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시에 해당되는 글 523건
글
세월 속에서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세월 가는 걸
잊다가
내 신발 신발장 밖으로
밀려나는 줄도 몰랐네.
2014. 4. 17
글
민들레 편지
오늘 밤 띄워 보내는
홀씨 한 올엔
전화로 드릴 수 없는
내 사랑 진액만 담았습니다.
달빛 파도 타고
날고 날아서
두견새 각혈처럼
그대 창문 두드릴까요?
밤새 뒤척이는
그대의 꿈밭 머리에
어둠 깎아 빛을 세우는
까치 소리 한 소절 싹틔우고 싶어
지난겨울 눈보라에
씻고 씻어서
남모르는 담 밑에서
몰래 키운 마음 한 포기
뿌리 떼고 줄기 떼고
향기마저 걸러내고
꽃 중에도 가장 간절한
심장만 보냈습니다.
2014. 3. 26
글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글
첫사랑
첫사랑은 늘
누런 코 훌쩍이던 일곱 살
코찔찔이 시절에 온다.
삘기를 뽑아도
찔레를 꺾어도
엄마 얼굴보다 먼저 아른거리던
마을 누나의 얼굴은
매운 세월의 바람 속에
덧없이 시들었다가
인생이 저무는 예순 살 무렵
어느 깊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슬픈 전설을 만나면
아픈 옹이처럼 심박혀
움츠러들었던 그 어린 날 진달래꽃은
불길처럼 피어나
온 산을 물들이라 한다.
모든 것을 빨아먹는
늪인 줄 알면서도
온몸을 던져서 투신하라 한다.
2014. 1. 30
<대전문학> 2014년 봄호(63호)
글
어느 가을 날
회초리를 놓고서
국화꽃을 들고 간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하늘빛을 닮은 가을날에
교실 구석엔
아직도 오지 못한 한 아이의 자리
어둠에 묻혀 있고
일찍 들어선 겨울이
군데군데 눈처럼 쌓여
그림자를 만드는데
땡감 맛 논설문을 배울
교과서는 덮어놓자.
꽃물 번져가는 교정의 나무들 꿈꾸는
무지개 빛깔 시 한 수 읊어보자.
국화 향 은은한
시로 닦아낼 수 있는 그늘이
아주 작더라도
한 발짝 먼저 나가지 않으면
어떠리.
아이들 마음이 풍선으로 떠올라서
하늘에 닿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
2013. 11. 10
글
바다
바다가 어디
깊은 산골 맑은 물만 받아
저리 맑은가?
끊임없이 黃河를 가슴에 품고서도
씻고 또 씻어
바다는 금방 하늘을 닮는다.
2013. 10. 23
글
序詩
황토 물에 떠내려가는
母國語를
한 조리 일어
내 시를 빚었다.
거친 모래밭에 피어난
풀꽃 송이들아
반딧불로
불씨를 살려
사람들의 가슴마다
진한 香氣의 모닥불을 피워 주거라.
2013. 10. 12
글
마곡사에서
산문(山門)의 천왕님은
아직도 눈을 부라리고 있다.
묵언(黙言)의 입 꼬리에
몇 올
밧줄 같은 거미줄 걸고
내 다섯 살 여름 무렵 첫 대면에
불타던 그 화산
아직도 눈빛에 이글거리고 있다.
옷을 털고 또 털어도
털어낼 수 없는
업연(業緣)의 질긴 먼지들,
쓸쓸히 돌아서서
태화산 그림자에 묻혀
세상도 부처님도 모두 잊으니
일체의 업장(業障) 쓸어내듯
마음 속 울려주는
늦여름 매미 소리…….
2013. 9. 30
글
訟詩
꽃으로 피소서
-이경주 교장선생님 청년을 축하하며
엄 기 창
산처럼 무거워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
물처럼 부드러워
쉽게 노하지 않는 사람
四十年 가까이 걸어오신 삶의 길에
인연의 줄을 접으며
빛나는 발자취 돌아보는 뒷모습에
은은한 솔향기가 풍겨옵니다
포연으로 일그러진 전쟁 통에 태어나
황량한 고국의 뜰을 일구어
묘목을 심고 정성스레 가꾸기에
당신의 손길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나무들은 건강히 자라
무성한 숲을 이루고
당신이 가꾸신 이 조국은
세계 속에 우뚝 솟은 거목이 되었습니다.
긴 항해 끝에 닻을 내리고
이제는 돌아서야 할 시간
멈추어서 더욱 빛나는 당신을 향해 비오니
새로운 걸음걸음 꽃으로 피소서.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