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만추

淸羅 嚴基昌
개살구빛 햇살들이 미꾸라지처럼
구름 속으로 파고 든다.
잔광이 비늘처럼 잘게 부서지는 하늘로
제비 한 마리 높이높이 차올라
몇 올 빛가루를 줍고 있다.
점점 낮아오는 北天의 껍질 밑으로
야윈 풀벌레 울음이 흐르고
부리 끝이라도 부빌 溫氣를 캐러
구름 속으로 들어간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떨고 있는 빨래줄마다
노랗게 돋아나는 한숨
눈물이 흔한 단풍나무가
화장을 지운다.
posted by 청라

단풍잎

수필/교단일기 2007. 4. 27. 09:00

단풍잎

淸羅 嚴基昌
 내가 첫 발령을 받아 부임한 N중학교에서 나는 처음 화철이를 만났다. 화철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조용히 있다가도 제 기분에 맞지 않으면 수업시간에도 막 소리를 질렀다. 중학교 2학년인데도 한글을 전혀 몰랐고, 제 이름도 ‘이효ㅏ철’이라고 썼다.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화철이를 무시했다. 그래서 화철이는 늘 모든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혼자 살아가는 이방인이었다.
 체육시간에도 화철이는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혼자 놀았다. 친구들은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였지만 늘 멀건히 바라보기만 했다. 아무도 화철이를 자기 팀에 끼워주지 않았다. 하기는 헛발질만 하고, 때로는 자기 골문으로 볼을 차는 놈을 자기 팀에 끼워줄 사람이 있겠는가?
 학교에 등교하는 것도 제멋대로였다. 어떤 때는 점심시간이 지나서 어슬렁거리며 교실로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이제 급우들도 화철이 일이라면 아무리 웃기는 일이라도 웃지도 않았다. 철저히 무시하고 있었다. 화철이는 우리 학급에서 있어도 없는 존재였다.
 한 번은 철봉 아래 모래밭에서 혼자 모래장난을 하고 있는 화철이를 불렀다.

“화철아, 학교 다니는 거 재미있어?”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흔들었다.
 
 “왜? 왜 재미없어?”
 “그냥 재미없어요.”
 “누가 우리 화철이 때리는 사람 있어? 괴롭히는 사람 있어?”

 화철이는 다시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화철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뭐야?”

 화철이는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애들하고 놀고 싶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탁 막혔다. 불쌍한 놈. 화철이의 표정에는 애들하고 어울리고 싶어 하는 소망이 간절하게 나타나 있었다. 머리가 부족한 놈에게도 외로움은 있는 거였다.
 나는 쉬는 시간에 당장 반장을 불렀다. 그리고 화철이 이야기를 했다. 그 애가 얼마나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지를 이야기 하고, 같이 놀아주라고 부탁을 했다.
 그 다음부터 체육시간에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같이 뛰어다니는 화철이를 보았다. 뛰는 것은 어설퍼도 얼굴에는 즐거운 표정이 가득했다. 학급의 모든 일에 화철이를 참여시켰고, 그 때부터 화철이는 진정한 학급의 일원이 되었으며, 아이들의 친구가 되었다. 학교에 늦게 등교하는 일도 줄어들고, 수업시간에 소리도 지르지 않았다.
 하루는 다시 화철이를 불러 미리 준비한 사탕을 주면서 물어보았다.

 “화철아, 학교 다니는 거 재미있어?”

 화철이는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얼굴에 희미하게나마 즐거워하는 빛이 떠돌았다.

 “뭐가 좋은데? 화철이 뭐가 그렇게 좋아?”
 “애들이 잘 해줘요. 축구 재밌어요.”

 나는 나의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화철이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학급 아이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웠다. 내 조그마한 관심이 외로움의 그늘 속에서 즐거움의 양지쪽으로 한 아이를 꺼내 주었다고 생각하니 더없이 기뻤다.
 가을이었다. 교정의 나무들에도 가을이 곱게 물들어 있었다. 퇴근을 하려고 교문을 나서는데 담 뒤에 숨어있던 한 아이가 뛰어왔다. 화철이었다. 내 손에 무엇을 쥐어주고

 “선생님, 좋아요.”

