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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눈 오는 날에
하늘에 올라갔으면
구름이 되어 떠돌 것이지.
하얀 솜털처럼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허리 굽혀 내려오는가.
이제 기쁨의 노래가 되어
가장 낮은 곳을 흐를 것이다.
기가 부족해 황달로 삭아드는
나무의 뿌리에 온기를 전해주고
봉오리 터뜨리기에는 뒷심이 딸리는
풀꽃의 줄기에 숨결을 보탤 것이다.
겨울이 시들어 강산에 추위 풀리면
네 겸손한 하강下降으로 인해
온 천지에 푸른 새싹 돋아나고
꽃들 세상 밝히는 등을 켜들 것이다.
가장 높은 곳에 머물러 양광陽光을 가리는
검은 구름으로 살기보다는
가장 낮은 곳을 흐르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웃음이 되고, 온기가 되고
말씀이 되기 위해 내려오는 것이냐.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가장 좋은 삶은 물과 같다는 말을 알 듯도 하다.
2017. 11. 24
『시문학』2018년 3월호
글
☐嚴基昌 作品解說
절제와 스밈의 시학
조 재 훈
<시인. 공주대학 국어과 교수>
시인의 연장선상에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T.S.엘리어트는 그의 여러 논문 가운데에서 힘주어 말했고, 그 영향으로 이른바 영 ․ 미의 이십세기 초반 분석 비평가들은 무슨 의도의 오류라든가 영향(정서)의 오류 등을 내세우면서 작품으로부터 작자와 독자를 단절시킴으로써 작품의 유기체적 자율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윤리 ․ 도덕 또는 역사적 비평이 지배하던 당대 문학연구 풍조에 대한 반작용으로서의 비판이라고 이해된다. 가령 소쉬르의 언어이론도 십구 세기 유럽의 언어학을 지배하던 독일 라이프니츠대학 중심의 낭만주의적 역사비교언어학의 거부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것은 둘 모두 자본주의 발흥과 기계문명의 첨단화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쉬르의 언어이론에 기초하여 생겨난 파리의 구조주의나 기호학은 가장 적정한 최신의 그것이라고 하기보다는 문화를 지탱하는 역사, 경제 등을 살펴, 상대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다. 따라서 작품 안에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는 필요 ․ 충분조건이 다 들어 있다는 견해는 그런대로 이해할 수는 있어도, 역사의 왜곡이 심한 제삼세계 등의 겨레의 경우에는 전적으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할 것이다.
앞에서 장황하게 이러한 말을 늘어놓는 까닭은 엄기창의 사람됨과 나와의 인연을 조금이나마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서다.
공주교육대학에서 일년 쯤 근무하다가 내가 공주사범대학으로 옮긴 것은 천구백칠십 년 오월이었다. 그 이전에도 사 ․ 오년간 시간강사로 나왔던 터라 그리 낯선 느낌은 주진 않았다.
전임이 되어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기는 『수요문학』동인들과의 자리였다. 최병두, 노동섭, 심규식, 조동길, 구중회 등 쟁쟁한 젊음들이 동나도록 공주의 막걸리를 퍼마시며 공주 좁은 골목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해박(?)한 이론의 싸움이 그칠 줄 몰랐고, 그 싸움의 불꽃으로 조금씩은 저린 가슴들을 태우곤 하였다. 후끈 달아오른 이런 열기 속에 그들의 후배로서 뛰어든 사람 가운데에 유병환, 엄기창 등이 있었다. 그들의 객기는 동인지, 시화전, 문학의 밤 등 쉬임없이 나타났으며 무슨 『허당집』인가 하는 이름의 괴짜 문집을 간행하기도 했다. 발바닥이 땅 위에서 몇 뼘은 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속에서 엄기창은 유난스럽게도 촌색시처럼 조용했고 수줍어했다.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편이었으며 그리고 늘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방(연구실)을 찾아와 마곡사 근처에 있는 가교리 고향마을의 이야기를 열심히 하는 바람에 나도 촌 태생이기 때문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그의 이야기를 여러 시간 맞장구를 치면서 그야말로 열심히 들은 적이 있었다. 수태극으로 휘돌아 흐르는 냇물과 그 물 속에서 노는 가지가지 물고기 이야기, 무성산의 허물어진 성곽과 그 곁에 있는 샘물 그리고 거기에 얽힌 홍길동 전설, 화전신 이야기 등이었는데, 이번 시집의 원고를 통독하다 보니 그는 아직도 유년의 고향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변하지 않는 그의 느긋한 말씨와 부처님의 미소인 듯 따사로운 그의 소리 없는 웃음이 그의 사람됨과 문학의 성향을 모두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여 겸허한 순결성이라고나 할까? 노자가 일찍이 갈파한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그 물처럼 낮은 데서 표없이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엄기창이란 선생님이자 시인이다. 73년이던가 74년이던가, 엄기창은 『시문학』에서 주최한 전국대학생문예작품 공모에서 당당히 당선되었으나 그런 것에 자만하지 않고 묵묵히 시작에 전념함으로써 일년 후(75년)문단 데뷔의 관문을 거쳤다. 요즈음 너도 나도 무슨 자격증을 얻듯이 추천입네 뭐네 하여 ‘문단’이라는 흙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는데, 나는 우리 문학의 건강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이다. 이 말은 엄기창이 이른바 소정의 절차를 밟아 문단이라는 데에 나갔으나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더욱 더 진지하고 겸허해진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의 문학』동인에서 핵심적인 위치로 활약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엄기창을 ‘조용하고 맑은 香’의 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펴내는 이 시집에는 그런 향내가 은은히 스며 있다.
