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연서

매화 연서

 

 

눈꽃 위에 달빛 차서 마음이 시린 새벽

매화 분에 일점홍一點紅이 심등心燈에 불을 밝혀

맑은 향 한 방울 찍어 붉은 연서 보낸다.

 

내 마음 보낸 사연 서랍 가득 쌓였을까

꿈에 간 내 발길에 님의 문턱 닳았으리.

잠결에 매화 향 풍기면 내가 온 줄 아소서.

 

 

2018. 1. 29

posted by 청라

백제 금동대향로

 

 

향불은 꺼져있다.

봉황 앞가슴과 악사 상 앞뒤

백제로 통하는 다섯 개의 구멍은 막혀있고,

활짝 피어난 연꽃 봉오리 표면에는

불사조와 사슴, 그리고 학

낯선 전등불 아래 쭈볏거리고 서있다.

용과 봉황이 음양으로 갈라서서

연꽃을 피워내어 봉래산을 받쳐 들고

스물 세 개의 중첩된 산골짜기로

계곡물처럼 속삭이며 흐르던

피리, 소비파, 현금, 북소리 멈춰있다.

역사는 스쳐가는 한 줄기 바람일 뿐이런가.

한 번 흘러가면 되돌아올 줄 모르지만

향로에 향불 피어오르면

봉황이 여의주를 품고 하늘로 날아오르듯

찬란한 백제가 다시 열릴 것만 같다.

 

 

2018. 1. 27

 

posted by 청라

기다림의 장미

수필/서정 수필 2018. 1. 21. 12:23

기다림의 장미

 

 

  만허재滿虛齋 울타리에 빨간 장미 한 송이가 피어있다. 아직 4월도 중순을 조금 넘겼는데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리 서둘러 피었을까? 무엇을 기다리느라 목을 길게 빼고 하염없이 집으로 올라오는 고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처연한 모습이 집 나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과 같다. 나는 장미의 외로운 그림자가 동편으로 길게 늘어질 때까지 꼼짝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만허재滿虛齋는 엄기환 화백의 화실이었다. 엄 화백은 먼 친척 아우였는데 무성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폭포를 이루는 회학리 골짜기에 집을 짓고 거기서 그림을 그렸다. 폭포 위에 나무를 엮어 수간교를 걸치고, 폭포 옆에 황토방을 만들어 정취 그윽한 세상을 꾸며놓았다. 어느 가을날 초대를 받아 그 황토방에서 하루를 유숙留宿한 일이 있는데, 밤새도록 폭포소리가 창문을 두드려 나는 산의 일부가 된 것이나 아닌지 의심이 들게 하였다. 새벽에 이름 모를 새소리가 나를 불러 방문을 열고 수간교에 오르니 마침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계곡은 신비로운 자태를 더욱 빛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시 한 수가 튀어나왔다.

 

  옷깃에 묻어 온 속세의/ 근심 몇 올이/ 아침 햇살에 안개처럼 풀리고 / 힘들여 벗지 않아도/ 때처럼 벗겨진 욕심慾心 말갛게 씻겨/ 풀꽃으로 피어나는 만허재滿虛齋에서 보면/ 저기 보이지 않는/ 허공虛空/ 무슨 울타리라도 있는 것일까! / 마을에서 산 따라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모든 소리들이 걸러지고 닦여져서/ 딴 세상 같은 고요……. // 수간교秀澗橋를 건너다/ 문득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무성산은/ 산의 커다란 마음을 조금씩 녹여/ 만허폭滿虛瀑으로 흘려보내서// 천둥 같은 소리로 노래할 때나/ 가는 한숨으로 잦아들 때나/ 인생의/ 차고 비움도 만허재滿虛齋에 서면/ 폭포 소리에 녹아/ 물안개로 떠돌아라.

 

  정말 여명 무렵 수간교에 서서 잠에서 깨어나는 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인생의 차고 비움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에서 산 따라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마치 보이지 않는 허공에 속세와 갈라놓는 울타리라도 있는 듯 욕심마저 말갛게 씻겨 풀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멀리 떠오르는 해를 이고 있는 무성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일찍 일어난 아우가 인사를 건네온다.

  “형님, 한숨도 못 주무신 모양이네요.”

