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을 만나다

몬순을 만나다

 

 

아라비아해로 들어서자 몬순이 마중 나왔다.

배는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고

선속船速은 떨어져 4, 5 노트

갈 길은 까마득한데

 

인도양 몬순에는 도망갈 곳이 없다

몬순의 어금니가 배의 옆구리를

상어처럼 물어뜯어도

수마트라 섬을 지나면 아덴만까지 삼천 마일

바람을 막아줄 섬 하나 없다.

 

화물들은 좌우로 요동치며 비명을 지르고

어제 먹은 라면마저 모두 토해내는데

지옥이다.

이 황천항해는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바람과 배의 방향이 수직에서 벗어나게

항로를 틀어보지만

헤비 웨더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 왔다. 다 왔다

선장은 주문呪文처럼 같은 말로 독려하지만

나는 무슨 영화榮華를 보려고

배를 타고 이 폭풍 속을 헤매고 있는가.

 

부서진 집기처럼 깨어진 소망들이

선상에 널려있는 풍경을 보며

멀리서 아덴만이 손을 흔든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바다에는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posted by 청라

북태평양 항해일지

북태평양 항해일지

 

 

분노는 모이면 모일수록 거대해지는가.

 

몽니를 보아라.

풍파로 일어서는 저 남자의 거대한 주먹

 

위도선을 따라 서진하며 심통 부리는

폭풍의 왼쪽 가항반원可航半圓

배를 놓는다.

 

북태평양의 겨울은

바람의 나라다.

어린아이 달래듯 시속 사, 오 노트

 

0545시에

북위 3210, 서경 17021

변침점까지는 아직도 멀다.

 

세상은 뒤집어지더라도

방화, 방수 훈련 준비 이상 무

 

폭풍에 씻긴 달과 별이

아기 웃음처럼 해맑다.

 

 

posted by 청라

0시의 바다에서

0시의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의 수인囚人이 되어버린 것은

바다가 내 안에

울타리를 쳤기 때문이다.

 

0시의 바다엔 사랑이 철조망이다.

나는 절대로

바다를 뿌리치고 떠날 수가 없다.

 

단단한 껍질에 갇힌 밤벌레처럼

불빛 한 점 없는 고독의 사막에서

바다의 체취體臭만 파먹고 있다.

 

사랑하는 이여!

내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내가 바다를 내 안에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곁으로는 갈 수가 없다.

출렁거리는 저 물결을

가슴에 담은 후로는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