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소묘素描

늦가을 소묘素描

 

 

할아버지 끌고 가는 리어카 위엔

할머니 혼자 오도카니 앉아있다.

자가용은 못 태워줘도, 임자

리어카는 실컷 태워줄끼다.

힘들어서 워쩐대요. 워떠칸대요.

올라가는 고갯길 바람이 살짝 밀어준다.

마른 수숫대 같아서 눈물 나는 사람

늦가을 햇살처럼 스르르 사라질까봐

뒤돌아보며 자꾸 말 걸며 숨차게 올라간다.

 

 

2016. 12. 1

posted by 청라

이상한 나라

이상한 나라

 

 

꽃 한 송이 받아도

벌을 받는 나라


물 한 모금 주어도

죄가 되는 나라

 

정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나라

 

국민들은 죽어나도

웃고 있는 나라


내 손자 손녀가 

살아갈 나라


이 쪽 저 쪽 돌아봐도

막막한 나라

 

 

2016. 11. 23

posted by 청라

이 가을에

이 가을에

 

 

술잔에

들국화 한 송이 띄웠다.

 

! 가을 냄새

 

술 마시고

나는 가을에 취해버렸다.

 

인생 뭐 별 거 있는가.

웃으며 살면 그만이지

 

넘기 힘든 고개도

한 발 한 발

넘다 보면 정상이라네.

 

찌푸리고 살지 말고

가을이 오면

그냥 단풍이 되세.

 

 

2016. 11. 20

posted by 청라

둥치에 핀 꽃


사진  김주형



둥치에 핀 꽃

 

 

젊음은 벽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다.

 

불의不義한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으며

 

내 피를 연소燃燒시켜

거친 땅에 정의正義를 세운다.

 

사월의 눈보라 앞에서도

굳센 정신의 심지에 불을 붙여

 

사랑을 완성한

저 꽃을 보라.

 

청춘은 쉽게 꺾이지 않아서

외로워도 아름답다.

 

2016. 11. 18

문학저널163(20176월호)

 

 

posted by 청라

조룡대, 머리를 감다

 

 

소리치는 사람들은 깃발이 있다.

깃발 들고 모인 사람들은 

제 그림자는 볼 줄 모른다.


조룡대에 와서

주먹질 하는 나그네들아

조룡대는 날마다 죽지를 자르고 싶다.


부소산에 단풍 한 잎 물들 때마다

어제보다 더 자란

소정방의 무릎 자국

가슴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 


지느러미라도 있었다면

천 년 전 그 날

물 속 깊이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았을 것을


깃발 들고 목청만 높이는 사람들아,


비듬처럼 일어나는 부끄러움을 식히려고

백마강 물살을 빌려 조룡대는

오늘도 머리를 감는다.

 

2016, 11. 8

심상 20176월호

posted by 청라

가림성加林城의 가을

 

 

백가苩加는 무슨 소망을 돌에 담아 쌓았을까.

가림성加林城의 가을은 억새 울음에 젖어있다.

상좌평上佐平에 있으면서 또 무었을 꿈꾸었기에

피로 일어났다가 피로 쓰러졌는가.

멀리 보이는 금강 하구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부지런한 세월만 바다로 흐르고 있다.

역사 앞에 서면 인생 부귀는 한낱 구름인데

날리는 신문 조각마다 백가苩加살아있네.

posted by 청라

낙화암

낙화암

 

 

백마강으로 돌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썩다 만 모과처럼 

낙화암은 늘 가슴이 아프다.

아침나절 신음하던 바람들이

절벽을 흔들다가 고란사 종소리를 따라간 후

비가 내렸다.

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루 종일 유람선에서만 

조룡대 전설이 피었다 질 뿐

신라도 당나라도 없는 세상에

삼천궁녀의 한숨이 가슴에 닿아 

꽃으로 피는 사람 있을까.

하구 둑에 막힌 절규들만 하루 종일

물새 울음으로 출렁이는 백마강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 방울의 눈물에도 촉촉해지는 

천 년의 이끼가 되고 싶었다.

 

 

2016. 10. 21

대전문학74(2016년 겨울호)

시문학20178월호

시학과 시창간호(2019년 봄호)

 

 

posted by 청라

노란 스카프

노란 스카프

 

 

내 나이 가을에는

미운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의 뜰 앞 은행나무에

화해의 노란 스카프

가득 걸어놓고

 

내게서 마음 떠난 사람들

다시 돌아오라고

간절히 손 흔들고 있다.

 

커피 향 한 모금에도

눈물이 나고

 

진홍빛 사과 위에 머무는 햇살이

따스하게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간

 

내 나이 가을에는

미운 사람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노란 스카프 흔들고 있다.

 

 

2014. 10. 9

 

posted by 청라

슬픔을 태우며

슬픔을 태우며

 

 

미루나무 그림자가 노을 한 자락 걸치고 있는

금강 변에 서면

품고 온 슬픔이 없는데도 가슴에서 피가 난다.

 

착한 것도 죄가 되는가!

 

백제의 산들은 왜 모두 모난 데 없이 둥글기만 해서

적군의 발길 하나 막지 못한 것이냐.

 

나라 없는 백성들은 질경이처럼 짓밟혀서

꺾여도 꺾여도 옆구리에서 꽃을 피운다.

 

역사의 속살을 가리려고

바람은

투명한 수면에다 주름을 잡아놓는가.

 

짠한 눈물 몇 종지 스스로 씻어내며

세월의 골짜기를 흐르는 금강

 

강변에 불을 피우고

남은 슬픔 몇 단 불 속에 던져 넣는다.

 

 

2016. 9. 28

문장2017년 봄호(40)

시문학20178월호

 

 

posted by 청라

청춘에 고한다

책은

눈물을 지워주는 지우개

 

많이 아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posted by 청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