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쓰는 이유

시조 2015. 3. 7. 14:16

시조 쓰는 이유



내 행복

듬뿍 풀어

시조 한 수 빚는다.


툰드라의 가슴마다

햇살 씨앗 깊게 심어 


벌 나비

날갯짓 하는

봄꽃 가득 피우려고.



2015. 3. 7

posted by 청라

이중잣대

수필/청라의 사색 채널 2015. 3. 6. 09:03

<청라의 사색 채널>

 

이중잣대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아일랜드의 어느 항구 도시의 사창가에 두 명의 수병이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개신교 목사 한명이 주위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사창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수병들은 위선자라고 목사를 비웃었다. 잠시 후에 랍비 한 사람이 나타나서 역시 주위를 살핀 후에 사창가로 들어가자 수병들은 유대인들은 어쩔 수 없다고 비웃었다. 잠시 후에 카톨릭 신부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사창가로 들어갔다. 그러자 수병들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세상에. 어떤 가엾은 매춘부가 죽어가나 봐.“

이 이야기는 '엉뚱한 철학자의 이야기'에서 발췌한 일부이다. 목사나 랍비, 신부 모두 타락한 성직자들인데 대부분이 카톨릭 신자인 아일랜드 사람들은 카톨릭 신부만 유난히 후한 잣대로 평가하고 있다. 요즈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위와 같은 이중잣대가 심해지고 있는 듯하여 씁쓸할 때가 많다.

얼마 전 추석명절에 고향엘 내려갔을 때 이야기다. 그 때 정부 고위 관리 아들의 병역 비리 문제로 사회가 들썩이고 있었는데, 형님 친구 한 분이 뉴스를 보고 몹시 흥분하여 심한 욕설을 하였다. 평소에 그 분의 인품을 존경하고 있었는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음에 다시 고향에 갔을 때 아침 일찍 그 분이 우리 집엘 찾아오셨다. 내 아우가 현역 중령일 때였는데 여러 가지 물건들을 싸들고 와서 한다는 말이 여보게, 내 아들이 논산 훈련소에 있는데 좀 편한 데로 갈 수 없는가?”

위의 사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남의 일엔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도 자신이나 자신과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일에 관해서는 너그럽기 마련이다. 얼마 전 국무총리 인준에 관한 청문회를 시청하다가 질의하며 호령하는 그분들은 과연 얼마나 청렴하고 깨끗한 분들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일이 있다. 자신의 주머니를 뒤집으면 더할 수 없는 먼지가 나올 텐데 어쩌면 저렇게 당당하게 소리를 지를까. 자신의 부정은 부정이 아니고 남의 부정만 과연 부정일까.

요즈음 정당 정치에서도 이런 모습은 확연히 나타나는데, 여당에서 내놓은 정책은 일단 반대부터 하고 깎아내리는 야당들이 자신들이 여당이 되었을 땐 그런 작태를 일삼는 야당의 모습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그러다가 다시 야당이 되었을 땐 승산이 없으면 국회야 정상적으로 돌아가든 말든 민생이야 어떻게 되든 장외 투쟁이나 하고.

오랜 교직생활에서 경험한 사실인데 때로는 교사 학부모가 다른 직업의 학부모보다 더 모질고 무서울 때가 있다. 자신은 교직 현장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담임에게 요구하며 요구가 달성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불평하고 괴롭힌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다. 이중잣대를 잘 표현한 말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에게 냉정할 일은 나에게도 냉정하고, 나에게 관대할 일은 남에게도 관대하면 안 될까? 때로는 나에게 적대적인 세력일지라도 잘하는 일은 칭찬해주고 더 잘 되게 밀어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 이중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이 없는 사회, 이런 사회가 바로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금강일보> 2015년 3월 6일자

posted by 청라

수왕사

수왕사


향냄샌가

숨을 크게 들이쉬면

나무 냄새


독경 소리인가

귀를 쫑긋 세우면

바람 소리


단청을 지우고

사바로 통하는 길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한 파람 남겨두어


모악산 제일봉에

내려왔던 부처님

간절한 발원發願 소릴

제일 먼저 듣는 절

 

 2015.  2.  27

 

posted by 청라

행복

행복



아내의 칼 도마소리는

기도이다.


