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序曲


아침 序曲

淸羅 嚴基昌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 絃을 베고 누운 音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느 악보 속에도 살지 않는
音의 침전,
아침의 곧은 줄기 성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音들로 構想 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숲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posted by 청라

큰 스승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23. 11:46

큰 스승 (송시)
(박교식 선생님 정년퇴임식에서)

淸羅 嚴基昌

당신은
산바람에 씻기고 씻긴
소나무처럼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

한평생 올곧게
교단을 지키며
제자들의 마음도
곱게곱게 가꿔준 사람

산나리 꽃같이 숨어 피어
드러나지 않게
빛을 세워서
세상을 시나브로 밝혀가면서

어느덧 걸어온 당신의 발걸음은
제자들을 위한 눈물로
사십년을 넘겼습니다

질기디 질긴
인연의 줄을 접으며 돌아서는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당신은 참으로 큰 스승입니다.

posted by 청라

장가계(張家界) 기행(紀行)

기행문 2007. 3. 17. 14:38


장가계(張家界) 기행(紀行)
淸羅 嚴基昌 상해 홍교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어둠 속을 달려 장가계(張家界)공항에 우리 ‘선비회’ 11쌍의 부부를 쏟아놓은 시간은 밤 12시. 비행기에서 내려 좌우를 둘러보니 어슴프레한 달빛 속에 천문산(天門山) 산봉우리가 버티고 선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좌우에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던 산의 능선들이 유독 천문산(天門山)에 이르러서만 날고뛰는 천신(天神)의 모습처럼 역동적인 모습으로 서 있다. 하늘로 오르는 산이라는 산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지녔다, 산봉우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보니 십삼 야월(夜月)의 달빛이 넘실거린다. 산 위에 떠 있는 달은 한국의 달과 같은데 몸은 만 리 밖 외국 땅에 서 있구나. 대전에 비해 이곳 날씨는 봄인 듯 따뜻하다. 처음 오는 외국인지라 가슴이 더욱 뛴다.
 버스 안에서 현지 가이드 김양(김미화: 조선족으로 길림성에서 왔다 함)과 간단한 인사를 한 후 도로 정리가 덜 되어 터덜거리는 산길을 40분 쯤 달려 도착한 곳이 개천호텔. 지금 시간은 12시 40분, 한국 시간으로 보면 1시 40분이다. 우리 일행들은 장가계(張家界) 첫 밤에 대한 설렘을 펼쳐볼 시간도 없이 각자 지정된 방에 들어가 중국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밖에 나가니 심산(深山)의 아침이라 햇살이 더욱 투명하다. 대전을 출발할 때는 눈이 펄펄 내리는 추운 날씨라 걱정을 했는데 청주 공항에서부터 우리를 인솔한 현대천 이사님이 삼일 전부터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빌었다더니 제법 효험이 있나보다. 이곳은 남방의 습한 날씨가 계속되므로 1년 중 140일 정도 비가 내리고, 250일 정도 안개가 낀다는데, 오늘 날씨는 비정상적으로 맑다.
 조식 후 풍경구로 이동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맨 앞에 전개되는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이 ‘백장협’. 옛날 이 곳에서 일백 번 전쟁이 치러졌기 때문에 ‘백장협’이라고도 하고, 산의 높이가 사람 키로 일백 길 높이라서 그렇게 명명되었다고도 한단다. 계곡의 넓이는 넓은 곳이라야 50m 정도이고, 좁은 곳은 20m정도밖에 되지 않으며, 양편은 도끼로 찍은 듯한 수직의 봉우리가 서 있으니, 열 명이 가로막으면 능히 백 명의 적을 감당할 수 있겠다. 이 아름다운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을까. 반마춘(磐馬椿), 마도석(磨刀石) 너머로 병사들의 함성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풍경구(風景區)에 도착하여 셔틀버스에서 내리니 잡상인들이 모여든다. 연령층이 다양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심지어는 어린아이들마저 악착같이 달려든다. 도망을 가도 “천 원, 천 원” 하며 쫓아오는 모습이 거머리처럼 끈질기다. 모두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초라한 모습이다. 고랑이 깊게 파인 얼굴과 거친 피부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몇 개 사줄까 생각하였지만 상품이 조잡하여 살 만한 것이 없었다. 천 원짜리 새 돈을 지갑 가득 가져갔기에 필요 없는 것일지라도 사줄까 하였지만 쓸데없는 외화 낭비라 생각하여 냉정하게 외면하였다.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몇 분 안 걸려 ‘십리화랑’에 도착했다. ‘십리화랑’은 삭계진 풍경구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있는 길이 11.6리의 협곡(峽谷)으로 계곡의 길이가 약 십 리에 이른다 하여 십리화랑이라 이름 지어 졌다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천천히 계곡으로 들어서자 잎 진 나무들 위로 솟아오른 기이한 암석의 봉우리들. 마치 한 폭의 거대한 산수화를 방불케 한다. 식지(食指)를 세워놓은 듯 우뚝 솟은 봉우리가 식지봉, 세 자매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봉우리가 자매봉, 노인이 약초를 지고 내려오는 모습의 바위가 약초캐는노인바위, 식탁을 닮은 바위가 식탁바위, 엄마 아빠 아기를 닮았다 하여 가족바위. 암봉은 가도가도 끝이 없다. 일찍이 중국의 유명한 시인 려성명은 십리화랑을 유람하고 나서 “기봉(奇峰)이 다투어 하늘을 보려고 하니 천태만상(千態萬象)이 화공(畵工)을 이루노라. 수곡청계가 십리라. 사람들은 그림 속을 거니노라.”하는 즉흥시(卽興詩)로서 십리화랑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다 하거니와 나도 모노레일에서 내려 저 기봉 속을 거니노라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쳐 하늘에 오를 것만 같다. 아름다운 경취에 취해 소리를 지르다 보니 모노레일 차는 계곡을 한 바퀴 돌아 어느새 계곡 출구에 도착해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며 우리는 천자산(千字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6명 수용의 케이블카를 타고 10여 분 간 오른 해발 1,250m의 봉우리, 천자산(天子山)! 탁 트인 시야에 펼쳐지는 비경(秘境)의 웅장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무릉원(천자산자연보호구)의 계곡과 봉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어필봉, 서해, 천자각, 신당만, 대관대, 선인교, 장군암 신병집회……. 저마다 다투듯이 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혹은 날고 혹은 뛰고. 계곡을 따라 안개의 강이 흐르는 모습이 바라볼수록 신비하다. 속세의 모든 시름들이 산바람에 씻겨 사라지는 듯도 하다. 천자산의 수려한 경관을 넋을 잃고 바라보노라니 선인들이 왜 한사코 산 속에 묻혀 강호가도를 즐겼는지 이해할 만하다. 문득 이백의 시 한 수가 떠오른다.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 아니했지.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라네

