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해의 사랑

카리브 해의 사랑

 

 

소녀는

마야의 벽화 속에서 걸어 나와

전통춤을 추었다.

 

대서양의 수평선이 모두

춤 속으로 빨려들었다.

 

베고니아 꽃 피면

입술을 준다고 했지.

 

눈부신 햇살과

카리브 해의 바람이 키운

마호가니 빛깔의 설렘

 

쿠마나의 바다가 떠오르면

투명해서 더 안 보이던

소녀의 마음이 보일 듯도 하다.

 

 

 

 

posted by 청라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며

 

 

어제는 세비야에서

플라멩코의 불꽃같은 춤사위를 보고

오늘은 태극기 휘날리며

지브롤터 해협을 지난다.

스페인 함대들이 대서양으로 나가기 위해

나팔 불며 기세등등하게 지났을 이 해협을

우리 손으로 만든 배를 타고

허리 산맥처럼 펴고 지나간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북소리

우리는 이제

세계 어디에 굽히지 않아도 될 해양 강국

레반테 심술궂게 치고 지나가도

배 몇 대에 쩔쩔매는 약소국가가 아니다.

지브롤터의 바위산들이 험상궂게

근육을 드러내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펴고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세계를 헤집고 다니면서도

저 펄럭이는 태극기 아래서는

두려운 게 없다.

posted by 청라

몬순을 만나다

몬순을 만나다

 

 

아라비아해로 들어서자 몬순이 마중 나왔다.

배는 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고

선속船速은 떨어져 4, 5 노트

갈 길은 까마득한데

 

인도양 몬순에는 도망갈 곳이 없다

몬순의 어금니가 배의 옆구리를

상어처럼 물어뜯어도

수마트라 섬을 지나면 아덴만까지 삼천 마일

바람을 막아줄 섬 하나 없다.

 

화물들은 좌우로 요동치며 비명을 지르고

어제 먹은 라면마저 모두 토해내는데

지옥이다.

이 황천항해는 도무지 정이 들지 않는다.

 

바람과 배의 방향이 수직에서 벗어나게

항로를 틀어보지만

헤비 웨더 속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다 왔다. 다 왔다

선장은 주문呪文처럼 같은 말로 독려하지만

나는 무슨 영화榮華를 보려고

배를 타고 이 폭풍 속을 헤매고 있는가.

 

부서진 집기처럼 깨어진 소망들이

선상에 널려있는 풍경을 보며

멀리서 아덴만이 손을 흔든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처럼 바다에는

거대한 무지개가 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