시는 아무래도 응축이 그 바탕이다. 산문이 진술을 통하여 확산을 하는 장거리의 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압축을 통하여 사물의 핵심을 전광석화로 드러내려는 최단거리의 장르라 이를 만하다. 산문에서는 할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비교적 마음 턱 놓고 차근차근 이야기할 수 있으나 시는 그럴 수가 없다. 직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시는 상황에의 설명이 아니라 존재에의 부가이다. 모울튼이 시를 일러 산문의 토의문학과 대비하여 창조문학이라고 한 것은 소박한 대로 정곡을 찌른 견해이다. 지금은 덜 하지만 오래 전에 나는 시를 무슨 보석처럼 생각하였고 또 무슨 향수의 가장 진한 원료라고 여겼다. 흙의 정(精)으로서의 보석은 견고하고 빛나며 아름답다. 물의 정으로서의 향료는 한 방울만 떨어뜨려도 온 방안이 향내로 가득해진다. 둘 다 최대의 밀도로 농축되어 있다. 역시 시도 그래야 한다고 믿어 왔으며 그것은 지금에 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언어의 경제원리를 철저히 지키는 것――다시 말하여 최소한의 언어를 선택하여 최대한의 감동과 충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접은 시각이 정해져 있으면 그것에 따라 어휘 하나, 토씨나 어미 하나, 쉼표 ․ 마침표 하나에 숨을 불어 넣으며 그것들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다. 상허가 그의 널리 알려진 『문장강화』의 앞머리에서 글을 잘 쓰는 것은 쓸데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능력에 있다고 설파한 적이 있는데 존재의 환기 또는 그 번역으로서 ‘시’에 있어서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그런데, 여러 날, 여러 달 또는 여러 해 고심 끝에 문자화 한 시를 거개의 독자는 신문기사를 읽듯이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고 나서 무슨 수작을 하는지 모른다고 투덜댄다. 물론 작품에도 그 근본 원인이 있겠으나, 어느 면에서는 속도와 피부적 향락을 요구하는 이 시대의 독자에게 책임이 더 크다.
엄기창의 시는 언어의 경제 원리를 모범적으로 보여 준다. 어느 시, 어느 구절 하나 그냥 허술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길고 긴 이야기와 감추어진 여백의 의미를 가득 넘치게 거느리고 있다. 빠르게 스쳐 읽는 사람에게 그의 시는 문을 열지 않는다. 적어도 작자가 힘쓴 몇 십 분의 일 만큼이라도 차분한 인내심을 가지고 음미하듯 읽는다면 그의 시가 가진 묘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그의 어느 작품의 경우나 마찬가지다.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
내려올 곳이 너무 많아서
내리지 않고
北岳에서 南山으로 흐르며
울기만 한다.
대밭에 참새처럼 숨어
지저귀는
사람들은 알리라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룽 우르룽 울고 있는지....
번갯불보다 고운 어둠 밑에서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다.
그의 「서울의 천둥」의 전문이다. 그의 시 가운데에는 특이할 정도로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조금도 격하지 않다. 차분한 가락과 상징을 통하여 할 말을 시로 드러내고 있다.
서울 하늘에 ‘천둥’이 ‘늘’ 울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서울 하늘에만 어떻게 일년내내 비가 오고 천둥이 치겠는가. 그렇다고 과장도 허구도 아니다. 다른 의미를 뒤에 거느린 암시와 상징이기 때문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온갖 악의 온상일 수 있다. ‘항구’라는 언어의 의미군에 ‘숨어 있다’는 다른 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고향의 시골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서울’은 반 자연이며 반 고향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천리(天理)에 따른 한울님의 응징인 ‘천둥’이 항상 울기 마련이다. 내려와 인간들에게 응징할 곳이 ‘너무 많’으나 그냥 스스로 울 뿐, 가시적인 형벌을 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인으로서의 ‘참새 떼’같은 인간들은 조금도 뉘우침이 없다. 하늘의 말 ―― 번갯불에 타면 그냥 없어지게 될 갖가지 욕망의 꿈을 어둠 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다. 어둠이 번갯불보다 곱다는 시적 진술은 역설이다.
시인 스스로의 내면을 향할 때에는 더욱더 응축의 정도가 심해진다. 그의 연작시「短歌」는 그러한 범주에 속한다.
눈 위에 떨어진
피 한 방울처럼
너와 나는 남남이다.
새벽부터 木鐸 소리가
귓가에 요란하다.
宇宙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르고
後光에 싸여 온 너의
하얀 손
그 하얀 손의 고갯짓
四十九日 밤낮을 눈 안 붙이고
나를 위해 木鐸만 두드리더니
너는 하얗게 昇天하고
아직 붉은
나와, 너는 남남이다.
―― 「短歌 ․ 3」
나와 너 또는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형이상적 시상의 작품이다. 삶은 사실상 ‘너와 나’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너의 존재와 나의 욕망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고독의 숙명, 그것이 삶의 거짓 없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 시는 그러한 절망과 벽의 문제를 담담히 그러나 깊이 있게 드러내 주고 있다.
