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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바다는 가슴에 발자국을 찍지 않는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아픔의 불씨 하나 묻어놓는 것
바다는 그래서
가슴에 발자국을 찍지 않는다.
안개 속에 숨어 혈서를 쓰듯
물 위에 제 이름을 쓰는 물새들
그 뒤를 따라가며
흔적도 없이 지우는 파도
바다는 한 이름도 기억하지 않는다.
바다는 아파할 일이 없다.
『문학사랑』138호(2021년 겨울호)
글
그 사람의 천국
그 늙은 어부는 갯벌에다가
마음의 천국을 지었다.
갯벌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게며 꼬막이며 세발낙지가
뻘밭에 빠져들게 한다.
먼저 간 아내는
얼굴마저 흐릿해지고
자식들은 영혼의 거리가
남보다 더 멀어지고
그 어부가 트롯보다 즐겨 듣는 노래는
썰물 빠지는 소리
사릿날 만삭의 몸 푼 그 사람의 천국
훤히 몸 안을 개방하면
어망 하나에 갯삽 하나 들고 가
삶의 아픔을 말갛게 씻고 돌아온다.
글
바다를 닦아내다
갯바위들이 기름을 뒤집어쓴 채
박제剝製처럼 정지해 있다.
끓여낸 해물 탕 속의 식재료들처럼
게도 조개도 갈매기마저
검은 타르의 국물 속에 건더기로 떠있다.
방제복을 입고 장갑을 끼고 마스크에
장화를 신은 채
사람들은 졸도해있는 바다 곁으로 다가섰다.
끊어진 빨랫줄처럼 해안선이
바람에 출렁거릴 때
사람들은 바다의 절망을 퍼내 자루에 담고
한숨의 찌꺼기를 긁어내었다.
수평선이 푸르게 일어설 때까지
기도祈禱의 걸레로
바다를 닦고 또 닦아내었다.
먼 바다의 바람도 잊지 않고 달려와
새 숨을 나눠줬다.
말기 암 노인처럼 누워있던 바다가
저녁놀에 기대어
봄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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