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빛 천사

시/제3시집-춤바위 2012. 5. 6. 08:54

핑크빛 천사

-충남대학교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를 예찬하며

 

엄 기 창

 

 

끝없이 타오르는 그대들의 기도가

밤새워 지키고 있는 모니터에는

깜박거리는 생명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출렁거리던 선들이

일직선으로 무너질 때에

그대들 가슴으로 모여들던

그 긴 겨울밤의 어둠,

하얀 국화꽃을 내려놓던

아픔의 역사도 함께 매달려 있다.

생명의 불꽃 하나를 가꾸기 위해

모두 잠든 새벽에 별처럼 깨어나서

가래를 닦는다.

그르렁거리는 목 너머에서

연약한 생명은 자꾸 꺼지려 하고

지탱하던 팔뚝에서는 힘이 빠지는데,

밤늦게 수술을 마치고 들어온

한 노인의 끝없는 욕설에도

그대들의 얼굴에 환하게 피어있는

연꽃 같은 미소여!

온 세상 가장 밝은 빛만을 모아 밝혀놓은

꺼지지 않는 생명의 등불이여!

난파難破한 목숨들이 널려있는

황량한 중환자실

외로운 망루를 지키고 있는, 그대들은

핑크빛 천사!

 

201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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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일기穀雨日記

시조 2012. 4. 22. 09:32

곡우 일기穀雨日記

 

마른 논에 내리는 비

흙냄새가 일어난다.

못자리 파종하고

건너오는 실개천에

초록빛 종다리 울음

                        뾰롱

                뾰롱

        뾰롱

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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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盲人의 그림 보기

시/제3시집-춤바위 2012. 4. 10. 14:57

맹인盲人의 그림 보기

 

 

햇살 가득한 날도

가슴에 늘

장맛비를 안고 사는 사람

 

개나리꽃

피거나 말거나

맹인盲人 지팡이 짚고 미술 전시회 가네.

 

산수도山水圖 앞에 삐딱하게 서서

고개를 끄덕이면

순간, 실내는 뒤집어지네.

 

하나를 보면

하나밖에 모르는 놈들

맹인은 산수도에서 우주를 보네.

 

앞을 못 보아서

더 큰 세상을 보네.

 

2012. 4. 10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