하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곧 하얀 눈과 붉은 핏방울의 선명한 대비는 백설공주의 그것처럼 찬연히 아름답다. 그러나 하는 거부(흰색은 배제이니까)요, 차가움이며 다른 하나는 타오름(붉은 색은 불의 이미지를 지니므로)과 뜨거움으로서, 서로 단절되어 있는 상태다. 이것이 이 시인이 본 존재의 진면목이다. 하지만 이러한 독해(讀解)의 결론은 하나 새로울 것이 없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새벽 목탁 소리’를 배음(背音)으로 하되 그것은 ‘우주를 목도리처럼 목에 두른’ 하얀 손, 너의 나를 향(向)한 간절한 염원이다. 그러나 지상에 내린 눈이 곧 소멸하듯이 하얀 눈의 그 하얀 손은 사라지게 된다. 나는 뜨거운 열망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리하여 ‘너’와 ‘나’는 영원히 ‘남’일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러한 시적 요소들에 의하여 이 시는 진부함을 벗어나 그 나름의 빛을 얻는다.
엄기창의 시를 눈여겨보면, 잠언풍이다. 짧은 서정시 같아도 그 속에서 그 나름으로 삶의 의미가 종교적으로 천착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엄기창이 주목을 받아야 할 이유의 하나이다.
견고한 시 쳐놓고 건조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미지스트의 시들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명석하고 선명하지만 그런 만큼 깊이가 빤히 드러나 ‘울림’이 적다. 때로는 우리로 하여금 시 읽는 시법독해의 재미는 줄지언정 감동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다. 랜슴 같은 이가 그런 유의 시를, 뿌리 없이 모래 위에 꽂아 놓은 시라고 빗대면서 ‘물질시’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럴듯하다.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있어서 상징주의적인 시보다는 투명한 것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울림’은 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미지 위주의 시는 울림을 통하여 스민다기 보다는 금속성으로 빛난다 할 것이다.
엄기창의 시는 단단한 구조에도 불구하고 결코 드라이하지 않다. 봄비처럼 촉촉이 스미는 그 무엇이 있다. 그 자력(磁力)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바탕에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시적 형상화의 성공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문학은 말하기(telling)보다 보여주기(showing)를 통해 구체성으로 나타내야 하며 그것은 시에서 극치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형상화 또는 육화(incarnation)라 부른다. 관념의 노출이 시가 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관념이 용해된 시적 ‘육체’를 얻을 때 공감대가 넓고도 깊어진다. 육화와 더불어 또 하나 지적할 일은 시의 서정성이다. 우무래도 시는 감성의 문학이며 직과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부분이다. 엄기창의 시는 잔잔한 서정을 예외 없이 배음처럼 깔도 있다. 거기에다가 시의 호흡이 잘 정돈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하나는 위와 같은 기본적인 바탕위에 그가 가진 시정신의 취향이 보여주는 친화력 때문이다. 그것은 다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자연 친화의 경향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애정을 보내는 태도는 고금 시인의 일반적인 경향이며, 특히 동양시의 전통이서 엄기창의 자연 친화는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자연예찬이 아니고 급속도로 발전(?)하는 기계문명의 세계에 대한 거부와 농촌(고향) 붕괴에 대한 연민의 정을 포괄한다. 둘째로는, 미세한 것에 대한 그의 애정이다. 벌레 한 마리, 새 한 마리, 들꽃 한 송이에 대해서도 그는 애정을 보낸다. 주로 그의 애정은 자연에 향해 있지만 어쨌든 그것들은 거대하고 웅장한 것이라 대체로 작고 힘없는 것들이다. 셋째로는, 삶의 현상을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쪽의 보이지 않는 데를 투시하여 의미를 드러내려는 예지가 그의 시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좋은 시냐 아니냐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때, 엄기창의 시는 시로서의 품격을 지닌다.
이러한 여로 통로를 통하여 오는 엄기창의 시가 지닌 ‘스밈’의 친화력은 소중하다.
[가] 溪谷으로 돌 돌
연두빛 生命 굴리는 십자매 울음
그 울음소리로도
일어서지 않는
산……
――「K화백 화실 풍경」
[나] 굳게 입다문 산그늘 허물어진
반달만한 양지에
初産으로 낯 붉힌 진홍빛
저 간절한
말 한 마디
――「三月」의 한 연
[다] 한 여자가 끊고 지나간
길,
눈발이 날린다.
滿月처럼 둥근 배가 쫓아와서
앞길을 막아서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단절의
끈 한 편에
풀꽈리처럼 조그맣게 매달린
내 금간 하루
――「끈」의 앞부분
[라] 막차는 차갑게 식어
어둠에 풀린다.
――「막차 안에서」첫 부분
[마] 하나의 離別은
별처럼 반짝이지만
두 개의 離別, 세 개의 離別,
수많은 이별들은 반짝이지 못한다.
――「短歌 ․ 5」첫 부분
그의 시에는 신선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시 구절은 꽤 많다. 그 이미지들이 단순히 장식적인 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시가 의도하는 시상과 튼튼히 그러면서 기발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적 효과를 배가하고 있다.
위의 인용은 극히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윗 시 중 [가]~[다]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자연은 섬세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으며 그것은 단아한 호흡에 얹혀 독특한 시적 이미지로 전이된다. 특히 [가]와 [나]가 그러하다. 귀엽고 앙징스러운 십자매의 울음소리와, 봄이 되어 얼음 풀린 계곡의 물이 연두빛으로 오버랩 되면서 그것을 아직은 철이 이른지 그냥 묵중한 채 웅크리고 있는 산에 연결시키고 있다. 제명에 의거하건대 아마 어느 화가의 화실에 걸린 그림의 인상이 아닌가 싶다. [나]도 진달래란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굳게 입 다문 산’ 그 그늘 ‘허물어진’ ‘반달’ 크기의 작은 양달에 피어 있되, 겨울 지나 피어 있는 그 어려움과 경이스러움이 여인의 초산과 같다고 말한다. 초산의 비유는 신선하면서도 적절하다. 어려움, 경탄, 생명에의 외경, 피, 핏덩이 탄생 등의 연상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 간절한/말 한마디>는 초산의 긴장과 염원으로 충전된다.
