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선

시/제3시집-춤바위 2014. 5. 27. 18:59

생명의 선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달리는 콧노래 속으로

잠자리 한 마리 날아든다.

 

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저리가

 

내 비명에 부딪혀 추락하는

작은 몸뚱아리

 

도망가도 도망가도

유리창에 붙어 따라오는

잠자리의 단말마

 

유월의 초록빛 산하가

피에 젖는다.

내가 끊어놓은 생명의 선이

바람도 없는데 위잉 위잉 울고 있다.

 

 

2014.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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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싸움

시/제3시집-춤바위 2014. 5. 20. 23:02

사랑싸움

 

 

사랑싸움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많이 진다.

 

아내와의 싸움엔

내가 늘 진다.

 

싸움도 꽃이라면

우리 화원엔

지는 꽃 빛깔이 더 찬란하다.

 

 

2014.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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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시/제3시집-춤바위 2014. 4. 19. 08:54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심청이 인당수에서

꽃으로 지듯

세월호에 갇힌 넋들 꽃비 오듯 지던 날은

 

심 봉사 온몸으로 울던

몸부림처럼

바다도 하루 종일 웅얼거렸다.

 

소금보다 짠 사람들의 눈물을 모아

자다가 소스라쳐 울부짖는

애비 에미의 아픔을 모아

용왕님께 빈다면

 

심청이

연꽃으로 피어오르듯

한 송이씩 해말간 얼굴들

“엄마” 부르며 피어나서

 

진도 옆 온 바다가

온통 연꽃으로 물들어 출렁였으면 좋겠네.

 

오늘 아침  대한 사람들 모두

심 봉사 눈 번쩍 뜨고

손뼉 치며 일어나듯

 

“와!!!!!!!”

하는 함성으로 강산이 무너졌으면 좋겠네.

 

 

2014.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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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속에서

시/제3시집-춤바위 2014. 4. 17. 13:04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세월 가는 걸

잊다가

 

내 신발 신발장 밖으로

밀려나는 줄도 몰랐네.

 

 

2014. 4. 17

posted by 청라

민들레 편지

시/제3시집-춤바위 2014. 3. 26. 14:49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posted by 청라

천 년의 미소

시/제3시집-춤바위 2014. 2. 26. 06:29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posted by 청라

누님의 수틀

시/제3시집-춤바위 2014. 2. 24. 09:54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posted by 청라

첫사랑

시/제3시집-춤바위 2014. 1. 30. 04:55

첫사랑



첫사랑은 늘

누런 코 훌쩍이던 일곱 살

코찔찔이 시절에 온다.

삘기를 뽑아도

찔레를 꺾어도

엄마 얼굴보다 먼저 아른거리던

마을 누나의 얼굴은

매운 세월의 바람 속에

덧없이 시들었다가

인생이 저무는 예순 살 무렵

어느 깊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슬픈 전설을 만나면

아픈 옹이처럼 심박혀

움츠러들었던 그 어린 날 진달래꽃은

불길처럼 피어나

온 산을 물들이라 한다.

모든 것을 빨아먹는

늪인 줄 알면서도

온몸을 던져서 투신하라 한다.

 

2014. 1. 30


<대전문학> 2014년 봄호(63호)

posted by 청라

어느 가을 날

시/제3시집-춤바위 2013. 11. 11. 08:51

어느 가을 날

 

회초리를 놓고서

국화꽃을 들고 간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하늘빛을 닮은 가을날에

 

교실 구석엔

아직도 오지 못한 한 아이의 자리

어둠에 묻혀 있고

 

일찍 들어선 겨울이

군데군데 눈처럼 쌓여

그림자를 만드는데

 

땡감 맛 논설문을 배울

교과서는 덮어놓자.

꽃물 번져가는 교정의 나무들 꿈꾸는  

무지개 빛깔 시 한 수 읊어보자.

 

국화 향 은은한

시로 닦아낼 수 있는 그늘이

아주 작더라도

 

한 발짝 먼저 나가지 않으면

어떠리.

아이들 마음이 풍선으로 떠올라서

하늘에 닿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2013. 11. 10

 

 

posted by 청라

바다

시/제3시집-춤바위 2013. 10. 23. 12:00

바다

 

바다가 어디

깊은 산골 맑은 물만 받아

저리 맑은가?

 

끊임없이 黃河를 가슴에 품고서도

씻고 또 씻어

 

바다는 금방 하늘을 닮는다.

 

2013. 10. 23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