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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어떤 시
못 생긴 돌이라고
버리려다가
수석水石 하나 빈자리에 올려놓았다.
모두들
그 돌이 가장 좋단다.
버리려다 시집 끝자락에 올려놓은
나의 어떤 시처럼
2016. 5. 29
글
누군가 보고 있다
술에 취해서 가끔은
비 젖은 전봇대에 쉬를 하기도 하고
적색 등 횡단보도를
바람같이 건너기도 했던 젊은 날에는
마음속에
하느님을 가득 들여놓고
하지 마라 하지 마라
죄악의 씨앗들을 맷돌로 갈아댔는데
누군가 보고 있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둥그런 눈을 번득이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 양심을 찍어가고 있다.
나는 날마다
보이지 않는 섬광에 가슴을 찔리며 산다.
나의 낭만은 피를 흘리고 있다.
감시의 풀밭에서
독초는 더 무성히 자라나지만
꽃같이 아름다운 나의 죄들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떨면서 산다.
하늘이 너무 맑아도
내 마음의 악기들은 아픈 소리를 내고
수많은 시선의 칼날 아래서
나의 평화는 유리처럼 부서진다.
아무리 깊이 숨어도
누군가는 보고 있다는 주문에 걸려
어머니의 자장가를 잃어버리고
야금야금
작은 죄를 모의하던
설렘도 죽어버렸다.
2016. 4. 22
글
여름날 아침
풀잎 끝에 대롱거리는
이슬을 보다
나는 이슬에 갇혔었지.
하늘은 왜
투명한 목소리로 거기 박혀있을까
모란 꽃잎 위에 속살거리는
별들의 이야기 방울은
왜 수박 속처럼 맛이 있을까
구슬 빛에 홀려서
밤새도록 사연 깊게 울어대던
두견새 울음을 꿰어
영롱한 목걸이 하나 만들고 싶었지.
툭 하고 떨어져 꿈이 깨어질까봐
불어오는 실바람도
체로 치고 싶었지.
세상이 모두 신기하고
찬란하게 보이던
내 손자만한 그런 날 여름 아침에
『한국문학인』2016년 여름호
글
꽃밭에서
눈물에서 실을 뽑아
가슴 울리는
그런 시의 베 한 자락 짜지 못할 지라도
꽃에 묻혀서
꽃으로 살았으면 좋겠네.
온 세상 한숨의 바다를
환한 꽃으로 불 질렀으면 좋겠네.
2016. 3. 18
글
길
평탄한 길을 걷다가도
가끔은 발이 꼬일 때가 있다.
누가 네 발목을 잡는가.
돌부리 하나 솟지 않은 맨땅
네 발을 거는 것은 네 스스로의 욕심
버려라
깃털처럼 가볍게
그리고 솟아올라라.
인생이 송두리째
넘어지기 전에
가끔은 길을 가다가
멈추어야 할 때가 있다.
2016. 2. 14
글
청우정聽雨亭에서
솔 기둥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는다.
칡넝쿨처럼 헝클어진
사념思念들이
빗질되어 말갛게 가라앉고
마곡천 물소리 속에 묻어온
독경讀經 소리에
한 송이씩 어두운 마음의 뜰을
밝히는 풀꽃
빗소리는
거울이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내 안의 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글
삶
사람들은 누구나
그리운 그림자 하나 키우며 산다.
선택하지 않은 길과
아직 오지 않은 사람
문득문득 피어나는 오색구름 같은
그리움은 늘 그리움으로 남겨두자.
오늘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바람 불고 가시덤불 우거진
고갯길
뒤돌아보지는 말자.
바위 그늘에 앉아 그냥 그리워만 하자.
다시 돌아가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버렸다.
2016. 1. 25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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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1.07 |
|
글
가시
탱자나무 큰 가시는 누군가를 찌르려고
한사코 침을 세운 것은 아니다.
탱자의 신 맛에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허공을 향해 그냥 솟았다가
탱자 빛깔로 물들어 무디어질 것이다.
세상에는
보이는 가시보다
보이지 않는 가시가 무서운 법이다.
네 혀는
누구를 해치려고 그렇게 날카로운 것이냐
탱자나무 가시보다 더 크고 험상궂은
감춰진 가시
남의 속살을 헤집어
아프게 하고
피를 흘리게 하고
그래서 네가 빛나는 것이 무엇이 있느냐.
찌르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네 숙명이 슬프다.
세우는 것보다 세상을 무너뜨리는
너희들의 성城 때문에
깃발 들고 목소리 큰 자들은
양지쪽에 모여들고
입 다문 정의로운 사람들은
그늘로 밀려나고 있다.
가시 풀 무성하게 우거지는
우리의 민주주의를 보며
철없던 시절
박수치며 환호하던 그 손으로
그 손에 쥐어진
내 한 표의 힘으로
너희들을 봉인封印한다.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 보고
가꿀 줄 아는 사람만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
2015. 12. 29
「문학저널」163호(2017년 6월호)
글
동방의 횃불
-「길림 문학사랑」 성립成立 5주년을 축하하며
눈 감으면 들린다.
삭풍 몰아치는 북녘 땅
하이란강 물소리와 말 달리는 소리가.
구국救國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조들의 고귀한 씨앗
툰드라의 땅에 떨어져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거대한 화원花園을 이뤘나니
모든 것을 쇳물로 녹여
저희 몸에 덧입히는
중화中華의 불가마 속에서도
백두白頭의 얼 굳게 지켜
교목喬木처럼 둥치 키워가는
「길림 문학사랑」 성립成立 5주년에 박수를 보내노라.
먼지처럼 쌓이고 쌓인 고난의 역사
자양분 삼아
어깨동무하고 오순도순 걷다가 보면
긴 겨울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동방의 횃불로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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