[다] ․ [라]는 퍼스나의 고독이 자연 속에 용해되어 있는 예이다. ‘한 여자’가 단절시키고 떠나가 버린 길은 적막과 좌절의 그것이다. 그리하여 차가운 ‘눈발’이 사정없이 볼을 때린다. 하얗게 눈 덮인 벌판처럼 세상은 없음으로 꽉 차 공허할 따름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배는 아직 보름달처럼 둥글지만 그래도 역시 앞을 가로막는다. <은빛 반짝이는 단절>일 밖에 없다. 퍼스나의 고독은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조그맣게 풀 꽈리로 매달린 그 이미지가 단절의 처절성을 상당부분 완화시킴으로써 <금간 하루>정도로 머물게 해주고 있다.
‘무던하다’는 말이 있다 엄기창에게 꼭 들어맞는 말로 여겨진다. 고등학교 시절의 『팔각정』동인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거의 24~26년간 시에 열정을 쏟은 셈이며, 많은 재능들을 물리치고 문단이라는 데에 첫 선을 보인 지도 거의 20년에 가깝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안달복달하면서 시집 간행과 발표에 눈독을 드릴 테인데, 그냥 묵묵히 누구를 부러워 할 것도 없이,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이 시만 다듬다가 이제 멱이 찼다고 느꼈는지 그동안 발표한 것들을 정리하여 한 권으로 묶게 되었다. 오늘날 문학 공해의 시대에 나는 그런 엄기창의 겸허와 진지성에 대하여 신뢰감을 갖는다. 그리고 그의 고전적인 시작 태도에 관해서도 긍정적이다. 모던이니, 포스트모던이니 해도 역시 시의 올바른 길은 엄격한 언어의 절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어의 적절한 절제에서 압축성을 갖게 되며 그 압축에서 리듬이 태어나고 그 리듬은 힘이 되어 우리를 울린다. 어떤 평자가 정지용의 시를 언급하면서 정곡을 찌른 말처럼, 언어의 절제는 욕구의 억제에 맞물려 있는 것이다. 턱없는 미지에의 동경이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절제 잃은 언어의 분류로 나타난다면, 고전적인 엄격한 자아의 통제는 자연히 언어의 절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엄기창이 보여 주는 언어의 절제도 실은 그가 가진 세계관의 자연스러운 드러남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여기에 엄기창 문학의 한계가 있으며 극복해야 할 과제가 놓여 있다.
엄기창의 시는 예외 없이 짧다. 서정적이며 아름답고 또 거부감 없이 잘 스며들지만 작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서정의 소품이 그의 시가 지닌 대체적인 인상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작다>는 사실은 다양성의 결여와도 연루되어 있다.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 방법에 있어서 두루 마찬가지다.
시인은 늘 틀을 깨부수는 자이며, 새것을 찾아 창조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혁명적 열정이 늘 따라야 된다. 삶의 문제에 관하여 세계에 관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진이 무엇인가, 선이 무엇인가, 미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추구해야 한다. 시인이 불안해 보이고, 불온해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랜만에 그동안 써온 시편들을 일단 정리하면서 이 시인에게 나는 답답할 정도로 꼼꼼한 ‘시학’으로서의 모범적인 시 쓰기의 구속에서 좀 벗어나는 그런 용기를 갖도록 주문한다. 튼튼한 엄기창의 시학을 토양으로 하여 변모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나뿐 만은 아닐 것이다.
글
▪해설
눈부신 서정과 맑은 향기
― 엄기창 시인의 시세계
리 헌 석
(시인, 문학평론가, 대전문인협회 회장)
1. 시인의 발자취를 따라
<어릴 때 떠내려간/ 태화산 그림자를 건지려고/ 서해 바다에 갔었네>(「세월」일부)라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1951년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 근처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그곳에는 태화산이 있고, 그 자락에서 곱고 맑은 향토적 서정을 익힌다.
그는 세월을 거슬러 어릴 때 가지고 놀던 ‘풀꽃’을 그리워한다. 맨발에 신겨 주던 ‘꽃신’과 날려보낸 연(鳶)의 추억이 아직도 ‘그림자’로 가슴에 남아 있다. 아련하게 그리운 추억에서 벗어나 현실에 머물려고 몸을 추슬러 보지만, 어린 시절에 보았던 ‘초승달’이 오히려 그리움의 정서를 일깨운다.
번지 없이 띄워 보낸
내 풀꽃은
흔적이 없고
맨발 위에 신겨준
꽃신만 한 짝
파란 하늘 보고 돌아누워 있었네.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연(鳶)처럼
영원히 잃어버린 내 그림자여,
물빛 흔들어 몸을 감추고
닫아 거는 가슴엔
날선 초승달 하나.
―「세월」 일부
산촌에서 소년기를 지난 그는 중소도시 ‘공주’로 유학을 한다. 그 곳에서 그는 학업에 정진함과 동시에 문학의 꿈을 가꾸게 된다.
