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행복

 

 

저녁때 집에 돌아오면

집안에 환하게 불이 켜져 있고

아내의 싱싱한 웃음이 맞아주니

행복하다.

저녁을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아내의 하루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만이지.

삼십 년도 더 뒤에 등단한 친구에게

수상 대상자에서 밀렸으면 어떤가.

반백년을 시를 썼어도

애송시 한 편 못 남기면 어떤가.

며칠 만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서

잘 있다는 전화가 오고

카카오톡에는 손자 손녀들의 예쁜 사진이 쌓여가고 있다.

받아쓰기 이십 점을 받아오면 어떤가.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가

시들지 않으면 그만이지.

우리들은 가끔 행복에 취해

평범한 행복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엊그제 낸 시집이 팔리지 않아도

행복하다.

산나리꽃처럼 주위를 밝히는

촛불로 살아가면 족한 일이지

불행을 깎아 시를 빚어서

심금을 울리는 시로 빛나고 싶지는 않다.

 

2015. 7. 25

posted by 청라

유골함 이야기

유골함 이야기

 

유골함에 유골이

담기기 전엔

한없이 자유로운 빈 그릇이었지.

맑은 하늘과 소통하며

뻐꾸기 울면 뻐꾸기 노래 채우고

바람이 불면

찰람찰람 바람을 채웠지.

외로움이 없으니

비워낼 일도 없었지.

무언가로 채워야 할

사랑을 알 나이쯤

낯선 사람의 인생을 태운

이름이 가득 들어차면서

이제는 마음대로 비울 수도 없는

하늘 향해 꼭꼭 봉해진 유골함이 되었지.

 

2016. 7. 18

시문학201610월호

 

posted by 청라

어느 시인의 죽음

어느 시인의 죽음



시인을 묻고 돌아왔네.

주인 잃은 시들만

떠다니고 있었네.

그가 있어서 반짝이던 세상은

한 이름이 지워져도

빛나고 있었네.

아내도 자식들도

사랑하는 사람들도

허물을 지우듯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곤한 잠에 취하겠지.

친구들도 가끔 술안주처럼 씹다가

언젠가는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그가 키운 시들은

몇 그루나 살아남을까

시인이 비운 빈 자리에

꽃은 피고

아이 울음소리 울린다.

 

2016. 7. 18

시문학201610월호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