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태평양 항해일지

북태평양 항해일지

 

 

분노는 모이면 모일수록 거대해지는가.

 

몽니를 보아라.

풍파로 일어서는 저 남자의 거대한 주먹

 

위도선을 따라 서진하며 심통 부리는

폭풍의 왼쪽 가항반원可航半圓

배를 놓는다.

 

북태평양의 겨울은

바람의 나라다.

어린아이 달래듯 시속 사, 오 노트

 

0545시에

북위 3210, 서경 17021

변침점까지는 아직도 멀다.

 

세상은 뒤집어지더라도

방화, 방수 훈련 준비 이상 무

 

폭풍에 씻긴 달과 별이

아기 웃음처럼 해맑다.

 

 

posted by 청라

0시의 바다에서

0시의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의 수인囚人이 되어버린 것은

바다가 내 안에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0시의 바다엔 사랑이 철조망이다.

나는 절대로

바다를 뿌리치고 떠날 수가 없다.

 

단단한 껍질에 갇힌 밤벌레처럼

불빛 한 점 없는 고독의 사막에서

바다의 체취體臭만 파먹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다를 내 안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곁으로는 갈 수가 없다.

출렁거리는 저 물결을

가슴에 담은 후로는

 

 

posted by 청라

근해近海를 나서며

근해近海를 나서며

 

 

살다가 싫증이 나면 배를 타는 거다.

오륙도가 한사코 나를 붙잡아도

그래, 대양大洋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머리 감아 빗고 새색시처럼 다소곳한

섬들 하나씩 뒤로 밀려나고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조차 출렁이는 물결에

씻겨나갈 때

 

절대로 돌아서지 않으리라.

가족들과 단란히 조반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아침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그 많던 어선들 한 척씩 줄어들고

막걸리 맛처럼 외로움이 혼곤하게 배어들 때

내 의지 포세이돈의 근육처럼 굳세게 단련하여

해를 잡으러 해 뜨는 곳으로

끝없이 달리리라.

 

인생처럼 넘고 또 넘어도

끝없이 가로막는 파도

세월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바다에서

이제 저 수평선만 훌쩍 넘으면

부상扶桑이 코앞에 다가오겠지.

 

 

 

posted by 청라

출항出港의 아침

출항出港의 아침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posted by 청라

바다에서 길을 찾다

바다에서 길을 찾다

 

 

가끔은 인생의 사막을 걷다가

길을 잃을 때

그믐밤 어둠인 듯 삶이 막막할 때

바다로 나아가자.

 

바다에는 길이 있다.

수평선 너머 아득한 대양大洋에는

거칠고 험난하지만

사나이 걸어갈 길이 있다.

 

오늘 너는 배를 만들고

내일 나는 그 배를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돌며

우리의 자랑을 전하고 오리라.

 

스페인이, 포르투갈이

대영제국이 간 길을 따라

바다에서 길을 찾아

태극기 휘날리리라.

 

가끔은 주저앉고 싶을 때

바다로 나아가자.

폭풍에 춤추는 물결 사이로

우리가 걸어갈 길이 보인다.

 

 

posted by 청라

바다는 감동이다

바다는 감동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그냥 탁 트이는 게

무엇이 있을까

귀 기울이지 않아도 모든 근심 씻어주는

노래를 가진 게 무엇이 있을까

 

바다는 감동이다.

 

곁에 서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고 눈물이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고

끊임없이 박수를 치고 싶다.

 

사랑을 잃었을 때, 소망이 사라졌을 때

아아, 그래서

세상이 막막할 때 찾아가면 가슴을 열어 안아주고

나직한 속삭임으로 위로를 보내주는 게 바다다.

 

바다여, 바다여!

네 모습 목이 말라 달려가다가 산마루에서 흐릿하게

보이기만 하면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목이 멘다.

 

먼 곳에서도 너는 소리로 온다.

돌담을 지나면 해당화 꽃이 피어있고

바닷가 절벽 소나무 가지에 걸린 갈매기 노래

바다여, 너는 가슴으로 온다.

 

내 인생에서 꽃다발을 받을

기쁜 날이 온다면

제일 먼저 안아주고 싶은 건 바로

바다이다.

 

 

 

 

 

posted by 청라

완장

완장

 

 

아무도 내게

완장을 채워주는 사람이 없다.

가슴 속에 꽃 한 송이 피우듯

내 스스로 만든 예쁜 완장 하나 차고

바다의 노래가 늘 푸르게 살아있도록

바다를 지킨다.

새벽에 해변에 나가 보면

오늘도 파도는 앓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인간들이 버린 삶의 껍질이

콜레스테롤처럼 바다의 혈관을 막고 있다.

저렇게 사는 것도 길이 되는가.

바다를 버리면 바다의 분노가

인간의 삶을

해일로 덮어버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바다의 몸이 너무 커서

내가 닦아주는 곳이 바다의 손톱 또는

머리카락 한 올일지라도

나는 오늘 페트 병 하나라도

건져 올리고

작은 상처라도 싸매주면서

바다의 흥타령이 온 바다에 울려 퍼지도록

기도한다.

완장을 다시 한 번 바르게 차며

 

 

 

 

posted by 청라

답청절 파도를 밟다

답청절 파도를 밟다

 

 

속도를 올린다. 방파제를 차고

바람에 흔들리는 수평선을 향해

파도야 누워라 대장님 나가신다.

뱃머리 내려앉는 햇살에

봄은 무르익고

긴 해안선마다 산 벚꽃 그림자를

가득 담았다.

 

준비한 거라야

소주 됫병에 된장 한 종지

가슴 가득 담고 온 설렘 한 단지

점심은 해삼 전복 건져

소주잔으로 때우고

저녁엔 황혼을 딛고 돌아오면 되지

 

답청절 풀을 밟듯 파도 밟고 들어가

화전을 부치듯 패전을 부쳐

부어라 마셔라 흥을 돋우면

웃음소리 뱃전에 부딪쳐 노래가 되어

갈매기도 날아가다 날개 쉬고 듣는다.

 

서먹서먹했던 이웃도 다

어깨동무 되어

황혼이 융단처럼 깔린 파도 밟고 돌아오면

올해도 우리 마을엔

바다가 불러서 가는 사람 없으리.

배마다 만선의 노래 가득 싣고 돌아오리.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