 발음도 분명하지 않게 중얼거리고 뛰어갔다. 어설프게 싼 종이를 풀어보니 곱게 물든 단풍잎 한 가지였다. 나의 온 몸에 짜르르 환희의 감정이 피어올랐다. 교사의 기쁨이라는 게 이런 거였구나. 이 가을의 모든 아름다움이 화철이가 주고 간 단풍잎에 모여 고여 있는 듯했다. 억만금의 선물보다 더 귀하고 고마웠다.
 뛰어가는 화철이의 등에 대고 나도 마음속으로 외쳤다.

 “화철아, 나도 사랑해”

<한밭수필>2016(8


posted by 청라

제주해협


제주해협

淸羅 嚴基昌
섬들의 발꿈치를 벗어나자
바다는 막막하게 지워져버린다.
북빙양을 돌아온 흰 말떼들도
보이지 않는다.
푸른 물살에 담긴 하늘의 음성 속으로
발자욱을 찍으려 하루내내 오르내리던
갈매기 노래소리도 보이지 않는다.
소금기 서걱이는 검은 바람에 쫓겨
사람들은
좁은 선실 속으로 숨어들고
하늘과 맞닿은 광막한 여백
멈춘 시간 속에 나는
홀로 서 있다.
먼 섬 기도로 반짝이는 불빛이여!
가보지 목한 곳의 따스한 이야기들이
불빛을 통해 건너오니
어둠은 나를 지우지 못했구나
텅 빈 공간 속에 말간 공기로
허허로운 어둠으로 녹아들지 못했구나
저녁에 마신 한잔의 소주 열기로
몽롱히 가라앉는 人事의 그림자
검은 장막을 접고 배는 달리고
새벽이 오면
댓순처럼 청청히 일어설 바다의 음악처럼
나의 무릉도원은 짜릿하게 가까워온다.
posted by 청라

얼룩


얼룩

淸羅 嚴基昌
비어 있는 하늘이
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기러기 한 마리
그리고 지나가는 하얀 금 위에
그리운 자장가 소리 철렁대며 걸리고
천 가닥 넘어 쏟아지는 달빛 이랑
이제는 아무도 올 수 없는 길로
어릴 때 내 빈 몸 빈 마음의
작은 날개들이
푸득대며 날아오르는 청랑한 소리.
비어 있는 하늘이
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밤새워 짠 베틀로는
한 파람의 겨울도 막을 수 없는
귀뚜라미의 허전한 발
걸어가는 발 밑에 눈뜨는
자잘한 이야기들이
진하디 진한 얼룩으로 남는다.
posted by 청라

풍경


풍경

淸羅 嚴基昌
찢어진 꽃잎처럼
나비 한 마리
길 가운데 누워
파닥이고 있다.

구둣발 하나
나비를 밟고 지나간다.
구둣발 둘이
나비를 밟고 지나간다.
비명을 묻히고 무심히 돌아가는
구둣발
하나

셋......

동양백화점 피뢰침에
죽지를 꿰어 주저앉은 낮달
기침하는 도시를 비추다
골목으로 눈을 돌리면

나비의 문신 가슴에 새긴
내게서만
나비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
posted by 청라




淸羅 嚴基昌
박꽃 아래엔
박꽃만한 그늘이 하나 버려져 있다.
어둠의 갈매기들이
눈부시게 하얀 알을 낳는다.
은밀한 세상을
투명하게 벗겨내는 달빛의 바다
외로운 섬 하나 남아
진초록 비밀을 가꾸어 있다.