공주영명고등학교 재학 시절 ‘팔각정문학회’의 일원으로 문학 청소년기를 보낸다. 당시 대학에 재학 중인 윤석산 시인이 자주 찾아와 문학혼을 일깨우고, 유병학 시인은 국어 지도교사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또한 선배인 문희봉, 김영훈, 전영관 등으로부터 문학 창작의 열기를 이어받는다. 필자는 그와 동기동창이면서 같은 서클 동인으로, 문학의 꽃을 함께 가꾼 지기지우(知己之友)였는데, 80년대에 다시 만나 문인의 길을 같이 가고 있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한다. 당시 공주사대에는 ‘수요문학회’가 치열하게 활동할 때여서, 그의 문학혼은 일찍 개화하게 된다. 임헌도 조재훈 한상각 시인을 교수로 만나고, 선배인 임강빈 임성숙 최원규 김명배 등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명수 구중회 윤강원 등의 선배 동인을 만난다. 당시 수요문학회는 작품 합평회를 통해 작품 수준을 높이고자 절차탁마에 힘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같은 수련을 거쳐 그는 재학 중인 1974년에 《시문학》 주최 제1회 전국 대학생 시 공모에서 당선하여 1회 추천의 대우를 받는다. 또한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 복무 중인 1975년에 완료 추천을 받아 시인으로 등단한다.
그는 중등학교 청년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창작의 삽질을 쉬지 않는다. 1980년대에는 ‘오늘의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지역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1993년에 첫 시집 『서울의 천둥』을 발간한다. 향토적 서정이 넘치는 작품 성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제목의 시집이지만, 이 시집에는 엄기창 시인의 결 고운 서정이 가득하다.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노래를 알았다.
비스듬히 현(絃)을 베고 누운 음(音)들이
악보 속에서 걸어 나와
목젖을 두드렸다.
우는 새의 목 너머로 훔쳐 본
아직 어느 악보 속에도 살지 않는
음(音)의 침전,
아침의 곧은 줄기 성센 가지를 골라
새는 노래를 뿌린다.
번득이는 음(音)들로 구상(構想) 짓는
몇 올 가락이 햇살처럼 선명하게
숲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본다.
―「아침 서곡(序曲)」 전문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노래를 알았다고 고백한다. 이는 그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인지, 혹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인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인 스스로 노래에 일가견을 가진 것으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 현을 통해 생성된 소리들이 그의 목젖을 통해 노래로 거듭난다는 표현에 이르면, 그는 노래를 듣는 수준에서 주체가 되어 부르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의 노래는 ‘새’의 노래와 동일시되고 있다. 즉 새의 울음소리로 상징되는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음들로 새로운 세계를 구상한다. 여기에서 노래라고 하는 것은 ‘음악’이라는 정형화된 예술 행위로 수용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를 읊거나 짓는 행위 또한 ‘노래한다’고 하는 점에 이르면, 그의 노래는 시 창작 행위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어떻든 그는 고운 서정과 맑은 향기가 넘치는 작품을 빚고 있다. 그러한 작품이 최근에는 우리 고유의 정가(正歌)인 ‘시조’ 형식을 취하고 있는 데에서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연륜을 가늠하게 한다. 다작(多作)과 과작(寡作)을 뛰어넘어, 쉬지 않고 창작에 전념하여, 둘째 시집 『가슴에 묻은 이름』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2. 금강의 여울소리를 찾아
<그대 속삭임 들리는 곳이면/ 어디서나 발돋움하는/ 키 큰 나무가 되고 싶다.>(「금강」일부)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금강을 주제로 노래한 대표적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고향에 있는 무성산․태화산․철성산에서 흘러내린 태화천 계곡의 물은 구불구불 흘러서 유구천에 이른다. 다시 이 냇물은 산 그림자와 들녘의 바람을 데리고 금강에 이르는데, 바로 이 지점이 금강의 디디울나루 아랫녘이다. 디디울나루는 금강의 여울과 유구천의 여울이 만나서 이룬 ‘덧여울’이었는데, ‘더뎌울’ ‘데디울’ ‘디디울’로 변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굳어진 듯하다.
그는 금강의 상류에서부터 ‘곰나루’(디디울나루의 약간 상류)에 이르기까지를 맑은 서정의 원천으로 삼는다. 이어서 그의 시혼(詩魂)은 금강의 하류인 황산나루나 백제의 역사가 잠겨 있는 부여의 백마강을 거쳐 서해 바다에 이르러 결곡한 서정을 형성하기도 한다.
강 윗마을 이야기들이 모여
만들어진
초록빛 섬에
물새는 늘 구구구
꿈꾸며 산다.
숨쉬는 물살 그 가슴에
한 송이씩
봉숭아 꽃물빛 불이 켜지면
미루나무 그늘을 덮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새,
역사는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말갛게 씻겨
모래알로 가라앉고
혹은
강둑 이름 모를 풀꽃으로 피는데
강심에 뿌리 내린 바위야
나도 이 비단결에
곱게 새겨지는 이름으로 남고 싶다.
―「금강」 일부
그는 또 다른 작품 「금강」에서 <하늘의 맑은 마음 한 자락/ 내려와 손을 씻는 비단가람>이라고 노래한다. 그의 의식 속에는 세세한 추억과 삶의 양상이 금강과 맞닿아 있다. <어릴 때 잃어버린 내 따오기 소리>도 금강에서 찾아내고, 상류에 있는 무주구천동의 물소리처럼 반짝이는 여울도 찾아낸다. 또한 그는 <오래 보지 않아도/ 그 노래 그 물빛 마음에 젖어/ 눈감으면 나직이 우는 가람>과 함께 살아간다.
