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무인도 등대
꿈이 있는 것들은
외로운 시간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어둠보다 더 막막한 인종忍從의 삶을 살았다는
섬 바위들, 젖가슴으로 아랫도리로
세월의 손길들이 침범한 것도 모른 채
웃음도 잃고, 말도 잃은 그 옆의 별자리에
등대는 가까운 듯 먼 이웃으로 자리했다고 한다.
먼 바다에 불빛 한 점 숨 쉬면
와아아, 환호성으로 마중 나갔지만
그를 외면한 배들이 항구 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
깊어지는 건 수심水深만이 아니다.
그의 수심愁心도 물이랑처럼 주름살로 덮이고
이끼만큼 표정도 바위를 닮아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멍이 들수록 더 단단해졌다.
이 먼 섬에
설 수밖에 없었던 인연因緣을 위하여
적막을 도포처럼 몸에 두르고 살 수밖에 없었던
운명運命을 위하여
오늘도 외로움을 태워 빛을 만든다.
글
조선소造船所에서
안벽岸壁에 계류된 미완성의 배들은
날마다 푸른 바다로 나가고 싶어
날개를 턴다.
밤이면 아무도 몰래
떨어진 몸체들을 서로 부르며
바다로 나가는 꿈을 꾼다.
꼼꼼한 손길들이 다듬고 또 다듬느라
조선소造船所의 시간은
초침이 늦게 돌지만
기적汽笛 소리 바다를 울리며
파도를 헤치고 나아가는 배
갈매기들 모국어母國語로
떠들며
배 뒤를 따르고 있다.
글
바다의 친구
산책할 때마다
몰티즈를 앞세우는 김 여사에게
진돗개도 셰퍼드도 다 쟤네들이듯
작은 동력선을 타고 바다로 나온
어부 엄 씨에게는
갈매기도 파도도 다 쟤네들이다.
바다에서 만나는 것들은
모두 자식이고 친구다.
평생을 괴롭혀온 폭풍도
못된 친구처럼 미워하다 정이 들어
한 몇 달 안 찾으면 궁금한데
이웃집에 마실가듯
불쑥불쑥 험한 길 찾아온다고
바다는 하루 종일 쫑알거린다.
사랑하는 것엔 죄가 없다.
바다와 어깨동무를 풀지 못하는
엄 씨는 피도 바다색이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