그림 1) <천자산>
 천자산은 명나라 홍무 년 간 토가족 수령 향왕천자(향대곤)가 이곳에서 의병들을 모아 명나라에 저항하며 전쟁을 치른 곳이기에 이름 지어진 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러할까? 다기(多岐)한 바위의 모습들이 마치 천군만마가 하늘을 향해 기세당당하게 달려 오르는 듯도 하다.
 천자산 정상 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한․중국식 뷔페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처음에는 향이 강한 중국식 식단이 제공되었었는데 한국 관광객이 많아지자 향을 빼고 한국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식사 걱정으로 고추장, 김치, 김 등을 많이 준비하였는데 의외로 식사 걱정 없을 만큼 잘들 먹는다. 식당 좌우에서 들려오는 여행객들의 말이 대부분 한국말이다. 한국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곳. 한국의 화폐만으로도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곳. 도무지 외국 여행을 온 느낌이 들지 않는다. 장가계를 채운 여행객들의 80% 이상이 한국 사람이란다. 우리의 국력이 이렇게 커졌는가! 기꺼운 마음도 들었지만, 무분별한 외국 여행으로 근로자(勤勞者)들이 힘들여 벌어온 외화를 낭비하고 있다 생각하니 한편 마음이 씁쓸해온다.

 식사를 마치고 찾아간 곳이 하룡공원! 모택동과 함께 중국을 일으킨 하룡장군을 기리기 위해 천자산 입구에 세워진 공원이다. 동상(銅像)은 1986년 하룡원수를 기념하기위해 만들어졌으며, 높이 6,5m, 무게 9톤의 중국 근 백 년 내 이루어진 것 중 가장 크다고 한다. 하룡공원이라는 대리석에 새긴 글씨는 1995년 강택민 총서기가 직접 쓴 글씨라고 한다. 웅대한 천자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호탕하게 서있는 팔자수염 밑에 어린 미소가 웅장한 대자연을 압도하는 듯도 하다.

