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전화 한 통

 

 

일없이 뒤숭숭해

지는 꽃 바라보네.

적막에 갇혀 살며

시들시들 야위다가

만나잔

전화 한 통에

다시 활짝 피는 봄날

 

 

2020. 4. 9

posted by 청라

 

 

향기 있는 사람끼리

마음 비비며

저런 빛깔로

사랑했으면 좋겠네.

 

피어있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저런 말씀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2020. 4. 8

 

 

posted by 청라

백마강 물새 울음

 

 

백마강 물새들은 아직도

백제 말로 운다.

 

뿌리를 잊지 않으려고 궁궐터에 가서

연화문蓮花紋 기와를 쪼며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백마강으로 와서

고란사 종소리와 화답和答한다.

 

백마강 물새 울음엔

피를 통해 전해지는

향기 같은 게 있다.

 

하오下午의 물그림자가 담고 있는

풀꽃들의 춤

 

듣고 있으면 어깨부터 출렁이는

신기神氣 같은 게 있다.

 

 

2020. 4. 8

시와 정신72(2020년 여름호)

posted by 청라

고승高僧

고승高僧

 

 

밤 새워 독경讀經해도

멍울처럼 안 풀리는

 

목탁木鐸을 만 번 쳐도

바람인 듯

안 보이는

 

참 도

남의 아픔에

손을 잡아 주는 것

 

 

2020. 4. 2

posted by 청라

어머니 목소리

어머니 목소리

 

 

매화마름

꽃다지꽃

고향의 손짓이다.

 

놀기 팔려 헤매노라

때 거르는 아들 걱정

 

해거름

목청 높이던

어머니

목소리다.

 

 

2020. 3. 23

posted by 청라

반쯤 핀 동백 같이

                           문덕수 선생님을 보내드리며

 

 

웃다가

잠깐 흔들리다가

 

반쯤 핀 동백 같이

사진 속에 있네.

 

당신의 생애는 햇빛 달빛에

익을수록

신화가 되어 가는데

 

이승의 것들은

이승의 마을에 남겨둔 채

 

훌훌 턴 바람처럼

웃고 있네.

 

마중 나온 봄 향기에도

눈물 나는데

 

반쯤 핀 동백 같이 웃고 있네.

 

 

2020. 3. 16

시문학586(20205월호)

posted by 청라

난꽃

난꽃

 

 

당신이 두고 떠난 화분을

치우려는데

밤사이 망울 틔운

햇살 같은 웃음 한 송이

 

정말로

미안하다고

마음으로 전하는 말

 

 

2020. 3. 1

posted by 청라

코로나에 갇힌 봄

코로나에 갇힌 봄

 

 

비둘기 콕콕콕콕 유리창 두드린다.

매화 봉오리에 봄물이 오르는데

방문을 닫아걸고서 하루 종일 뭘 하냐고

 

를 읽어봐야 바람 든 무맛이다.

태엽 풀린 시계처럼 하루는 늘어지고

봄날은 코로나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네.

 

피하고 도망만 가면 꽃피는 봄 못 보리라.

떨치고 일어서서 절망을 이겨내세.

나라가 어려울수록 혼자 살려 하지 말자.

 

 

2020. 2. 28

posted by 청라

고목古木에게

고목古木에게

 

 

가끔은 너를 위해서

몇 송이 쯤 꽃 피우렴.

저녁놀 지는 삶에

시도 쓰고 노래도 하며

불꽃을 피워 올리듯

멋진 사랑도 하여보렴.

 

젊음이 익었다는 건

흔들림도 멈췄다는 것

때 묻은 도화지에도

예쁜 그림 그릴 나이

인생을 장미 빛으로

다시 한 번 그려보자.

 

 

2020. 2. 17

posted by 청라

 

 

봄비 그치면

둑길 위에 섬 하나 지어놓고

그 섬에 갇혀보자,

 

민들레 꽃대 위에

그대 얼굴 피워놓고

 

때로는 함께 걷는 일보다

혼자 그리워하는 일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자.

 

그 섬에는

눈물 같은 것은 살게 하지 말자.

 

사랑하는 사람의

눈웃음 같은

따뜻한 것들만 가득 살게 하자.

 

 

2020. 2. 14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