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기원

 

 

무술년戊戌年 첫 새벽에 풍등風燈 하나 띄웁니다.

어둠을 뚫어내며 하늘로 올라갑니다.

부상扶桑까지 날아가서

밝고 뜨거운 태양을 불러오십시오.

이 땅의 겨울을

따뜻하게 녹여주십시오.

 

정유년丁酉年 한 해는 너무도 추웠습니다.

북녘 땅에서 연이어 미사일이 날아가고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폭탄이 덩치를 불렸습니다.

대륙은 사드를 핑계삼아

정치 경제적으로 우리를 압박하고

바다건너에선 이 땅을

전쟁터로 만들겠다고 위협했습니다.

 

우리끼리라도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높이를 겨루고

세월호의 망령은 창으로 아직도 민족의 가슴을 찌릅니다.

대통령은 탄핵을 당해 어둠 속에 갇히고

겨레의 결속은

갈가리 찢겨졌습니다.

 

사랑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라

증오를 부풀려서 빚은 나라입니다.

 

각 부처部處에는 전문가보다

목소리 큰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공신功臣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에

신명身命을 바쳐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과거를 단죄하느라 진을 빼기보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차례입니다.

 

억새들도 서로의 등을 지키는 것이

혼자 바람을 견디는 것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압니다.

미움보다는 용서와 사랑으로 뭉쳐서

어깨동무하고 바람을 헤쳐갑시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는

무술년 이른 새벽에 풍등을 띄우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노니

희망 잃은 대한민국에 날개를 주셔서

금빛 날개로 온 하늘을 덮게 하소서.

 

 


2018년 1월 1일

충청문화예술 20181월호

posted by 청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낭송

시낭송 2017. 12. 23. 15:55
posted by 청라

겨울 허수아비

 

 

빈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겨울 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退任

눈부신 정적靜的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깨우면.

수만 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다 벗은 채

지워지는 허수아비

 

 

2017. 12. 17

시문학20183월호

대전문학82(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