달빛이 수평으로 파도쳐 온다.
펄렁 젖혀진 기슭에
숨죽여 누워 있는
비밀의 속살이 보인다.
가냘픈 대궁이 위태로운 섬
풀려진 달빛 속에 묻혀 있는 섬
지켜야 할 어둠으로
포만한 배를 끌고 길게 누워 있다.
posted by 청라

山水圖


山水圖

淸羅 嚴基昌
꾀고리 울음소리가
개나리꽃 가지에 불을 붙이고 있다.
햇살이 양각으로 박아 놓은 老翁의 낚시 끝에는
청청한 산그림자가 걸려 있고
누군가 넘어 오라는
아스라한 고갯길 따라
저녁 연기로 골골이 잦아드는
저녁 골안개.
버들강아지 줄기로 서서
조롱조롱 열린 귀에는
온종일 골물 소리만 들려오고
투명하게 벗어 오히려
속 깊은
하늘 한복판에
예닐곱살 소녀의 투정처럼 피어난
맨드라미만한 구름 한 송이
posted by 청라

황혼 무렵

시/제3시집-춤바위 2007. 4. 19. 19:13

황혼 무렵

淸羅 嚴基昌
물총새의 눈동자가
돌의 적막(寂寞)을 깔고 앉아서
부리 끝에 한 점 핏빛 노을
노을 속에서 물고기의 비늘들이
더욱 빛나고 있다.

저마다의 의미로 피어난 꽃들,
숨을 죽이고
온 몸 털 세워 바라보는 저
바위의 응시(凝視).

물총새의 부리 끝에
반짝
물비늘이 일렁인다.

퍼덕이는 물고기의 몸부림 속으로
내려앉는 어둠,

그 어둠마저도 아름다운 황혼 무렵에…….

posted by 청라

한의 매듭을 푸는 소리 -서편제를 읽고

독후감 2007. 4. 13. 09:00

<독후감>

한(恨)의 매듭을 푸는 소리
‘서편제’를 읽고


淸羅 嚴基昌
 한(恨)이란 것이 과연 인간의 마음을 모질게만 만드는 것일까? 모질게 만들어 세상을 저주하고, 천둥과 벼락으로 발톱을 세워 광명의 땅 곳곳마다 어둠을 심는 악의 화신으로 만드는 것일까?