그림 2) <하룡공원>
 다시 버스를 타고 50여 분 간 산 구비 돌아돌아 원가계에 도착. 눈앞에 펼쳐지는 암봉들이 예사롭지 않다. 위태로운 산길을 돌며 내려다보니 눈 아래는 천 길 절벽. 까마득한 바위 아래 계곡에 금실처럼 반짝이며 물이 흐르고 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까마득히 늘어선 바위산들이 날고, 뛰고, 가라앉고, 떠오르고. 준초하게 깎인 모습들이 서로 몸매를 자랑하는 듯도 싶다. 아! 자연은 왜 이리도 웅대하고 아름다운가. 마치 거대한 남화 속의 풍경을 보는 듯하다. 나는 일찍이 기암절벽 아래 폭포가 흐르고 소나무 우거진 곳에 사슴이 뛰노는 중국 관념 산수화를 보면서 상상 속의 세계를 그렸다고 생각했거니와 여기 와 바라보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도 다 그리지 못한 듯하다. 감흥(感興)에 취해 문득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신선도를 보고
상상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라 생각했더니

원가계에 와서 보니
그림이 산수를 다 그리지 못하였네.

폭포 소리 녹아
솔향 더욱 그윽한 곳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면

속진(俗塵)이 말갛게 씻겨
나도 신선이 되리.

그림 3) <원가계>
 마음을 졸이며 천하제일교를 건넜다. 천하제일교는 봉(峰)과 봉(峰) 사이를 산이 기묘하게 이어준 바위이다. 아래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굴모양을 이루었는데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 금편계곡에 몇 조각의 골편들로 흩어지리라. 이 다리를 건너면 99세까지 장수한다 하며, 자물쇠에 이름을 새겨 걸어놓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하여 이름 새겨진 자물쇠가 끝도 없이 걸려 있다. 이 신선의 세계에 와서도 사람들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니 묵묵한 자연에 부끄럽기만 하다.

