아내의 오른쪽 뇌가

휑해진 사진을 보고는

입만 떡 벌리고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되지

 

다음날 새벽부터

견과류 찾아 먹이고

오메가 쓰리 먹이고

 

아침식사 후엔

아리셉트, 글라이티린

챙겨주고

 

침대 이불은

아내 쪽 머리 부분

구김이 안 가도록 잘 펴놓는다.

 

아내야!

이대로 삼십 년만 지금같이 가자.

 

잃은 것은

잃은 것대로 그냥 놓아두고

이대로 삼십 년만 지금같이 가자.

 

비오는 저녁에도

아내의 손을 끌고 유등천변을 걸으며

, , 부처님, 십자가 안 가리고

어디나 고갤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2019. 10. 19

posted by 청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싶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구름 끼는 일처럼 무심해진

세월이지만

비오는 날엔 대전역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별을 하고 싶다.

눈물 보다는 웃음을 더 많이

보여주리.

미워하기보다는 행복을 빌어주면서

그리움으로 가꾸면

이별도 꽃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리.

보내고 돌아서면 온 세상 빗물이 모여

내 가슴 온통 눈물바다가 될 지라도

꽃이 흔들리는 것처럼 손 흔드는

그런 이별을 하고 싶다.

 

2019. 10. 18

시문학581(201912월호)

posted by 청라

대전역에서

 

 

보문산 뻐꾸기 노래처럼

들리다

안 들리다 하는 게 사랑이다.

 

울지 마라.

웃으면서 손 흔들고

돌아서서 눈물 흘리는 게 진짜

충청도 사랑이다.

 

작년 가을에

울면서 떨어지던 잎들도

말간 웃음으로 새롭게 등을 켜지 않느냐.

 

돌아서지 마라

아주 돌아서지만 않는다면

다시 돌아와 부둥켜안는 곳이

대전역이다

 

 

 

2019. 10. 10

대전문학91(2021년 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