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주례사
날씨가 몹시 추운데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랑 김두호 군과 신부 윤희원양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해주신 하객 여러분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의 결혼식을 갖게 된 양가의 부모님께도 축하의 말씀 올립니다.
일본의 시인 고바야시 잇사의 하이쿠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나비와 함께 앉아있다.
이것도 전생의 인연
한 알의 모래에 온 세상을 다 담아두듯 잇사는 이생과 전생의 인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태어난 날도, 태어난 장소도, 성장 환경도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오늘 부부라는 인연으로 함께 묶이게 된 것은 전생에 맺어졌던 수천 겁의 인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이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키워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 앞날의 행복이 바로 거기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가 이 주례를 기꺼이 허락한 것은 저희 부부는 결혼 40년 넘게 아직 부부싸움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들도 잘 자랐고, 제가 주례를 맡았던 이십여 쌍의 제자들도 모두 아이들 잘 낳고 행복하게 잘들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행운을 사랑하는 김두호 군과 윤희원 양에게 나누어주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교사이며 지혜로운 신랑 신부가 행복한 가정을 잘 꾸려가리라 믿습니다만 노파심에 몇 가지만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신랑 신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행복을 유지하는 것은 행운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을 변치 않고 꾸준히 지켜가는 데 행복의 열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꽃과 같아서 서로 힘을 모아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맙니다. 제 ‘부부’라는 시를 보면 “나는 마음의 반을 접어서/아내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산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의 반을 접어 상대방의 마음 갈피에 끼워 넣고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주며 작은 근심도 사전에 포착해서 해결해주는, 반려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변하지 않는 그런 마음이 가정 평화의 씨앗이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주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드리고 싶은 말은 배우자의 부모 형제를 내 부모 형제처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쉽지 않겠지요. 어느 날 갑자기 맺어진 인연인데 왜 어색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부싸움의 시초는 상대방 가족에게 섭섭하게 대했다는 곳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알고 모든 주례사들이 당부하는 말인데도 잘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신랑 신부는 사랑을 오래 지켜가기 위해서는 신랑은 신부의 가족을, 신부는 신랑의 가족을 자신의 가족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해주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당부할 말은 자식은 적당하게 낳아 잘 교육시키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이유,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 즐기면서 살기만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식을 낳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 있어서 자식은 꼭 필요합니다. 늙어 의지할 곳 하나 없을 때 자식은 존재한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지가 됩니다. 자식 교육은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가르치는 현명한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지금의 뜨거운 사랑 변하지 말고, 배우자의 가족을 내 가족 같이 사랑할 것이며, 적당하게 자녀를 낳아 잘 기르는 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열쇠가 됩니다. 신랑 신부는 주례의 말을 명심하고 실천하여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기 바랍니다.
또한 이 자리를 함께하시는 하객 여러분께서도 새 출발 하는 이 가정을 지켜봐주시고 미흡할 때는 따뜻한 보살핌이 있기를 부탁드리며, 간단하나마 두서없는 말로 주례사를 대신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17년 12월 16일
주례 엄 기 창
글
무상無常
다랑논엔 벼 대신 병꽃만 피어있다.
할아버지 발걸음 끊어진 지 너댓 해
두견새 울음소리만 맴돌다가 사라진다.
떡갈나무 몇 그루 자리 잡고 누워있다.
멧돼지 목욕하러 밤마다 내려오는
시간이 빨리 흘러서 해가 쉬이 지는 마을
2017. 12. 4
글
달빛 기도
마곡사 부처님께
백팔 배百八拜 하고 돌아온 저녁
부처님 입가에 피었던 미소
초승달로 따라왔네.
그대 빗장 지른 가슴에
달빛 한 가닥 스치거든
마음의 문 살짝 열어달라는
달빛 기도인 줄 아소서.
2017. 11. 29
『대전문학』79호(2018년 봄호)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