 비경(秘境)에 도취하여 정신을 잃어버린다는 미혼대를 바라보며 걸은 걸음이 어느덧 백룡엘리베이터. 해는 벌써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수직 높이가 335m, 운행 고도가 313m인데 그 중 156m는 산체 내 동굴이고, 171m는 산체 외부에 붙인 수직철강구조로 이루어졌다. 3대의 엘리베이터가 나란히 운행되면서 삼림계곡, 금편계, 수요사문으로부터 원가계, 오룡채, 천자산을 연길시키는 중요한 교통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100% 투명도의 엘리베이터이며, 세계에서 제일 높은 2층으로 된 관광전용 엘리베이터이며, 세계에서 제일 빠른 관광전용 엘리베이터라는 가이드의 자랑을 들으며, 중국도 세계 제일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림 4) <백룡 엘레베이터>
 시간에 쫓겨 금편계곡 입구에서 돌아서서 나오는데 건너편 암봉 꼭대기에 마지막 햇살이 눈부시다. 금편계곡은 길이 7,1Km의 아름다운 협곡(峽谷)으로 금편계가 조란조란 흐르는 양 편엔 금편암, 문성암 등의 멋진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무성한 원시림 속에서 삼림욕도 할 수 있다 한다. 서두르면 다녀올 수 있다고 우기는 우리 일행에게 산골의 날씨는 곧 어두워져서 위험하다고 버스에 몰아넣는 가이드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석식 후 장가계 써꺼스를 구경하고 아내와 나란히 누워 마사지를 받았다. 스물이나 되었을까? 어린 소녀에게 몸을 맡기니 손길 닿는 곳마다 온 몸이 간지러운 듯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행 계획의 일부라니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현재를 즐기기로 마음 을 바꿨다, 살짝 눈을 뜨고 아내를 보니 외간남자에게 몸을 맡겨 놓고 나른한 행복에 취해 있다. 샘이 나서 기침을 해봐도 눈을 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외국 풍물을 경험해 보는 건데 어떠리. 나도 모든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보기로 하였다.
 장가계 마지막 밤을 위한 파티가 있다고 하길래 마사지 끝난 후 강 부장 방으로 모였다. 나도 한국에서 준비해온 소주 댓 병과 마른안주를 준비하여 건너갔다. 사모님들과 함께 모여서 도란도란 술잔을 나누는 모습이 가족같이 정겹다. 어제 처음 만났을 때 서먹서먹하던 사모님들도 남자들보다 오히려 더 친해진 모습이다. 남방과일의 여왕이라 자랑하며 송 교장 사모님께서 사 오신 듀리안을 먹어가며, 냄새의 지독함에 인상을 쓰면서도 모두 즐겁게 깔깔거렸다. 조국에서의 조그만 인연들이 모여 외국 여행길 같이하는 동안에 어느덧 흠뻑 정이 들어버린 사람들. 그들의 웃음소리 너머로 남방의 풋풋한 정취 넘치는 장가계 마지막 밤은 침침히 깊어갔다.  
 이튿날 아침 피곤한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이 떠진 것은 새로운 경관을 구경한다는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비경 속에서 신선이 되어 노니는 꿈은 너무도 짧아 어제 밤 술 몇 잔에 취해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은 환하게 밝아버렸다. 오늘 아침 첫 여정은 황룡동굴. 늦게 도착하면 사람이 많아 구경도 잘 할 수 없다는 가이드의 재촉 때문에 아침도 뜨는 둥 마는 둥 버스에 올라 황룡동굴 근처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각다귀같이 달려드는 잡상인들을 피해 1km쯤 오르다 보니 가이드 김양이 중국 전통 화장실을 구경하란다. 우리 일행 모두 우루루 들어가 보니 대변소 칸칸 모두 문이 없어서 볼일 보는 동안 신체의 은밀한 부분까지 사정없이 노출될 것 같다. 도랑 식으로 되어 5분마다 물이 쏟아져 나와 변을 씻어내는데 첫 변소나 마지막 변소에 잘못 앉으면 똥물벼락을 맞을 수도 있다 하니 불안해서 볼일인들 잘 볼 수 있을까 모르겠다. 기념사진을 찍어줄 테니 포즈를 취해보라고 사모님들에게 카메라를 들여대니 모두들 기겁을 하고, 아내는 주책없다고 하얗게 눈을 흘긴다. 이런 야만인들이 어디 있느냐고 푸념하는 사모님들을 이야기를 들어가며 몸은 어느덧 황룡동굴 앞 광장에 들어섰다.

그림 5) <황룡동굴>
 황룡동굴은 세계에서 두 번째 큰 용암동굴로서 1983년에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한다. 상하 총 4층으로 되어있으며, 총 면적은 618ha, 동굴을 지탱하고 있는 종유기둥의 길이를 모두 합한 것이 14,000m에 달하는 규모를 지녔다 한다. 한국에서 이미 ‘성류굴’, ‘고수동굴’, ‘환선굴’ 등을 두루 섭렵한 바 있기에 중국의 동굴이라고 별 수 있으려나 하는 시큰둥한 생각으로 황룡동굴속에 들어갔지만, 100걸음을 채 걷지 않아 나의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나 깨달을 수 있었다. 첫 번째 나타나는 지하 광장. 아! 얼마나 웅대하고 신비로운 비경인가. 4, 5백 평 정도의 공간에 마치 전시라도 해 놓은 듯 다양하고 기묘하게 늘어선 석주(石柱)들. 천장은 하늘처럼 높아 수억 년 연륜 속을 자란 석회석 기둥들도 끝까지 다 도달하지 못하였다. 환선굴의 규모와 성류굴 고수동굴의 오묘함으로는 도저히 이 동굴과 비교할 수 없었다. 어제 원가계 경관을 보며 놀랐던 가슴이 이 지하세계의 신비로움을 보고는 놀랄 기운마저 잃고 말았다. 이 동굴 속에서 가장 기이한 것은 정해신침(定海神針)이라는 종유석 기둥으로 높이가 27m에 달한다고 한다. 1998년 중국 평안보험공사라는 보험회사에서 인민페 1억 원의 보험을 들었다고 하니 이 동굴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사랑을 읽을 수 있다 하겠다. 물기로 반들거리는 것이 젊은 종유석이고, 하얗고 푸석거리는 것이 늙어 죽은 종유석이란 가이드 김양의 설명을 들어가며 삶과 죽음의 이치가 돌에게까지 미친다는 생각에 잠깐 애상에 잠겼다. 동굴 속에 있는 1곳의 물구덩이와 2곳의 강물, 3개의 폭포, 4개의 연못, 13개의 궁전을 구경하고, 20여 분간 배를 타고 도달한 곳은 동굴의 출구, 아쉬운 마음이 동굴 종유석마다 떠돌았다.

