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

억새

 

 

억새는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지를 안다.

외딴 산기슭 홀로 서 있을 때는

진한 울음이던 것이

서로의 등을 지켜주며 

모여서 아픈 살 비벼주니

얼마나 흥겨운 노랫소리냐.

깜깜한 밤에도 억새는 콧노래 흥얼거린다.

바람이 없어도 삶을 춤추게 하는 것

그것이 서로의 눈빛임을 안다.


시문학20183월호

 

 

 

 

posted by 청라

엄마의 마음

수필/서정 수필 2017. 11. 18. 14:35

엄마의 마음

 

 

  추석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가려고 밖으로 나왔다. 아들이 정자 앞 언덕에 앉아있었다. 나를 보더니 죽는 얼굴을 한다.

  “아빠, 성묘 못 가겠어요. 회사 일이 바빠 어젯밤 늦게까지 일했더니 너무 피곤해요.”

  나는 소리를 버럭 지르려다가 겨우 참았다. 자식이 설 때도 방안에 누워 잠들어 버려가지곤 은근슬쩍 성묘를 빠지더니 이젠 아주 버릇이 붙어버렸다. 하긴 성묘 길이 험하긴 험했다. 아버님은 무슨 심술로 선산 맨 꼭대기가 꼭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명절 때마다 낙엽 쌓인 비탈길을 오르느라고 아들, 손자들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야단법석을 떨게 만드셨을까. 평소에도 산에 같이 가자면 기겁을 하는 큰아들에게 좀 부담이 되기는 될 거였다. 나는 못마땅한 모습을 들킬까봐 고개를 돌렸다.

  성묘 갈 사람들이 모두 봉고차에 탔는데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 어느 방을 차지하고 누워있을 터였다. 저보다 더 어른들도 모두 나오고 아이들도 빠지지 않고 나왔는데 아들 혼자만 자릴 비우니 애비로서 동생, 조카, 손자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나이 사십이 가까워오는데 철이 들어 주위를 두루 살피면 얼마나 좋을까. 과한 욕심인 걸 알면서도 마음 한 편이 좀 씁쓸했다.

  봉고차를 타고 화전 산소 성묘를 마치고, 선산 산소를 두루 돌아 내려오는데 손자가 쪼르르 쫓아왔다. 저러다가 넘어질까 봐 겁이 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아빠하고 막 싸웠어요.”

  “?”

  “할머니가 아빠 성묘 안 갔다고 막 혼냈어요. 아빠도 막 대들었어요.”

  기어이 터질 것이 터진 모양이었다. 아내와 아들은 둘 다 불이었다. 더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조그마한 불만에도 쉽게 활활 타올랐다. 아내는 조상들의 음덕을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자기 사업이 잘 되는 것이 모두 조상들의 덕이라고 생각하며 그 고마운 마음을 시집 식구들에게 잘 하는 것으로 갚으려고 하는 착한 사람이었다. 요즈음 아들 사업이 잘 안 된다고 하니 성묘 가서 조상들에게 좀 간절하게 빌어보지 하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주위도 안 돌아보고 막 퍼부었을 것이었다.

  “사람 참 조금만 참지

  나는 마음속으로 아쉽게 생각했으나 아내 성격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면서 맞불을 놓아버린 아들도 원망스러웠다. 평소에도 은근히 엄마를 못마땅해 하더니 드디어 한 건 터뜨려버렸군.

  거실로 들어가니 집안에 있던 여자들이 모두 내 눈치를 본다. 나도 소리를 지를까봐 모두 겁내는 눈치였다. 뚱하니 앉아있는 아내의 등을 한번 두드려주고 아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누워있다 일어나 앉는 아들을 보고

  “아들, 좀 참지

  아들은 아무 말도 않고 눈물만 흘렸다.

  “네 아들딸이 오늘 아빠 보고 무얼 배웠겠어. 자식들 교육은 말보다 행동으로 하는 거야.”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 요즘 사업도 안 되어 속상해 죽겠는데 엄마가 여러 사람 있는데서 막 욕했단   말이에요. 나 이제 창피해서 큰집 어떻게 와.”

  아들은 얼굴을 감싸고 뛰어나갔다. 둘 사이에서 어찌해야 할지 참 막막했다. 가장이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자리다. 불화가 있을 때 누구의 편도 들 수 없이 양쪽을 쫓아다니며 잠잠하게 가라앉혀야 하니 말이다.

  점심 먹고 시골에 계신 장모님께 모두 들르기로 했는데 이 분위기로는 아무래도 그른 것 같았다. 나는 살며시 아들에게 다가가 제 가족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먼저 가서 마음을 가라앉히라 일렀다. 처가로 가는 차 안에서 아내는 이제 아들로 생각도 않겠다느니, 절대 말도 안 하겠다느니 쉴 새 없이 쫑알거렸다.

  며칠 지난 아침이었다. 일어나 거실로 나가니 거실 분위기가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문간에 있던 아들내외의 결혼사진 액자가 거실 맨 안쪽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여보, 이거 왜 이리 들여놨어?”

  “사진이 문간에 있으면 아주 재수가 없다네요. 성용이 그래서 사업 안 되는지 몰 라.”

  아들로 생각도 안하겠다고 몇 번이나 소리 지르더니 사진이 문간에 있으면 재수 없다고 들여놓는다. 그래 저것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자주 부딪치면서도 늘 걱정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저것이 바로 엄마의 마음이다.

  어이없어 허허 웃으면서도 나는 아내의 손을 꼬옥 쥐어주었다.   


2017. 11. 17

posted by 청라

사람의 향기

          - 아름답게 살다 간 김영우 시인을 추모하며

 

            

꽃처럼 산 사람

지고 나서도 꽃

 

세상을 맑게 씻어주는

사람의 향기여

 



문학사랑126(2018년 겨울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