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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방포 일몰
새빨간 불구슬
누가 박아 놓았을까
스르르 구르다가
반쯤만 걸린 것을
파도가
꿀꺽 삼키고
펄떡펄떡 뛰고 있네.
2018. 1. 13
글
환향녀
소녀가 눈보라 속에 앉아 있다.
청동의 어깨 위에 쌓이는 겨울,
그녀의 삶은 늘 바람 부는 날이었다.
풀 수 없는 옷고름 안쪽에
부끄럼처럼 감춰졌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짐승 같은 울음
그녀의 오열嗚咽 속에는 늘 열대의 태양이
핏덩이처럼 거꾸로 떨어지고 있었다.
인조가 삼전도에서 무릎 꿇고 내버린 건
정조貞操였다.
여인들의 절망이 까마귀처럼 날아올랐다.
행복은 호국胡國의 삭풍 속에서 이슬처럼 깨어지고
필리핀 열대우림 지옥에서 돌아왔지만
나는 돌아올 곳이 없었다.
나는 환향녀요, 위안부였다.
가랑잎을 덮은 꿩처럼 몸을 숨겨도
언제나 겨눠지는 손가락 칼날
화냥년 화냥년 화냥년
나를 버린 건 아버지였다. 남자였다.
그리고 조국이었다.
저희들이 살기위해 나를 버리고
삭정이처럼 마른 내 몸에 멸시의 화살을 쏘고 있느냐.
부끄럽지 않은 자 와서 돌로 쳐라.
세상은 눈으로 지워져 적막하고 모든 길들은 막혀있다.
꽃을 놓고 가는 아이도 눈물을 주고 가는 노인도
힘없는 정의보다는 거룩하다.
살아서는 아버지의 딸도 아니고, 조국의 딸도 아니고
그냥 더러운 몸뚱이었던 것을
동상으로 앉혀준 것이 정말 나를 위해서이냐.
파헤칠수록 더욱 붉어지는 상처를 보며
옛날에도 지금도 그냥 조신한 여자이고 싶다.
『시문학』2018년 3월호
『문학사랑』130호(2019년 겨울호)
글
비닐 편지
도시를 탈출하다 첨탑에 꿰인 비닐
무엇을 외치려고 비명처럼 몸 흔드나
땅거미 날개 펴듯이 쏟아지는 검은 종소리
한 집 걸러 한 개씩 십자가는 불 밝혀도
사랑은 말라가고 죄인은 더 많아지나
어둠의 세상 자르려 초승달 칼 하나 떴네.
소음뿐인 도시에 사랑은 죽었더라.
난민인 양 탈출하다 한 조각 꿈 깨어지듯
십자가 못 박힌 채로 늘어지는 비닐봉지.
2018.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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