 나는 오래 전부터 원한으로 악마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러한 의문에 잠겨 있었다. 한(恨)조차도 아름다운 것으로 미화시킨 ‘소월 시’를 보며, 한이란 것이 결코 우리의 삶을 거칠게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슴푸레 느낄 수 있었으며, ‘서편제’를 탐독하고 나서야 한의 껍질을 벗기고 보면 질기고 따스한 정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민족의 보편적 정서가 한(恨)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해학과 익살로 승화시켜 한(恨) 자체를 즐겼던 우리 조상의 숨결이 ‘서편제’에서는 용서와 화해를 통한 자줏빛 낭만으로 승화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의붓아비로 인해 하나뿐인 어머니를 빼앗긴 소년. 그 원한을 갚기 위해 북 잡이 노릇을 하며 의붓아비를 살해할 목적으로 유랑생활을 하던 소년. 은밀한 살의가 움터 오르다가도 의붓아비의 천연스럽고 유장한 노랫가락 소리만 들으면 도무지 힘을 쓸 수 없었던 이 소년은 애초부터 소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었으리라. 그렇기에 의붓아비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소원을 풀 기회를 주었음에도 살해할 뜻을 버리고 의붓아비와 어린 누이의 곁에서 -사람을 홀리는 노랫가락 곁에서 자취를 숨기고 떠난 것일 게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아비를 죽이고 싶어 한 부질없는 자신의 원한을 후회하고, 아비와 누이를 버리고 떠난 자신의 비정을 속죄하며 누이를 찾아 남도 땅을 헤맬 때, 나도 남도 땅 산천 골골 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 속에 묻혀 이 사내와 동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모처럼의 휴일에 영화감상을 선택하지 않고 책을 펴든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몇 번이나 만족해했다. 장장 마다 펼쳐진 문장의 유려함도 놀랍거니와 서너 줄 읽고 강 자락 휘어진 남도의 어느 산길이나 벌판과 바다를 상상해 보고, 눈 먼 여인의 한 맺힌 노랫가락 소리를 귀보다 훨씬 깊은 마음으로 듣는 재미를 어찌 영화가 따라올 수 있겠는가. 보성 땅 어느 공동묘지 옆 주막에서 여인의 애절한 소리에 맞춰 북 장단을 칠적에, 오랫동안 잊으려 애를 썼으나 결국은 버릴 수 없었던 소리의 얼굴을 다시 대면한 사내의 운명. 이 운명에 대한 깨달음이 혼이 담긴 소리를 가꾸기 위해 딸의 눈에 청강수를 찍어 부은 의붓아비의 집착마저 이해하게 된 원인이 아닐까. 한(恨)이란 심어주려 해서 심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생살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는 사내의 말처럼, 아비의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눈먼 여인은 일찍부터 아비를 용서하고 그 용서로 인해 한이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소리무덤 속에 아비의 소리를 묻고 소리의 빛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던 여인. 가끔 마루 끝 볕발 속으로 나와 앉아 보이지 않는 눈길을 들판 건너 먼 산허리께로 내던진 채 끊임없이 무엇을 기다리던 여인. 이 여인이 기다리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장단을 맞춰주던 자기 소리의 한 쪽, 바로 어느 산굽이에서 용변을 보러가듯 스르르 없어진 추억 속의 오라비가 아니었을까. 탐진강 물굽이 휘돌아 흐르던 장흥 어느 주막에서 이 오누이가 서로 만나던 저녁 나는 인간적 호기심으로 가슴을 설레었다. 서로를 확인하고는 오열하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 것인가? 아니면 사내의 가슴속에 뜨거운 용암으로 가라앉았던 살의가 다시 이해와 용서라는 얇은 벽을 태워 이빨을 드러낼 것인가? 그러나 사내는 북채를 잡고 여인은 소리를 하며 동틀 무렵까지 지내다가 싱겁게 헤어지고 말아다. 여인은 소리로 울며 장단을 통해 사내가 오라비임을 확인하였고, 오라비는 여인이 누이임을 알면서 누이의 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햇덩이 같이 일어나는 살기를 누르며 사내 쪽에서 몸을 피해 도망친 것이다. 누이의 한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몰래 떠나간 오라비나, 제 소리를 아껴주는 오라비의 한을 제 것과 한가지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이나 속세의 때에 전 나에게는 까마득히 높은 정신적 경지에 있는 듯 느껴졌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행로에서 한과 만난다. 한의 매듭에 옭혀 허우적거리다가 인생을 불행하게 끝내는 사람도 있고, 그 매듭을 깨끗하게 풀어내어 사랑의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한의 매듭을 풀 수 있는 방법,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용서하는 일이다. 남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하고, 그리고 세상사 모든 것을 용서하는 일이 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서편제’를 덮고 아련한 책 속의 향기에 취한 이 밤, 나는 문득 남도 행 열차를 타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날의 주막은 사라지고 모든 것들은 문명에 덮여 흔적조차 찾기 어렵겠지만, 뚝심 있게 남도 가락을 지키며 그 소리를 통해 한의 매듭을 풀던 여인을, 그 사내를 남도 땅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을 듯도 싶다.    


posted by 청라

죽음의 의미

수필/서정 수필 2007. 4. 12. 09:00

죽음의 의미

淸羅 嚴基昌
 내가 군대에서 막 제대하여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초등학교 동창 하나가 연탄가스로 죽었다. 한여름내 등 밑을 적셔왔던 습기를 없앤다고 연탄을 피워놓고 잠든 사이에 죽음의 신은 그 젊은 영혼을 사정없이 끌고 가 버렸다. 팔팔 뛰던 사람이 밤사이에 웃지도 못하고,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먹지도 못하고, 나를 보아도 반갑다 말 한 마디 못하는 한 덩어리 굳은 물체로 누워있는 것을 보고, 나는 얼마 동안 비감에 젖어있었다.

