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도에 내리는 별빛

초도에 내리는 별빛

 

 

꽃들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서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대충대충 피어도 꽃은 꽃인가.

다 떠나고 남은 집 혼자 지키는

앵두나무 야윈 가지에 봄이 환하다.

육지가 있는 수평선 쪽으로는

보이지 않는 붉은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칠이 벗겨진 지붕과 빈 마당 가

우두커니 서있는 돌 절구통 적막 위에

가끔 염소들 서로 부르는 소리만 반짝일 뿐.

십자가가 내려진 교회 터에 떠도는

찬송가와

무너지다 만 벽마다 지워져가는

아이들의 낙서도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소멸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인간의 발자국 위로 별이 내린다.

초도에 내리는 별빛은 갓 씻어낸 호롱불 같다.

앵두꽃에 별빛이 내려 별이 꽃인지

꽃이 별인지 알 수 없는 밤

낚시로 잡은 붉바리 회에 술 한 잔 걸치고 보니

원래 혼자였던 섬의 옷깃 한 자락

내가 지팡이 삼아 잡고 있구나.

 

 

posted by 청라

아침 바다

아침 바다

  

 

하얀 돛단배가

아침의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파도에 몸을 던지고

잊었던 리듬을 생각하는 갈매기.

쾌적한 바람이 햇살 층층을 탄주한다.

미역 숲에서 멸치 떼들이

오선의 층계를 올라간다.

갈매기 노란 부리가

번득이는 가락을 줍고 있다.

 

밤 내 뒤척이던

허전한 어둠의 꿈 밭

소라껍질이 휘파람 불며

모래알 손뼉을 쳐 뿌리고 있다.

얼비친 하늘의 푸른 물살을 타는

갈매기 눈알에

잊었던 리듬이 내려앉는다.

하늘 속의 빛 이랑이 내려앉는다.

posted by 청라

수평선을 보며

수평선을 보며

 

 

길은 어디에나 있다.

소년의 발걸음은 바람처럼 자유롭게

고삐를 틀지 말아라.

사람들은 하늘과 손 한 번 잡아보려고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지만

나는 물처럼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만 내려왔다.

유년의 계곡에서 새소리가 붙잡고

강둑의 풀꽃들이 쉬었다 가라고

수천의 손을 내밀었지만

오직 한 길로만 달려온 내 삶의 지향志向.

더 이상 낮아질 곳 없는

인생의 바다에서

하늘과 진하게 입맞춤하고 있구나.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