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집

조개 집

 

 

바다가 그리울 땐

조개 집을 짓고 살리라.

 

내 방 안엔

파돗소리를 살게 하고

 

지붕은

갈매기 노래로 덮어

 

하루 종일 마음의 돌담 안에서

바다가 뛰어놀게 하리라.

 

텃밭에는

갯메꽃 몇 포기 웃음 짓게 하고

 

황혼이 피어날 때쯤

당신이 오면

 

가장 아끼던 술병을 열어

바다의 노래를 안주로

씹어가면서

 

바다에 취해 살리라.

 

 

 

 

posted by 청라

총성

총성

 

 

경매사 종소리에 유리처럼 깨어지는 적막

공동어시장의 새벽이 열린다.

부서진 적막에는 날이 서 있다.

모두의 눈동자가 반짝거린다.

 

세월이 박힌 모자를 쓰고

중도매인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신속하고 정확한 것이 경매의 생명이다.

오고 가는 손가락 수신호 따라

울려오는 총성

 

인생은

조이는 맛이 있어야 짜릿한 거야.

바다의 주인이 정해지는 동안

사람들의 소망이 덧없이 피었다 지고

 

공동어시장 새벽은

광기가 해일처럼 넘실거린다.

서편에 걸린 그믐달도 총소리에 중독되어

못 넘어가고 있다.

 

 

posted by 청라

저녁 바다

저녁 바다

 

 

외로운 사람은

저녁 바다에 나가

바다의 품에 안겨 보아라.

 

황혼을 걸치고

배들이 들어오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세월 속에 까마득히 가라앉았던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을 수 있다.

 

파도의 푸른 노래가

가슴 속에 흥겨운 춤으로 살아올라

어느 날 갑자기

바다가 속삭이는 말을 알아들으면

 

당신은

모든 시름을 풀고

오롯이 해국海菊으로 피어날 수 있을 게다.

 

posted by 청라

삼월

삼월

 

 

바람이 바다를 건너고 있다.

 

바람의 뒤꿈치에서

풍겨오는

유채꽃 향기

 

스러질 듯 스러질 듯

은빛 물결에 젖어든다.

 

봄 몸살로

딸꾹질하는 바다

 

놀 젖은 구름 한 조각

리본처럼 나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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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등대

무인도 등대

 

 

꿈이 있는 것들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어둠보다 더 막막한 인종忍從의 삶을 살았다는

섬 바위들, 젖가슴으로 아랫도리로

세월의 손길들이 침범한 것도 모른 채

 

웃음도 잃고, 말도 잃은 그 옆의 별자리에

등대는 가까운 듯 먼 이웃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먼 바다에 불빛 한 점 숨 쉬면

와아아, 환호성으로 마중 나갔지만

그를 외면한 배들이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깊어지는 건 수심水深만이 아니다.

그의 수심愁心도 물이랑처럼 주름살로 덮이고

이끼만큼 표정도 바위를 닮아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멍이 들수록 더 단단해졌다.

 

이 먼 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인연因緣을 위하여

적막을 도포처럼 몸에 두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運命을 위하여

 

오늘도 외로움을 태워 빛을 만든다.

 

 

 

 

 

posted by 청라

조선소造船所에서

조선소造船所에서

 

 

안벽岸壁에 계류된 미완성의 배들은

날마다 푸른 바다로 나가고 싶어

날개를 턴다.

 

밤이면 아무도 몰래

떨어진 몸체들을 서로 부르며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꾼다.

 

꼼꼼한 손길들이 다듬고 또 다듬느라

조선소造船所의 시간은

초침이 늦게 돌지만

 

기적汽笛 소리 바다를 울리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

 

갈매기들 모국어母國語

떠들며

배 뒤를 따르고 있다.

 

 

posted by 청라

바다의 친구

바다의 친구

 

 

산책할 때마다

몰티즈를 앞세우는 김 여사에게

진돗개도 셰퍼드도 다 쟤네들이듯

 

작은 동력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어부 엄 씨에게는

갈매기도 파도도 다 쟤네들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식이고 친구다.

 

평생을 괴롭혀온 폭풍도

못된 친구처럼 미워하다 정이 들어

한 몇 달 안 찾으면 궁금한데

 

이웃집에 마실가듯

불쑥불쑥 험한 길 찾아온다고

바다는 하루 종일 쫑알거린다.

 

사랑하는 것엔 죄가 없다.

바다와 어깨동무를 풀지 못하는

엄 씨는 피도 바다색이다.

 

 

 

 

 

 

 

 

posted by 청라

바다는 나를 염장鹽藏시킨다

 

 

바다와 사랑에 빠지면서

나는 사랑을 얻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겨울 바다처럼 삭막하던 얼굴에

동백꽃 향기 부드러운

웃음을 하나 장착裝着하게 되었다.

 

뒷골목처럼 어둡고 좁아터진 흉금胸襟

수평선만큼이나 넓혀 놓고

 

갈매기 노래 같이 달콤한 말과

파도의 근육보다 더 단단한 의지를

내 삶의 행보行步에 옮겨 심었다.

 

바다와의 사랑은 나를 염장鹽藏시켰다.

적당히 간이 배어

맛깔 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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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저녁

돌아온 저녁

 

 

뱃고동 울려라

내가 왔다.

 

어머니

된장국 냄새 같은

항구의 불빛

 

서둘러 마중 나온

초승달 웃음

 

대양 안을 만큼

가슴 찢어질 만큼

항구는 팔을 벌리고 있다.

 

 

posted by 청라

부산항

부산항

 

 

오륙도五六島가 보이면

부산항에 다 온 거다.

 

동백섬엔 꽃이 졌어도

동백꽃 향기는 남아

 

짭조름한 갯냄새 뚫고

취나물 향기처럼 마음 적셔오는

고국故國의 산들,

 

갈매기도 경상도 사투리로

울어

가슴 설렌다.

 

언제나 부산항을

엄마의 자장가처럼 감싸 안았던

영도와 조도가

두 팔을 벌려 나를 반겨준다.

 

배에서 내려

부둣가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면

황천항해의 아픈 기억도

꿈결처럼 가라앉겠지.

 

입에 담기만 해도 눈물이 나는

곁에 있어도 언제나

그립고 그리운 그 이름은

부산항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