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雨水 일기

우수雨水 일기

 

 

첫울음

연초록이 파르르 떨고 있다.

겨우내 웅크린 가지

속살에 배어있던

종달새

아껴둔 노래

분수처럼 솟고 있다.

 

 

2018. 2. 21

 

 


posted by 청라

맹지盲地

맹지盲地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람을 하나씩 끊는 일이다.

 

사방으로 열려있던

사람들 속에서

조금씩 문을 닫아거는 일이다.

 

어느 날 새벽 바람결에

나는 문득

내 목소리가 혼자라는 걸 느낀다.

 

무한히 열려있던 세상 속에서

한 군데씩 삐치고 토라지다가

물에 갇힌 섬처럼 내 안에 갇히고 말았다.


아, 타 지번地番의 군중들로 둘러싸여서

나는 그만 맹지盲地가 되고 말았네. 

겨울 들 말뚝처럼 

적막에 먹히고 말았네.

 

 

2018. 2. 10

대전문학80(2018년 여름호)

시문학20193월호

posted by 청라

해우소解憂所에서

 

 

들어갈 땐 고해苦海에 찌든

얼굴을 했다가도

해탈한 듯

부처님 얼굴을 하고 나온다.

 

채우는 일보다 비우는 일이

얼마나 더 눈부신 일이냐.

 

염불 소리도 하루 몇 번 씩은

해우소解憂所에 와서

살을 뺀다.

 

배낭에 메고 온

속세의 짐을 모두 버리고

한 줄기 바람으로 돌아가 볼까.

 

냄새 나는 삶의 찌꺼기들 모두 빠져나간

마음의 뜰에

산의 마음이 새소리로 들어와

잎으로 돋아난다.

 

 

2018. 2. 6

문학사랑131(2020년 봄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