 그날 오후 공주 근처의 화장터에서 친구를 아주 보냈다. 다정했던 말들도 친근했던 미소도 모두 타서 재가 되어버렸다. 하나의 생명이 사라졌지만 진달래꽃은 그냥 무심히 피어났고, 새들은 그냥 울고 있었다. 친구들은 무심히 흩어졌고, 그들의 머릿속에서 그 영혼은 곧 잊혀 질 것이다. 나는 그가 살아 숨 쉴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일종의 비정을 느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 망자의 혼을 위로하듯 까마귀들이 울며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나직이 시 한 수를 읊조렸다.


까마귀 떼들이 오령 소리로
솟아오른다.
탱자나무 울타리 가시들이
반역의 창날을 세워
무심한 황혼을 꿰고 있다.
막차도 끊어지고
여기는
구구새 우는 소리만 들리는 세상
무너진 것은 무너진대로
어둠의 저편 나라에 빛난다지만
喪杖처럼 늘어선 대숲을 보며
우리는 쓸쓸하게
꺾인 이름의 생애에 꽃을 뿌린다.
반딧불들이 어둠의 옷고름을 풀면
한 이름은 불타서 달맞이꽃이 되고
달맞이꽃은 시들어
어둠이 된다.


 생각해보면 나도 죽음 가까이 간 적이 있었다. 군 복무 당시 나는 한 1년간 광주에서 근무했었다. 그 때만 해도 살아가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자신만만하던 시대였다. 수류탄 사고로 부대원이 죽었을 때, 그 피투성이가 되어 누워있는 시체를 보고도 나는 죽음과 거리가 먼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광주는 젊은 사람들이 놀기 좋은 곳이다. 부대 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나는 충장로로, 사직공원으로 할 일 없이 방황하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군복을 입고 있어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낯선 아가씨들에게 농도 잘 걸고,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구 퍼먹고 열두 시가 넘은 광주 거리를 고성방가하며 돌아온 적도 있다.

 죽음의 신은 노소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날도 나는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두고 술렁대는 광주 거리를 열한 시 가까이 쏘다니다가 술이 얼큰하게 취한 채 돌아왔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들뜬 거리의 정취가 핏속에 남아, 나의 하숙방,  나의 포근한 보금자리에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나는 뜨끈한 아랫목에 누워 책을 읽으며 억지로 잠을 청하다 한 시경에 가서야 잠이 들었다.

 나는 악몽에 쫓기다가 눈을 떴다. 누군가가 딱딱한 막대기로 사정없이 내 목을 찌르고, 가슴은 뻐개지는 듯 답답했으며, 흐르던 피가 멈춰 있는 듯한 환각 속에 빠져 있었다. 눈 뜨고 처음 바라보던 창 너머 고층 건물의 불빛. 아! 나는 지금까지도 그 흐릿한 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눈앞에서 간호원들이 왔다 갔다 하고, 낯익은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며,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꿈이겠지. 지독한 악몽이구나. 결박 지워진 나의 손, 잘 움직여지지 않는 사지, 나는 악몽 속에서 헤어나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였다.

 한참 후에 의사가 와서 나의 손을 풀어주었다. 점점 정신이 들자, 나는 이것이 결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고압산소통이 커다랗게 나를 위압하듯 놓여있었으며, 내가 얼마동안 그 통속의 손님으로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퇴원한 후에도 나는 근 한 달간 부대에 출근하지 못했다. 핏속에 남아있는 일산화탄소의 독소에 의한 피로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더 커다란 이유는 결코 나도 죽음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충격 때문이었다.

 그 후 나는 참으로 많은 죽음들을 보았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형님 내외도 돌아가시고, 누님도 죽고……. 나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한 아직도 죽음이 나와 퍽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의의 손님에 대비하여 나의 사명에 최선을 다한다. 결코 나의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