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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려수도의 봄
학동 해변에서 밀물소리를 듣는다.
남쪽 바다엔 봄이 일찍 와서
몽돌 위를 타고 넘는
밀물소리에
질펀한 가락이 묻어있다.
도다리쑥국 먹으러 온 바다 사내들은
막걸리 몇 잔에 안주 삼아
한려수도의 봄 얘기 한창인데
사투리마다 배어있는 갯냄새에는
동백꽃 향기 가득 피어난다.
입이 무거운 무인도에는
꽃들이 몰래 진단다.
막걸리 맛처럼 시금털털한
세상 험한 일들 씻으러
배타고 한 번 휭하니 돌다 올까나.
물안개 옅어지는 수평선 너머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섬들
글
제주해협濟州海峽을 건너며
유채꽃이 필 때쯤 제주도에나 갈까
목포에서 아홉 시 크루즈 배를 타고
제주해협濟州海峽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
마음속까지 투명하게 보여주는 리아스식 해안
회유성回諭性 어족의 통로
구로시오 해류가 손에 잡힌다.
아침의 바다는 파도의 봉우리마다
등을 달았다.
저 반짝이는 윤슬의 새순을 잘라내어
당신의 머릿속 스위치를 올려주면
오랜 세월 어둠의 뿌리로 자리 잡은 우울증을
한 점 남김없이 씻어낼 수 있을까.
웃음이 시들은 당신의 얼굴에
해란초 환한 미소 피울 수 있을까.
섬마다 동백 향 풍겨내는
다도해多島海의 봄이 연초록으로 손을 흔든다.
먼 섬
기도로 반짝이는 등대여!
가보지 못한 섬의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바람을 타고 건너오니
나는 아직 바다로 녹아들지는 못했구나.
완당阮堂 선생 눈물 뿌리며 건넜을 이 바다엔
아득한 세사世事처럼 황사가 내리고 있다.
오늘밤엔 술 몇 병 들고
세한도歲寒圖에 사는 사내나 만나러 갈까.
글
초도에 내리는 별빛
꽃들도 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서 예쁘게 꾸미려 하지 않는다.
대충대충 피어도 꽃은 꽃인가.
다 떠나고 남은 집 혼자 지키는
앵두나무 야윈 가지에 봄이 환하다.
육지가 있는 수평선 쪽으로는
보이지 않는 붉은 경계선이 그어져 있다.
칠이 벗겨진 지붕과 빈 마당 가
우두커니 서있는 돌 절구통 적막 위에
가끔 염소들 서로 부르는 소리만 반짝일 뿐.
십자가가 내려진 교회 터에 떠도는
찬송가와
무너지다 만 벽마다 지워져가는
아이들의 낙서도
곧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소멸의 순서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인간의 발자국 위로 별이 내린다.
초도에 내리는 별빛은 갓 씻어낸 호롱불 같다.
앵두꽃에 별빛이 내려 별이 꽃인지
꽃이 별인지 알 수 없는 밤
낚시로 잡은 붉바리 회에 술 한 잔 걸치고 보니
원래 혼자였던 섬의 옷깃 한 자락
내가 지팡이 삼아 잡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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