그림6) <보봉호>
 버스를 타고 보봉호(寶峰湖)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 시커먼 아저씨들이 가마를 타라고 유혹한다. 다리 성한 사람이 웬 가마냐고 거절하고 나서 일행들끼리 웃고 떠들며 보봉호로 오르다 보니 산 동굴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옛날엔 계곡에 자연적인 폭포가 있었는데, 산 중턱에 터널을 뚫어 호수의 물을 50여m 아래로 낙하시켜 인공폭포를 만들었다고 한다. 폭포만 살짝 내비치고 숨어있는 호수를 찾아 허위허위 고개를 올라가니 저만큼 발밑에 그림처럼 호수가 누워있다. 원래는 수력발전소였던 것을 말레이시아 상인이 투자하여 관광 명소로 개발하였다고 한다.
 30여 명이 탈 수 있는 유람선(遊覽船)에 올라 호수를 보니 거울같이 깨끗한 물에 기이한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잠겨 있다. 녹음이 우거지기 이른 철인데도 물은 산으로 인해 푸르고, 산은 물로 인해 더욱 푸르다. 산봉의 호수가 평화롭기 때문일까. 물속에 떠가는 구름마저 여유롭다. 아귀고기의 슬픈 전설을 들어가며 산봉에 취해 물 위를 떠가다 보니 문득 토가족 전통 복장을 한 예쁜 소녀가 나와 노래를 부른다. 남자에게 구애(求愛)하는 노래라고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도 청아하여 오히려 구슬프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부르는 인간의 노래는 오히려 자연의 조화를 깨는 불협화음이 분명할 텐데도 토가족 소녀의 노래는 묘하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계곡 속을 울린다. 자연을 마음에 담으면 모두 신선이 되는 걸까. 선비회 22명의 모든 부부들도 모두 한 점의 욕심이 없이 자연에 취해 있으니 이 곧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점심을 먹고 천문산(天文山)엘 올랐다. 장가계에 첫 발을 내딛던 그 밤에 넘실거리던 달빛 아래서 나를 유혹하던 산이다. 장가계 시내의 케이블카 승차장에서 미지의 세계에

그림7) <천문산>
 대 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정상까지는 7.2Km. 장가계 시가지 건물들의 지붕을 넘고, 토가족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시골 들판과 마을을 지나, 케이블카는 드디어 가파른 산을 오른다. 발밑은 천야만야의 낭떠러지, 앞에는 병풍처럼 막아선 절벽. 떨어질 듯 부딪칠 듯 위태위태하게 헐덕이며 케이블카는 산을 올라가고 있다. 칼끝 같은 기봉(奇峰)들이 점차 낮아지고, 멀리 보이던 천문동굴이 가까워진다. 원래는 까마득히 케이블카 밑으로 구렁이가 꿈틀거리듯 미로처럼 걸려있는 도로를 통해 셔틀버스로 천문동굴까지 갈 수 있다는데, 아직 산 길 위 응달에 잔설이 남아있어 지금은 갈 수 없다 한다.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김부장님 사모님도 이 위대한 자연 앞엔 마냥 눈감고만 있을 수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연신 감탄의 소리를 지른다. 

 아! 이놈의 나라는 어찌하여 절경(絶景) 아닌 곳이 없는가! 산은 산대로 기묘한 바위들을 뿌려놓아 비경(秘境)을 이루고, 호수는 호수대로 맑고 투명한 물 위에 그림같은 산을 담아 신비롭고, 동굴은 왜 그리 크고 넓은 곳에 천태만상(千態萬象)의 석주(石柱)들의 숲을 만들어 해동(海東)에서 온 나를 이리 기죽게 만드는가. 나는 처음으로 이 광활한 중국의 국토에 대한 부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런 천혜(天惠)의 아름답고 웅장한 국토에 사는 사람들이 오만한 중화사상에 취해 왜 그리 편협하고 독선적인 지 안타까운 생각도 들었다.
 내일은 소주에 가서 졸정원과 한산사, 호구사의 호구탑을 보야야 한다. 상해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나는 이 아름다운 신선의 마을, 장가계의 모습을 머릿속 에 깊이깊이 새겨두었다.

posted by 청라

풀의 나라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4. 22:45

풀의 나라

淸羅 嚴基昌
풀이 일어나서
메마른 땅을 푸르게 덮는다.