금강은 나직하게 울면서 아름다운 산 그림자를 싣고 내려간다. 「산수도(山水圖)」에서 그는 개나리꽃에 불을 붙이는 꾀꼬리 울음소리를 듣기도 하고, 시인 스스로 ‘버들강아지 줄기’로 서서 온갖 골물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는 낚시를 하는 노옹(老翁)에 시선을 멈춘다. 그 노옹의 낚시 끝에 걸린 ‘청청한 산그림자’를 발견하는 감각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낚시터에서」라는 작품을 통해 <빈 바구니에/ 달빛만 가득 채워도/ 세상을 늘 사랑할 수 있다.>고 노래하여 동양적 세계관, 즉 허정(虛靜)의 시심을 보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허정의 시심은 자연을 관조하는 데에서 연유한다. 직접 노래하지 않고, 제3자적 관찰자 입장을 취하기도 하는데, 비유적 감각이 눈부시다.
하얀 돛단배가
아침의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탄주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오선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득이는 가락을 줍고 있다.
밤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밭
소라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었던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이랑이 내려앉는다.
―「아침 바다」 전문
어찌 보면 단순한 것도 같고, 또 어찌 보면 난해한 것 같기도 한 이 작품은 바다의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노래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침 바다에 하얀 돛단배가 지나가고, 갈매기가 먹이 사냥을 한다. 이미 생명을 잃은 소라껍질은 모래알이 묻은 상태로 해변에 버려져 있는데, 이런 상황과는 무관하게 갈매기는 바다와 하늘을 유영한다. 이런 서경을 독자적인 시어와 문학적 감수성으로 빚어낸 절창이라 하겠다.
그는 강에 대한 사랑도 특별하지만, 이미지의 연장선상에서 바다에 대한 노래도 곡진하다. 「어촌」에서 그는 <물비늘 번득이는 바다의 자유>, 까치집처럼 열려 있는 아낙들의 빈 가슴, <돛대 끝이 휘저어 놓는 하늘>, 투시의 눈을 반짝이는 하얀 갈매기, 바다의 노래를 실러 떠나는 바다의 노래, 등의 특별한 형상화를 보인다.
또한 「후리」를 통해 <달빛 아래 퍼덕이는 절망의 바다>를 찾아내기도 하고, 「섬」에서 <투명하게 벗겨내는 달빛의 바다>를 찾아내기도 한다. 「제주해협」에서 <푸른 물살에 담긴 하늘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기도로 반짝이는 불빛>을 통해 <청청히 일어설 바다의 음악>을 찾아 <무릉도원>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이렇듯이 물의 이미지에 특별한 자질을 보이고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태화천의 맑은 물소리에 연유하는 것 같다.
3. 눈물 빛 사친가(思親歌)에 같이 울며
<상여 뒤 따르며 울 때는/ 솔방울마다 요령 소리로 울어/ 하늘이 무너지더니/ 남같이 낯설어진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아버님 무덤>(「성묘(省墓)」 일부)에 머리 숙여 눈물 흘리는 엄기창 시인은 절절한 슬픔을 예술적 서정으로 승화시킨다.
<저승은 늘 춥고 바람 불 텐데/ 제 염려 거두시>라고 말씀드리며 절을 해 보지만, 생전의 아버지 음성이 들려 오는 것만 같다. 머리 위 상현달은 바로 아버지의 눈빛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별세하신 육친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의 의식을 사물의 테두리에 머물게 하는 역할을 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온갖 사물들이 육친과 연결되고, 그 범주에서 연상의 구체화가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엄기창 시인은 격정적 슬픔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애이불비(哀而不悲)의 격조를 지킨다. 그 서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예술성을 획득하게 되고,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의 메아리를 형성한다.
아버님 목소리 땅에 묻던 날
대밭에서는
하루종일 대순이 돋았습니다.
한 줄금 내린 소나기로
목타던 대지가 젖어
취나물 향기 이내처럼 번지고
꾀꼬리 소리도 윤기 있게 반짝이며
개나리꽃 빈 가지에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초승달 질 무렵
초승달 신고
뒤돌아보며 강 건너가서
착하게 사신 생애 기름으로 태워
이승의 봄 밝히는 등이 되셨나,
철성산 풀빛 짙어오는
풀빛 속에나
버들강아지 물오르는 태화천
물소리 속에
아버님 모습을 늘 뵙니다.
―「아버님 전 상서」 전문
<꾀꼬리 소리도 윤기 있게 반짝>이는 봄날에 그는 선친께 편지를 쓴다. <초승달 질 무렵/ 초승달 신고/ 뒤돌아보며 강 건너가서> <이승의 봄 밝히는 등>이 되신 아버지를 그린다. 이 작품은 후에 시조로 거듭나기도 한다. <들국화 한 송이만/ 반색하는 무덤가에// 눈시울 적시며/ 절하고 돌아서면// 내딛는 발자국마다/ 밝혀주는 초승달>(「성묘」 전문)이라고 사친(思親)의 절절함을 노래한다. 이 시조는 앞에서 예를 든 서정시의 다양한 표현 요소 중에서 핵심 요소만 추출하여 형상화한 작품이어서 시의 흐름을 이해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가장 애절한 사친가(思親歌)는 사모10제(思母十題)를 비롯한 사모의 정이 들어 있는 작품들이다. 어머니가 별세한 때부터 열 가지 과정을 통해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 바로 ‘사모 10제’인 것이다. 이 작품 외에도 어머니에 대한 작품들을 통해 눈물 어린 사모곡(思母曲)을 확인할 수 있다. 「정안수」에서 <찢어진 문틈으로 보던 어머님의 합장한 손> <살포시 지은 미소에 성스러운 그 눈빛> <정안수 대접에 담긴 어머님의 큰사랑> 등은 어머니의 특별한 사랑을 담아낸다.