기도의 울림으로 더욱 고요로운

창가에 앉아

찻잔에 햇살을 풀어 마시면 


아파트 정원수 흔들고 달아나는

바람소리도

대숲 바람소리로 들을 수 있다. 


창밖 먼 산 초록빛이

봄을 이고 달려와 가슴에 안긴다. 


봄하늘로 나른한 눈을 헹구고

아내를 바라보면

새싹처럼 돋아나는  행복 


아내가 거기 있어서

집안은 늘 따뜻하다. 



201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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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시조 2015. 2. 5. 15:44

홍시



누군가

핏빛 소망

불꽃으로 피워놓았나.


칼바람에 갈고 갈아

심지만 남았다가


하늘의 

무게에 눌려

반짝 하고

타는 말씀.

posted by 청라

풀의 나라

수필/청라의 사색 채널 2015. 1. 30. 14:54

<청라의 사색 채널>

 

풀의 나라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지난 가을 계족산 등산길에 칡덩굴에 둘러싸여 힘겨워하는 교목(喬木)을 본 일이 있다. 수령(樹齡)이 꽤 오래 된 낙엽송 나무였는데 칡덩굴이 친친 감고 올라가 둥치는 보이지도 않고 칡 잎사귀만 무성하게 늘어져 있었다.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던 나무의 꿈은 시들어가고 있었으며, 풀의 공격에 의해 나무의 권위는 무참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그 나무를 보며 무성한 민주주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점차 무너져가는 우리나라가 생각나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발목까지/발밑까지 눕는다.

 

김수영의 시 의 일부이다. 이 시는 오랜 역사동안 권력자에게 억압받으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맞서 싸워온 민중들의 모습을 그린 시이다. 사회적 상황이 나빠져 폭력화되었을 때 민중은 무기력하게 짓밟히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나약한 힘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억압자들의 폭력에 고통을 받아온 우리나라의 민중들은 투쟁을 통해 바람의 대립적 역사를 종식시키고 누구나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루었다. 참으로 경하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 나라에서는 자유가 지나치게 범람(氾濫)하다 보니 권위(權威)있는 것들은 모두 다 적대시하여 말살시키려는 의식이 팽배(澎湃)해져서 참으로 안타깝다.

나라의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해서는 교육이 바로 서야 되고, 교육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권위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현장에 가보면 나이 든 학부모님들이 교육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신규 여선생님에게 반말 비슷하게 하는 일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자기 자식이 회초리라도 맞고 오는 날이면 갖은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여 항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자식들이 있는 곳에서 담임선생님의 욕을 과하게 하는 부모님도 계시다. 교사들의 권위를 깔아뭉개놓고는 교내에서 자신들의 자녀를 보호해달라고 한다. 학부모님, 학생, 그리고 사회가 교사의 권위를 세워주고 힘을 실어줘야 그 힘으로 자녀들의 안전을 보호해줄 수 있다는 것은 왜 모르는 것일까.

언젠가 취객(醉客)에 의해 파출소가 부서지고 경찰들이 다쳤다는 기사를 본 일이 있다. 치안을 지키기 위해 박봉에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민중의 지팡이를 부러뜨려놓고 폭력 없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달라고 한다. 때로는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 부르는 사람이 있다. 정책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정없이 욕들을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런 것일까? 풀들만 무성한 풀의 나라엔 하늘 향해 솟아오르는 나무들의 꿈도 없고 땅 한 평 더 차지하려는 풀들의 질시(嫉視)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정말 살기 좋은 풀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권위는 모두 힘을 모아 지켜줘야 한다.   


<금강일보> 2015년 1월 30일

posted by 청라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 보기

수필/청라의 사색 채널 2015. 1. 24. 09:30

<청라의 사색 채널>

 

아름다운 눈으로 세상 보기

 

                                                                                      엄 기 창

                                                                       시인, 대전문인협회 부회장

 

 내가 K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다. 그 곳에서 만난 교장선생님은 확고한 교육철학을 가지신 분이셨다. 학생들을 처벌로 교육하기보다 훌륭한 학생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큰 상을 줌으로써 모든 학생들에게 바람직한 학생 상을 제시해주고, 모든 학생들이 그 학생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계셨다. 시골의 작은 학교라 우수한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아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선생님들의 불평에도 굳건히 버티시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셨다.