뿌리끼리 서로 손을 맞잡아
땅 속의 모든 자양분을
빨아올리고

덩굴의 촉수를 감아 올려
나무도
꽃도
목을 조른다.

풀만 남은 풀의 나라엔
하늘 향한 발돋움이 없다.

풀잎끼리 팔 벌려
옆으로만 힘을 겨루며
한 뼘 더 뻗으려는
아우성만 있다.
posted by 청라

재회(再會)의 밤에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3. 17:11

재회(再會)의 밤에

淸羅 嚴基昌
보리암 앞 바다는
나를 보고
온 몸을 꿈틀거렸다.

수줍은 노을이
바다의 볼에
연지를 찍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르르 우르르
함성으로 달려들었다.

밤꽃 냄새가
온 바다를 덮었다.

초승달로 몸을 담그고
경련하는 바다의 몸속에 한 가닥씩
월광을 토해 내었다.
posted by 청라

연꽃 마을에서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3. 17:08

연꽃 마을에서

淸羅 嚴基昌
도심(都心)에서 날 선 사람들도
연꽃 마을에 와선 눈빛이 지순해 진다.

아침 해 떠오를 무렵
연꽃이 피면
연꽃 향기 찻잔에 담아 마시고

뻐꾸기 울음 너머 속 숨결에 번져오는
대청호 물비늘
연꽃 그림자

반갑게 내미는 손길에
봄볕 같은 정이 담겨 있어서
미소가 향기로운 연꽃마을 사람들은

연 옆에 서 있으면
그냥 연꽃이 된다.

대청호에서 건너오는 바람들도
연꽃 마을에 와서
연향(蓮香)에 몸을 씻는다.

나도 마음 닦으러 대청호로 가다
이 마을에 들러
도심(都心)에 찌든 얼룩 지우고 돌아온다.
posted by 청라

청년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3. 00:25


靑年
淸羅 嚴基昌

청년은 스무 살 안팎 나이의
사내를 이르는 말이 아니다

모진 바람 앞에서도
초목처럼 싱싱한 꿈을 접지 않으며
한 번 발걸음 내딛으면
절대로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너희들이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며
이만큼 와서
한 자락 남은 삶의 비탈이 가파르다고
숨을 헐덕이며 쉬려 하느냐

잠은 달콤하지만
아침에 일어나 바라보면
네 옆을 걷던 사람들은 까마득히
뒷모습도 보이지 않아
길은 거기서 끊어지고

뒤돌아보는 발자국엔
아프게 달려온  고통의 흔적 헛되이 남아
아물지 않은 상처 화석으로 굳을 것이다

조금만 더 걸어라
가시덤불 우거져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너희들의 정상은
하늘과 어우러져 저 위에서 빛나고 있나니,

세월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더라도
멈추지 않는 사람의 가슴에
더 많이 고일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걸어라
고개는 거의 끝나 가는데
꿈꾸는 것을 그만 멈추려느냐

청년은 스무 살 안팎의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헤쳐 가는 사람의 이름이다
posted by 청라

