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며

 

 

어제는 세비야에서

플라멩코의 불꽃같은 춤사위를 보고

오늘은 태극기 휘날리며

지브롤터 해협을 지난다.

스페인 함대들이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

나팔 불며 기세등등하게 지났을 이 해협을

우리 손으로 만든 배를 타고

허리 산맥처럼 펴고 지나간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북소리

우리는 이제

세계 어디에 굽히지 않아도 될 해양 강국

레반테 심술궂게 치고 지나가도

배 몇 대에 쩔쩔매는 약소국가가 아니다.

지브롤터의 바위산들이 험상궂게

근육을 드러내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펴고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도

저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서는

두려운 게 없다.

posted by 청라

몬순을 만나다

몬순을 만나다

 

 

아라비아해로 들어서자 몬순이 마중 나왔다.

배는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고

선속船速은 떨어져 4, 5 노트

갈 길은 까마득한데

 

인도양 몬순에는 도망갈 곳이 없다

몬순의 어금니가 배의 옆구리를

상어처럼 물어뜯어도

수마트라 섬을 지나면 아덴만까지 삼천 마일

바람을 막아줄 섬 하나 없다.

 

화물들은 좌우로 요동치며 비명을 지르고

어제 먹은 라면마저 모두 토해내는데

지옥이다.

이 황천항해는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바람과 배의 방향이 수직에서 벗어나게

항로를 틀어보지만

헤비 웨더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 왔다. 다 왔다

선장은 주문呪文처럼 같은 말로 독려하지만

나는 무슨 영화榮華를 보려고

배를 타고 이 폭풍 속을 헤매고 있는가.

 

부서진 집기처럼 깨어진 소망들이

선상에 널려있는 풍경을 보며

멀리서 아덴만이 손을 흔든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바다에는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posted by 청라

북태평양 항해일지

북태평양 항해일지

 

 

분노는 모이면 모일수록 거대해지는가.

 

몽니를 보아라.

풍파로 일어서는 저 남자의 거대한 주먹

 

위도선을 따라 서진하며 심통 부리는

폭풍의 왼쪽 가항반원可航半圓

배를 놓는다.

 

북태평양의 겨울은

바람의 나라다.

어린아이 달래듯 시속 사, 오 노트

 

0545시에

북위 3210, 서경 17021

변침점까지는 아직도 멀다.

 

세상은 뒤집어지더라도

방화, 방수 훈련 준비 이상 무

 

폭풍에 씻긴 달과 별이

아기 웃음처럼 해맑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