둘째 시집의 제목이기도 한 「가슴에 묻은 이름」에서 그는 <한낮의 햇살 속에서도 꺼지지 않으려고/ 날개 파닥이는 등불을 보며/ 어머니의 생애를 접어/ 가슴에 묻는>다고 노래한다. 현실적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게 되면 산에 묻지만, 사실은 그 슬픔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듯이, 엄기창 시인 역시 선자(先慈)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
어머님 이름이 지워지자
고향 빛깔은
막막한 어둠으로 변했습니다.
―「임종(臨終)」(思母十題 1) 일부
오르막길 오를 때마다 상여는 멈춰 서고
상주들은 너도나도 돈을 거는데
어머님은 빈 손 맨발로 떠나
저승의 어느 주막에서 울고 있을까.
―「운상(運喪)」(思母十題 2) 일부
사잣밥상 아래
백목련 꽃 두어 이파리
어머님이 벗어 던진 이승의 신발
―「고무신」(思母十題 3) 일부
자식 둘 앞서 보낸 눈물의 생애를 묻고
맨발로 헤쳐 온 아픈 역사를 묻고
어머니의 향기를 묻는다.
―「하관(下官)」(思母十題 4) 일부
생전에 못 사드린 과일로
제사상을 채우며
이제는 장식에 지나지 않음에 가슴 아파합니다.
―「사십구재(四十九齋)」(思母十題 5) 일부
부모를 여읜 자녀라면 누구나 체험했을 가슴 아픈 노래이면서, 엄기창 시인의 진실 어린 고백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러한 애절함을 느꼈을 터이지만, 그 애통함을 그냥 가슴에 묻어둔 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노래한 이 작품들은 애상적 정서의 공감대 형성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픈 노래를 계속한다. <어머님 아린 가슴에/ 뽑혀지지 않는 대못>(돌무덤), <산천에 봄이 왔지만/ 내 가슴은 겨울입니다>(기다림), <어둠을 환히 태우고도 남을/ 시퍼렇게 날 선 눈물을 보았습니다.>(눈물), <살아생전 마음 한 번/ 편하게 못해 드린/ 내 마음의 빛깔은/ 잿빛 후회입니다>(어머니), <어머님 눈동자에 맑게 고인 하늘로/ 하얀 구름 되어 떠나셨지만/ 내 가슴에 새겨진 흑백사진 속에서/ 어머님의 나이는/ 언제나 서른입니다>(흑백사진) 등 그의 사모곡은 그칠 줄을 모른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는 자연스럽게 아내가 채운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생일을 맞아 사랑이 가득 담긴 축시(祝詩)를 빚는다. <생활의 아픈 멍울 가슴으로 싸 안으며/ 얼굴엔 항시 햇살 같은 웃음으로 어둠을 밝혀/ 바라보면 고향같이 편안한/ 당신 앞에 서면/ 나는 일곱 살 철부지>가 된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아내로부터 모성을 찾아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마음속에 묻어 둔 사랑의 촛불>을 밝혀 아내에게 씌워진 <생활의 짐>을 벗기고자 한다.
이렇듯이 그는 사랑 안에서 행복한 꿈을 꾸는 어린 소년과 같다. 지천명(知天命)의 연치(年齒)에도 불구하고, 어린 소년과 같은 순수를 간직하고 있다.
4. 생명의 원천을 지키기 위해서
<강물은 그저/ 헐떡이고만 있었다.// 키 큰 미루나무 가지 사이/ 거미줄 속엔/ 강물의 핏빛 울음만 걸려 있었다//…// 검게 썩은 물빛 문둥이처럼/ 강의 신음소리>(「강변 야영」일부)가 밤새 시인의 꿈 밭으로 흘러든다고 노래하는 엄기창 시인은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작품으로 환기시킨다.
오염된 강에서 시인은 환경 파괴의 무서움을 토로한다. 「갑천 붕어」는 아파트 그림자를 산 그림자로 알고 올라온다. 그러나 상류로 오를수록 <검은 폐수만 흘러내려/ 앞길은 깜깜하게 막혀> 있다. 그래서 <붕어의 눈물 속에서/ 납물>이 흐를 정도로 오염된 상황을 만난다. <등뼈 굽은 새끼를 안 낳으려고/ 붕어는 자갈밭으로 뛰어오르고 있었다>고 노래한 부분에서 그의 생명에 대한 외경(畏敬)을 엿보게 된다.
강물만 오염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소나무」에서도 <찢어진 살갗에서/ 중금속 피가 흘렀다>고 고발한다. 그런 소나무를 보면서 <아무리 손을 뻗어도/ 멀어지는 산의 마음>을 찾아내며 시인은 절망한다. 특히 일급 자연으로 유명한 지역, 수려한 산촌의 대명사로 알려진 ‘청양’마저 오염되었다는 데에 이르면 삶의 위태로움을 예견하게 한다.
열려진 차창 틈으로
섬광처럼
개구리 울음 하나 지나갔다.
별똥별처럼
타버리고 다시는 반짝이지 않았다.
칠갑산 큰 어둠은
돌 틈마다 풀꽃으로
개구리 울음을 품고 있지만
기침 소리 하나에도 화들짝 놀라
가슴을 닫았다.