  벚꽃이 교정에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었다. 학생과 교내 계를 맡고 있던 나는 아침 교문지도를 하고 있었는데 복장불량 학생들만 따로 모아 한쪽에 엎드려뻗쳐를 시켜놓았다. 기분 좋게 출근하시던 교장선생님께서 그걸 보시더니 불같이 화를 내셨다.

  “엄 선생, 즉시 교장실로 와요.”

  벌을 받던 아이들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평소에 온화한 성품이셨기에 별 일이야 있으려고 하고 큰 걱정 없이 교장실에 갔다가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고 입이 퉁퉁 부어 나왔다. 교장선생님의 그런 따뜻한 배려심도 모르고 학생들은 계속 말썽을 일으켰고, 나도 한동안 교문에 절대 안 서는 것으로 반항도 했지만, 교직에 오래 서 있으면서 그 때 그 교장선생님의 교육철학이 내 가슴에 나도 모르게 이식되어 있었다. 아이들의 잘못을 꼭꼭 짚어주는 것도 교사가 할 일이지만, 때로는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년퇴임을 하고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학교와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남의 잘못을 먼저 발견하여 지적해주면 인간관계를 해치기만 할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장점을 찾아내어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었다. 사람들 중에는 사물을 보는 기본이 부정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있고 긍정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있다. 최복현 선생은 마음을 열어주는 편지중에서 남의 좋은 점만 찾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는 그 사람을 닮아가서 남의 좋은 점을 말하면 자신도 좋은 말을 듣게 된다고 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지만 판단의 기본이 부정에서 출발하여 비판만 하는 사람은 주위를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어느새 돌아보면 아름다운 이야기보다 흉악한 이야기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신문의 칸칸을 찾아보아도 읽어서 흐뭇한 이야기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드문 세상이다. 아들이 부모를 죽였다느니, 동거하던 여자를 죽여 토막 내어 묻었다느니 입에 담지 못할 패륜적인 이야기들만 난무하는 세상이다. 기자들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발굴하여 세상을 밝힐 생각은 않고 특종만 얻으려고 가장 자극적이 이야기들만 찾아 나선다. 저런 이야기들의 홍수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배워 올바른 가치관을 세우겠는가.

  우리 모두 아름다운 것을 먼저 보는 눈을 가꾸자.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만 살게 하자.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사명이다.


<금강일보> 2015년 1월 2일

posted by 청라

성城

시조 2015. 1. 13. 07:49



돌 틈마다 세월의 무게가 돌이끼로 덮여있다.

깨어진 기왓장에 박혀있는 삶의 무늬

시간이 스쳐 온 자리 스며있는 눈물과 한숨

무너져도 일어서는 분노를 다독이며

단심丹心 의혈義血이 꽃처럼 지던 그 날

함성이 떠난 자리에 흰 구름만 떠도네.

무엇을 깎아내려 밤새도록 쏟아 부었나

비바람 지나간 성터 수목 빛이 더욱 곱다.

역사는 지우려할수록 더 파랗게 살아난다.


2015, 1, 13

posted by 청라

고무줄

시조 2015. 1. 9. 22:04

고무줄



계집애들 고무줄 하는데 심술쟁이 희수란 놈 시침 떼고 다가가서 고무줄 뚝 끊어놓으면

모두들 어이없어 동작 뚝, 흐르는 적막, "저 씹할 놈이" 상순이년 욕소리에 희수를 향해 몰려들 가는데, 봉자 년은 막대기 들고, 경자 년은 돌멩이 들고, 복자 년은 신발 벗어 들고, 운동장은 개판……

온종일 도망치려면 자르기는 왜 잘라.


2015. 1. 9

posted by 청라

선구자

시조 2015. 1. 8. 16:35

선구자


눈보라 매섭다고

봉오리마다 숨죽일 때


칼바람에 심지 박아

꽃등 켜든 한 송이 매화


꽃술에

모여든 햇살

꿈을 이룬 저 환희


2015. 1. 8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