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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천 년의 미소微笑
불이문不二門 들어서니
사바는 꿈 밖에 멀고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磨崖佛
햇살 같은 미소,
암심巖心으로 질긴 뿌리를 내려
천 년을 깎아내도 웃음은 못 지우고
어깨 팔 떨어진 조각만
세월 흔적 그렸다.
그 웃음 퍼내다가
마음에 새겨 두고
잘 적 깰 적 떠올리며 웃는 연습을 한다.
오늘도 아픔이 넘쳐나는 거리에
천 년을 지워지지 않는 마애불磨崖佛, 그 미소를
등불처럼 환하게 걸어놓고 싶다.
2014. 2. 26
글
누님의 수틀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을
다락방 구석에서
오십 년 지나 찾아냈는데
누님이 수놓았던 꿈밭 머리에
내 꿈도 얼룩처럼 피어있었다.
봄나물 향기 캐던 골짜기에는
첫사랑의 산수유꽃 벌고 있었고,
모깃불 향기 안개처럼 흐르던 밤
지천으로 반짝이던 개구리 울음은
별이 되려 반딧불로 솟아올랐다.
누님이 수놓았던 십자수 속에
회재 고개 너머로만 한없이 뻗어가던
그리움의 바람도 불고 있었고,
끼니를 걱정하던 어머니의 눈망울과
몇 방울의 내 눈물 쑥대풀로 키워주던
구성진 소쩍새 울음 깨어나고 있었다.
누님이 두고 간 빈 수틀엔
비어서 더 가득한 내 어린날이
색실보다 더 고운 내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며 살아나고 있었다.
2014. 1. 24
글
첫사랑
첫사랑은 늘
누런 코 훌쩍이던 일곱 살
코찔찔이 시절에 온다.
삘기를 뽑아도
찔레를 꺾어도
엄마 얼굴보다 먼저 아른거리던
마을 누나의 얼굴은
매운 세월의 바람 속에
덧없이 시들었다가
인생이 저무는 예순 살 무렵
어느 깊은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슬픈 전설을 만나면
아픈 옹이처럼 심박혀
움츠러들었던 그 어린 날 진달래꽃은
불길처럼 피어나
온 산을 물들이라 한다.
모든 것을 빨아먹는
늪인 줄 알면서도
온몸을 던져서 투신하라 한다.
2014. 1. 30
<대전문학> 2014년 봄호(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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