차창을 더 크게 열어봤지만
청양을 다 지나도록 청양 개구리
꼭꼭 숨어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았다.
―「청양 개구리」 전문
환경 오염에 의한 개구리의 감소를 밝히는 것인지, 혹은 무차별 개구리를 포획하여 보신하는 세태를 고발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기다리는 사람의 부재를 비유적으로 형상화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의 중심 제재는 <머리카락 하나 내비치지 않>는 <청양 개구리>라 할 때, 자연 파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고발하는 노래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실망은 인간 삶의 양식으로 전이된다. 우리 나라 도시의 표상인 서울에 대해 시인은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서울의 천둥」에서 그는 <서울의 하늘 위엔/ 늘 천둥이 운다>고 진술한다. <천둥이/ 누구의 머리 위에서/ 우르릉우르릉 울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으리라 확신하며, 현대 도시인들에게 부정적 시각을 표출한다. 서울 사람들은 <번갯불에 타면 재가 될 靑紅의 꿈>들을 만들고 있지만, 그의 시심은 절망적 색채에 싸인다. 이러한 절망은 꼭 ‘서울’이라는 특수 지명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이 넘치는 ‘도시’의 일반화로 확대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절망을 스스로 극복하여 거듭나고자 한다. 극복의 매체로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을 주문한다.
꽃도
꽃의 마음으로 보아야 아름답다.
황홀한 몸짓의 장막 뒤엔
말라 시들은 노래도 있겠지
꽃잎을 먹고사는 어둠의 벌레들이
고랑처럼 파 놓은
상처들도 있겠지.
날 선 눈으로 바라보면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다운 눈으로 보아야
세상은 아름답다.
―「세상 보기」 전문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것이 모든 사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성싶다. 아름다운 사물을 아름답게 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더럽고 부정적인 사물까지 아름답게 노래한다면, 그것은 진실의 은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인이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둔 현실에서도 아름다운 시심을 가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으로 보인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우는 것 같다. 「빈 접시」에서 그는 <내가 꽂아 주는 억새꽃으로/ 오늘밤 네 고향 산에/ 칠색 영롱한 무지개를 걸>라고 청하기도 한다. 「달맞이꽃」에서는 자녀들에게 <올해는 헐벗은 가슴에/ 전설 같은/ 이 애비의 어릴 적 보름달을 안>으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세상을 지탱하는 벼릿줄이고, 순수를 지킬 수 있는 대안(代案)임을 노래하여 맑은 시심을 견지하고 있다.
5. 연화교에서 부는 바람처럼
<잠 못 드는 노승의/ 천수경에 달은 지고// 불심은 태화천에 녹아/ 사바세계로 흐른다>(「마곡사」 일부)고 노래한 엄기창 시인은 어릴 때부터 불교적 환경에서 자란다. 그런 연유로 그의 작품에는 불교적 시심이 짙게 깔려 있다. ‘마곡사’는 그의 고향 마을에 있는 천년 고찰(古刹)로 조계종의 본사 중의 하나인데, 고승(高僧) 대덕(大德)이 여러 분 배출되어 유명한 절이다.
큰 절이 대부분 그렇듯이 마곡사에도 연화교와 오층석탑이 있다. 그래서 시인은 <연화교 건너서면/ 솔바람 풍경소리// 향내 서린 잎새마다/ 불경 소리 담겨 있고// 법계를 지키고 서서/ 침묵하는 오층석탑>을 노래한다. 불심이 태화천에 녹아 흐른다거나, 나무 잎새마다 불경 소리가 담겨 있다는 관점은 바로 온갖 사물에 불심(佛心)이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해당한다. 또한 사물과 불성(佛性)을 하나로 보는 것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다름 아니다.
시냇물은 서 있는데
다리에 선 나는 흘러간다.
공즉시색 색즉시공
목탁소리 눈을 뜨면
안개 낀 다리를 건너
손짓하는 사바의 마을
―「연화교에서」 전문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1연(시조의 초장)이라 하겠다. <시냇물은 서 있는데/ 다리에 선 나는 흘러간다>는 시각은 대상과 본질의 역설적 진술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시냇물이 흘러가고, 나는 다리에 서 있는데, 다리에 서서 바라보면 그와 달리 착시(錯視) 현상에 빠지게 된다. 시인은 이런 현상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밝힌다. 즉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는 선어(禪語)를 통해 사물의 이치를 궁구(窮究)한다.
이런 시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매일 아침 되씹는 절망을 접으며/ 오늘도 나는 웃는 연습>(비온 날 아침)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다. 또한 <더운 피 온 몸을 태워/ 어둔 세상 밝>(해돋이)히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에 이른다.
향일암 석등(石燈) 안
찰람찰람 고인 고요를
새벽달이 갸웃이 훔쳐보고 있다.
파도 소리에 씻겨진
동백꽃 봉오리마다
세상 밝히는 꽃불을 켜면
먼 수평선 일어서는 눈부신 평화(平和)
관음상 입가에 살포시
미소로 번진다.
―「향일암 일출」 전문
이 작품을 읽으며, 엄기창 시인은 눈부신 평화를 위하여, 늘 관음상 입가에 번지는 미소처럼 맑은 마음을 지향할 것 같다. 그리하여 어둔 세상에서 밝은 빛으로 자리할 것 같다. 이제까지 고운 서정과 맑은 향기가 넘치는 작품을 창작하였듯이,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본다. 이런 기대와 믿음으로 그의 작품 기행(紀行)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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