닭서리

수필/서정 수필 2007. 3. 11. 23:51

닭서리


淸羅 嚴基昌
 얼마 전 고향 친구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 사는 고향 친구들끼리 저녁이나 먹으려고 하니 시간 있으면 참석해 달라 한다. 일 년에 몇 번씩은 방문하는 고향이지만 도회에 나와 살면서 고향을 생각하면 늘 솔바람소리, 뻐꾸기 울음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느껴진다. 친구들은 거의 떠나고 없지만 눈을 감으면 친구들의 얼굴은 늘 거기에 있고, 어릴 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보석처럼 간직되어 있는 곳이기에, 타향의 거리를 헤매다가 외로움을 느낄 때면 그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보며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들이 있어서 늘 심심하지 않고 즐거웠다. 봄이면 얼음 풀리는 도랑에 나가 가재를 잡아 구워 먹고, 여름이면 냇물에 나가 미역을 감으면서 수박이나 복숭아 서리 할 음모들을 꾸몄다. 별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도 마냥 재미있어 깔깔거렸다. 가을이면 남의 밤나무 밑을 어정거리다 쫓겨 달아나기도 하고, 겨울이면 토끼몰이를 한다고 온 산을 헤매기도 하고…….
 초등학교 5학년 어느 겨울밤 우리 조무래기 7, 8명은 친구 집에 모였다. 친척 결혼식이 있어서 그 친구의 부모님께서  부산에 가고, 남매만 달랑 남아 밤이 무섭다고 하기에 집도 보아줄 겸 신나게 놀아보자는 계획이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돌아가며 귀신 이야기도 하고, 윷도 놀고, 베개 싸움도 하다가 열 한 시가 넘어가자 입이 출출해졌다. 생고구마를 깎아 먹어도 동치미를 꺼내어 먹어도 우리들의 허기증은 가시지 않았다. 한 친구가 은밀하게 닭서리를 하는 게 어떠냐고 하였다. 아무도 망설이지 않고 재미있겠다고 눈을 반짝거렸다. 가위 바위 보로 닭을 잡아오는 행동대원을 3명 뽑고, 2명은 닭을 잡고, 나머지는 물을 끓이고 양념을 준비하는 조로 나누었다. 나는 운이 좋았던지 물 끓이는 조에 뽑혔다. 행동대원으로 뽑힌 친구들이 밖으로 나간 지 한 시간쯤 지나 큰 닭 두 마리를 잡아왔다. 우리 작은 악당들은 약간의 두려움으로 눈을 감고 얼굴을 찡그리며 닭을 죽인 뒤에 이미 끓여놓은 물에 담갔다가 닭털을 뽑았다. 내장을 꺼내어 간이나 콩팥 등의 먹을 수 있는 내장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으슥한 땅에 묻었다. 무슨 요리사라도 된 듯이 마디씩 지껄이는 말들에 따라 마늘도 넣고 파도 넣고 그냥 푹 삶아 소금을 찍어 먹었다. 어설픈 요리솜씨임에도 우리들의 시장기는 순식간에 닭 두 마리를 뼈만 남겨놓았다. 새벽녘 헤어질 때 우리는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처럼 긴장한 모습으로 손을 잡고 이 비밀 무덤까지 가지고 가자고 굳게 약속하였다.
 집에 돌아와 살풋 잠이 든 듯한데

 “아이고 우리 닭. 아이고 우리 닭”

 어머님께서 외치시는 소리에 놀라 깨었다. 벌써 새벽이 되어 날이 부옇게 밝았다. 닭장에 뛰어가 보니 큰 닭 두 마리가 없어졌다.

 “나쁜 놈들, 약아빠진 놈들……”

 이제 와 생각하니 친구들이 잡아왔을 때 왠지 그 닭들이 낯익었던 듯도 하다. 그런데 우리 닭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닭서리 하다가 발각되어도 자기 아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쩌려고 하는 고 놈들의 속셈을 생각하면 입맛이 썼지만 이제 공범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같이 걱정하고 있는 아들이 범인인줄도 모르고 분해 펄펄 뛰시던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 고향은 쓸쓸해 졌지만, 허전할 때면 가슴 설레고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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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0. 21:45

독도


淸羅 嚴基昌
외로움도 깊어지면 담청 빛
눈물로 고여
속울음 가슴앓이 뼈만 남은 팔뚝에

동풍에 넋을 갈아 깃발로 세운
엄마엄마 울던 아이 풍랑이 혼자 키운

국토의
막내야
해당화 한 송이도 못 피우는 작은 가슴에
무에 그리 한없이 담은 게 많아

오늘도 눈 부릅뜨고
잠 못 이루나
posted by 청라

산나리꽃 당신

시/제3시집-춤바위 2007. 3. 10. 21:43

산나리꽃 당신

 
淸羅 嚴基昌
아내의 마음은
산나리 꽃빛이다.
한 줄기 가녀린 몸 위에
햇살 웃음 피워 놓고
언제나 집안을 환하게 밝혀주는.


아내의 눈동자는
하늘 담은 옹달샘이다.
때로는 내 마음에 티끌 일어나면
꽃구름으로 피어나서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내여
당신은 내 일상(日常)의 숲을 지켜주는
키 큰 산나리 꽃이다.


하루 종일 동동거리는
당신의 발걸음을 보며
다시 태어나도 당신 곁에 서서
거센 바람 막아주는 나무이고 싶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