  그렇다. 나는 정말로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잔 것 같다. 폭포가 부르고, 새소리가 부르고, 풀꽃들이 속삭이는데 어찌 코를 골며 단잠에 빠져들 수 있겠는가.

 

  아우의 그림 중 나는 특히 설경雪景을 그린 그림을 좋아했다. 아우는 기암절벽에 신선이 노니는 관념 산수보다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경산수眞景山水를 주로 그렸는데, 그의 설경에서만큼은 관념산수觀念山水의 신비한 멋이 담겨 있었다. 그가 그린 설경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아이의 말간 동심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랬다. 그의 성품 또한 동심처럼 맑고 깨끗했다. 그랬기에 그의 그림 중 설경을 그린 것이 더욱 빛났던 것이 아닐까.

  내가 고향에 가서 아우에게 귀향보고를 하면 아우는 만사제폐하고 달려왔다. 우리는 마곡사에 가서 산채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친구들도 모두 떠난 고향에서 전화만 하면 달려와주는 아우가 바로 내게는 고향이었다. 우리나라의 화단 현실이 각박해서 아우도 젊은 시절엔 고생을 아주 많이 했었는데, 나이 들면서 그림이 알려지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고 해서 형편이 좀 낳아진 편이 되었다.

  한 번은 공주에서 전시회를 가진 일이 있었는데, 부시장, 판사, 검사를 비롯한 공주의 모든 유지들이 참석해서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고 놀란 일이 있었다. 소탈하고 사교성 있는 성품이 큰 역할을 했겠지마는 그것보다는 그의 실력이 점차 인정받는 증표라 생각되어 아우의 앞날을 기대하게 되었다. 정말 청천벽력 같은 그 일만 없었더라면 아우는 틀림없이 한국 화단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가을이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하루의 할 일을 구상하고 있는데 고향 조카로부터 전화가 왔다.

  “작은아버님 놀라지 마세요. 기환이 아저씨 돌아가셨다네요.”

  나는 너무 놀라 휴대폰을 툭 떨어뜨렸다.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휴대폰을 들어

  “? , ? 엊그제 점심 같이 먹었는데 별 일 없던데

  사흘 전쯤 제자들 전시회를 시청 갤러리에서 한다기에 y시인과 같이 참석해서 축하해주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어디 아픈 데가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제자들하고 괴산으로 스케치 갔다가 술 취한 채 자기 방으로 갔는데 다음날 낭떠 러지 아래서 발견됐다네요. 죽은 채로

  그제야 완전한 그림이 그려졌다. 제자들 전시회를 마치고 축하 겸 경치 좋은 곳으로 스케치를 갔을 것이다. 저녁에 얼큰하게 술들을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갔을 것이다. 술이 과한 아우는 바람을 쐰다고 밖으로 나갔을 게다. 아우의 방 창문 뒤가 낭떠러지고 그 창문이 부서져 있었단다. 다음날 아침 계곡물에 반쯤 잠긴 채 사망해 있었단다. 나는 아우의 장례식장에 찾아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놈의 술이 아까운 화가의 죽음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그림을 그리다 말고 어디로 갔는가. 아우의 다정한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영정 위의 사진만 빙그레 웃고 있었다.

 

  지난 가을 아우가 산으로 간 뒤 만허재滿虛齋 는 빈집이 되었다. 혼자 사는 장미는 궁금했을 것이다. 그 할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왜 집에 돌아오지 않는지. 겨우내 추위 속에서 빈집을 지키던 덩굴장미 한 가지는 4월이 되자 서둘러 울타리 위로 기어올라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리곤 하염없이 목을 길게 빼고 고샅을 바라보고 있다. 바람만 살짝 불어 지푸라기만 날라도 엄 화백 발자국이 아닐까 움찔움찔 놀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점차 비어가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농촌의 슬픈 현실이 아닐까.

 

  못 견디게 그리운 것인가

  서둘러 담 위로 기어 올라와

  고갤 길게 내밀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저 불타는 갈망

  빈 골목길 회오리바람에

  검불만 날려도

  온몸 떨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

  지난겨울 혼자 살던 할아버지

  산으로 가고

  대문 굳게 닫힌 울안

  빈 집 속의 적막으로 봉오리 부풀려

  한 등 눈물로 켜든 저 짙붉은 외로움.

 

 

2018. 1. 21

충청예술문화20185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