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바다에서

0시의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의 수인囚人이 되어버린 것은

바다가 내 안에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0시의 바다엔 사랑이 철조망이다.

나는 절대로

바다를 뿌리치고 떠날 수가 없다.

 

단단한 껍질에 갇힌 밤벌레처럼

불빛 한 점 없는 고독의 사막에서

바다의 체취體臭만 파먹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다를 내 안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곁으로는 갈 수가 없다.

출렁거리는 저 물결을

가슴에 담은 후로는

 

 

posted by 청라

근해近海를 나서며

근해近海를 나서며

 

 

살다가 싫증이 나면 배를 타는 거다.

오륙도가 한사코 나를 붙잡아도

그래, 대양大洋을 향해 나아가는 거다.

 

머리 감아 빗고 새색시처럼 다소곳한

섬들 하나씩 뒤로 밀려나고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조차 출렁이는 물결에

씻겨나갈 때

 

절대로 돌아서지 않으리라.

가족들과 단란히 조반을 먹고

차 한 잔 마시는 아침 그리워하지 않으리라.

 

그 많던 어선들 한 척씩 줄어들고

막걸리 맛처럼 외로움이 혼곤하게 배어들 때

내 의지 포세이돈의 근육처럼 굳세게 단련하여

해를 잡으러 해 뜨는 곳으로

끝없이 달리리라.

 

인생처럼 넘고 또 넘어도

끝없이 가로막는 파도

세월이 소용돌이치는 삶의 바다에서

이제 저 수평선만 훌쩍 넘으면

부상扶桑이 코앞에 다가오겠지.

 

 

 

posted by 청라

출항出港의 아침

출항出港의 아침

 

 

일출日出을 예인曳引하러 떠났던 배들이

해당화 꽃밭처럼

눈부신 아침을 피워놓으면

부산항은

새벽 닭울음소리로 피곤을 털고 일어나

오륙도 너머 수평선으로 출항出港의 깃발을 단다.

닻을 올리고 뱃고동소리 항구를 울리면

이제 나는 바다의 사나이

동백섬에 봄이 왔다고

동백꽃 향기 나를 부르러 와도

손을 흔들어야 한다.

에메랄드빛 꿈을 잡으러 떠나야 한다.

바다를 품는 사람이 세계를 이끄는

신 해양시대

해양 르네상스를 이 손으로 꽃피우겠다.

항구야 잡지 마라.

파고波高 험한 길이라고 멈출 수 있나.

불끈 일어선 젊음이 시들기 전에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한 바퀴 돌아

바다의 주인이 되어 돌아오겠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