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나라

시/제3시집-춤바위 2007.03.14 22:45

풀의 나라

淸羅 嚴基昌
풀이 일어나서
메마른 땅을 푸르게 덮는다.

뿌리끼리 서로 손을 맞잡아
땅 속의 모든 자양분을
빨아올리고

덩굴의 촉수를 감아 올려
나무도
꽃도
목을 조른다.

풀만 남은 풀의 나라엔
하늘 향한 발돋움이 없다.

풀잎끼리 팔 벌려
옆으로만 힘을 겨루며
한 뼘 더 뻗으려는
아우성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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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再會)의 밤에

淸羅 嚴基昌
보리암 앞 바다는
나를 보고
온 몸을 꿈틀거렸다.

수줍은 노을이
바다의 볼에
연지를 찍었다.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우르르 우르르
함성으로 달려들었다.

밤꽃 냄새가
온 바다를 덮었다.

초승달로 몸을 담그고
경련하는 바다의 몸속에 한 가닥씩
월광을 토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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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마을에서

淸羅 嚴基昌
도심(都心)에서 날 선 사람들도
연꽃 마을에 와선 눈빛이 지순해 진다.

아침 해 떠오를 무렵
연꽃이 피면
연꽃 향기 찻잔에 담아 마시고

뻐꾸기 울음 너머 속 숨결에 번져오는
대청호 물비늘
연꽃 그림자

반갑게 내미는 손길에
봄볕 같은 정이 담겨 있어서
미소가 향기로운 연꽃마을 사람들은

연 옆에 서 있으면
그냥 연꽃이 된다.

대청호에서 건너오는 바람들도
연꽃 마을에 와서
연향(蓮香)에 몸을 씻는다.

나도 마음 닦으러 대청호로 가다
이 마을에 들러
도심(都心)에 찌든 얼룩 지우고 돌아온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